설교: 누가복음 9:22-27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으시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베드로의 믿음을 반석으로 해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하신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면,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림받아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동족들에게 버림을 받아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실 것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기 위해서는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들을 따라와야 할 것을 말씀하셨고,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예수님만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도 자신들의 십자가를 져야 함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이루는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요청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각자의 십자가를 져야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같이 고통스러운 일이고 때로는 육신의 생명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면서까지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목숨 때문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때에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육신의 죽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그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목숨을 생각할 때에 육신적인 목숨만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야 할 더 중요한 생명은, 육신의 생명 이후에 있을 영원한 생명입니다. 죽음 이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살아갈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바로 이 생명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죄인된 사람들은 스스로 영생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죄의 값을 지불하셔서, 죄인된 사람들이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영원한 생명을 쟁취해 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쟁취하신 그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냐고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만이 그 영생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
이 땅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그 삶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힘들고 때로는 육신의 생명까지 내어 놓아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가치있는고 소망된 것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기 떄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는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있고, 어떻게 그 십자가를 질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내 자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25절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질문하십니다.
예수님은 온 천하를 얻고도 자신을 잃어 버리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온 천하를 얻고자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온 천하를 얻는 것을 가장 큰 유익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과거 전쟁역사를 보게 되면,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서 자신의 열정을 바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온 천하를 얻으려는 욕망들은 변함이 없습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을 유익이라고 생각하면서 수고합니다. 세계적인 인기와 명성을 더욱 많이 차지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두고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면 무엇이 유익하냐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온천하를 얻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을 잃지 않는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 온 천하를 주겠다고 제안하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마귀’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이렇게 제안합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온 천하를 얻는 일이 대단한 일처럼 생각되지만 예수님은 마귀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온 천하를 준다고 마귀가 유혹했지만, 온 천하를 얻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더 가치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서 마귀에게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온 천하를 얻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 존재의 가치를 왜곡시켜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원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지 못하도록 빼앗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존귀하신 형상을 따라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형상을 닮은 당신의 자녀로 우리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지음받은 것이 원래,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의 원래의 모습을 상실하게 유혹합니다. 에덴동산에서도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아야 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해서,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유혹하면서, 아담과 하와가 지음 받은 원래의 모습을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사람들에게 온 천하를 주겠다고 유혹해서,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의 부귀영화를 따라살며, 궁극적으로 마귀를 따르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은 얻었는지 모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누구인지를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표가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그 이상으로 해서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복받았다고 생각하며 부러워합니다. 어느덧 사람들은 물질의 노예가 되고, 허무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허무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유익을 온 천하를 얻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유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 본래의 목적을 추구하며, 우리 자신의 모습을 회복함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따라갈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나를 풍요하게 만들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내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줄 만한 것들이 많이 있고, 세상 사람들은 그것들이 유익하다며 그것을 따라서 살아가지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우리의 원래의 모습의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들이 그 회복된 모습을 가지고 영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 이제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힘든 이유 중에 하나가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 것이고, 또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의 십자가를 대신 져 주셨지만, 또한 우리 각자에게 맡겨진 십자가가 있고, 이를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자기 부정의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지존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그 모든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예수님은 자신을 부인하셨습니다.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고자 하는 이들을 멸하실 능력이 있으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부인하시고, 고통과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이제 사람들은 예수님이 마련해 놓으신 영생을 얻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기 부정의 과정이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현재의 우리의 모습을 부정하라고 하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만드셨던 원래의 형상에서 벗어났음을 우리가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십자가의 길은 자기 부정의 길입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하시는 모습을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갈 때에, 어느 덧, 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나타나게 되고, 예수님과 같이 영생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라가기 힘든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은 자기 부정이 아니라, 자기 인정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서 좋아하겠습니까? 어린아이건 어른이건, 자기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주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잘못되었다고 지적해 주면 그것으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거나 실망하기 쉽습니다.
스포츠 경기를 경기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경기 심판이 어떤 선수에게 게임룰을 어겼다고 노란딱지나 파울을 주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어서 고맙다며 심판에게 감사를 표한 선수가 어디있겠습니까? 재수없게 걸렸다고 생각하거나, 자기 잘못없다고 화를 내며 강하게 우기다가 퇴장당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에게는 자기가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편견이 되고 고집이 되어서, 자기를 부정하려는 이들의 말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까지도 거부하기 쉬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에 사랑을 더하라고 하셨는데, 자기의 생각과 가치관을 부정하지 못해서 상대방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하라고 하시는데, 내 자신을 부정하지 못해서 교만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게 되고, 오랜 시간 예수님을 믿었어도 똑같은 자리에서 변화와 성장이 없는 정체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부정의 십자가를 날마다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날마다의 삶은 내가 부정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시험시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 가정안에서도 내 뜻과 생각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뜻대로 결단해야 합니다. 교회나 직장에서도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때로 내 자신을 겸손히 내려 놓고 주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날마다 나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인정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고, 또한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잃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자기 목숨을 잃지 않고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도리어 영생을 못 얻고, 도리어 예수님을 위하여서 제 목숨을 잃을 때에 구원함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을 위해서 지금의 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꼭 순교할 각오를 해라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서 내 목숨을 살아가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구원받은 자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내 생명을 바쳐야 되는 예수님도 자신의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신 일이고, 우리도 다른 이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갈 때에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살아가는 것이 고귀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지고, 주저되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담대하게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26절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며 조롱했습니다. 세상적인 시각으로 볼 때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모습은 부끄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신 고귀하신 일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죄인된 사람이 거룩하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이며, 이천년전 예수님의 삶을 오늘날 이 땅에 재현하는 고귀한 일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요청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영생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는 것이 인생에 가장 유익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을 부하게 만들고 강하게 만드는 것들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유익된 일이라고 여깁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서 믿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된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이제 사람들이 그 영생을 얻기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자기 부정의 십자가를 날마다 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위해서 자기를 부정하는 것은, 예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내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을 수 있고, 내가 절대적으로 여겼던 것이 편견일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게 됩니다. 천하를 얻고자, 세상에 있는 것들을 소유하며 살아가고자, 나 자신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내 자신도 부인하고, 예수님을 위하여서 목숨을 걸 각오를 하면서 살아감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가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가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이 사순절 기간에 날마다 자기를 부정하고 예수님을 따름으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생명력을 체험하는 기간이요, 또한 각자 맡겨진 십자가를 지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재현하는 삶, 그리고 다른 이들을 살리는 주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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