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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한복음 21:1-9  “갈릴리에서 기다리시는 예수님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는 모습을 배경으로 합니다. 디베랴 바다는 갈릴리바다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디베랴라는 도시가 그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 인근 바다를 디베랴 바다로 불렀습니다. 곧 디베랴 바다도 갈릴리바다의 일부분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갈릴리바다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만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32절에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리고 마태복음 28:10절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새벽에 무덤을 찾은 여인들을 보시면서,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부활하신 후 두 차례나 제자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갈릴리가 아니라 엠마오로 가는 제자 둘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한 예수님의 말씀을 잊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갈릴리에서 그들을 만나실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갈릴리로 가게 됩니다. 제자들이 갈릴리로 간 이유가 예수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고 간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을 만날 것과는 상관없이 과거의 어부의 상태로 돌아간 것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자의 무리들이 갈릴리로 가서, 고기를 잡는 중에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면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는지를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갈릴리에서의 제자들과의 만남이 꼭 필요하였기에 그 만남을 주선하셨습니다.

갈릴리바다에서 제자를 만나시는 예수님을 통하여서, 예수님은 왜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기를 원하셨는지,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도 예수님께서 만나고자 하시는 갈릴리와 같은 곳은 없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만나고자 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실패했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에서 만나실 것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도, 그리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이후에도 강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도 갈릴리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자신은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바다로 가고, 베드로를 따라 다른 제자들도 고기를 잡으러 나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제자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고기를 잡지 못하고 새벽이 옵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해변가에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무엇을 가진 것이 있느냐?”. 제자들은 이에 말합니다. “없습니다.” 라고 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고기를 잡지 못한 것을 모르셔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무리 힘쓰고 수고해도 이룰 수 없는 실패의 일이 있음을 자각케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고기 잡기에 실패한 제자들에게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습니다.

이 모습은 3년전, 예수님이 처음 베드로와 어부들을 부르실 때에 장면과 유사합니다. 예수님은 3년전에 제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을 재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3년전의 예수님과의 만남과 그리고 지금의 만남은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베드로와 제자들은너희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고 하는 부르심에 호기있게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정도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확신있게 따라 나섰습니다.

그런데, 이제 삼년 후에 예수님이 만난 제자의 모습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삼년 동안에 예수님을 열심히 따른다고 했지만, 결국은 예수님이 로마병정에게 잡히셨을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갔지만 결국 그곳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하며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지 삼년되었을 때에,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는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따르기게 실패한 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자신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배신하고 도망간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일을 하기에 연약하다고도 느꼈을 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기에 적합한지 스스로 의심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살 때에 이 제자들과 같은 실패를 맛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에수님의 제자로 제대로 살아가고 있지 못하고, 여전히 죄가운데 연약함가운데 사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죄책감에 빠집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지만, 때로는 우리는 그 이상 예수님을 부인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살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기에 실패한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셨고,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기에 실패한 제자들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제자로 만드시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3년 동안 괜한 헛수고를 했다.”고 탄식하시며 좀 더 나은 사람을 모집하러 다른 곳으로 가시지 않고, 그 실패한 제자들을 만나러 갈릴리로 오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그들이 예수님 따르는 것을 실패할지 몰랐겠지만,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길거리에서누가 크고 높은지를 두고서 싸우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예수님을 통해 좀더 대단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에 제자들이 도망할 것도 아셨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할 것도 이미 아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실수하고 실패하는 일들로 인해서 우리는 당황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죄성과 연약함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과 모습을 온전히 따라살기에 한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예수님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과 저와 여러분들에게 갈릴리에서의 만남을 준비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갈릴리에서의 만남을 통해서, 제자들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습니다. .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셨을 때에,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3년 전의 장면을 재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에 모습을 연상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놓으시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구워 놓고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숯불을 피우셨는데 이 모습은베드로가 배반했을 때에 그 상황을 재현하는 듯합니다.

마가복음 14: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베드로는 불이 타오르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하며 저주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숯불을 피워놓고, 베드로로 기다리셨다가, 그 앞에서 베드로를 대면하십니다. 베드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부인한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베드로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을 부인했던 그 실패의 순간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사역에 더욱 합당한 사람으로 세워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을 따르기에 실패했던 베드로에게 질문하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의 그 질문은 베드로에게 아픔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혹시나 예수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때에 어떻게 나를 모른다고 말할 수가 있겠느냐?”라고 비난할 것 같아 주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서 대답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주께서 아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한번만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했듯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나를 사랑하냐고 세번 물으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세번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죄책감과 억눌린 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을 배반한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서 도저히 예수님께 사랑한다고 스스로 말할 수 없는 형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의 마음속에 있는 예수님의 대한 사랑을 끄집어 내어 고백하게 하셨고, 베드로의 마음을 위로해주셨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때에 늘 점검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일에는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때로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또한 우리의 무지함과 연약함으로 인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은 실수와 잘못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패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베드로와 제자들을 만나셔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제자들에게 확인받고자 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인간의 실수와 실패 속에서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 미숙한 점이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가지고 갈릴리에 계신 주님께로 나아가 주님의 위로와 치유함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들으시면서,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바로,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갈릴리는 예수님께 받은 사명이 회복되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양을 치고 먹이라는 사명은, 바로 예수께서 그 동안 하셨던 일들을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맡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들을 맡기실 때에 다른 조건을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또한 기적을 행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단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를 확인하시고 그의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역하셨을 때에 사랑으로 하셨던 것과 동일합니다.

요한복음 10: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위해서 죽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런데 양들을 사랑하게 되면, 맹수가 나타났을 때에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들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게 되고, 그것이 선한 목자가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죄인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음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사역하기를 기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사역의 동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들을 감당할 때에 사명감을 가지고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때에, 그 밑받침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있기를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에베소 교회를 보시면서안타까워하셨던 상황이 있습니다. 에베소교인들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했는데,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리고서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하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이를 사랑하게 되면 힘든 일들도 기쁨으로 감당하게 됩니다. 내가 힘든 일을 하는 것만큼 비례해서, 상대방을 사랑하는 정도가 전달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남녀가 연애를 하면서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해달라는 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힘든 일을 해도 힘들지 않고 도리어 더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면 기쁨으로 상대방을 위해서 헌신하기 보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억지로 할 때가 있습니다. 사랑없이 의무감으로 하는 일에 기쁨이 있을리가 없고, 더욱 괴롭기만 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사랑없이 하게 되면, 힘들고 괴로운 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여러 사역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맡겨진 사역들이 있습니다. 사회에 나가서 기독교인으로서 행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또한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들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사역을 하게 되면, 이러한 일들이 힘들지 않고 기쁨이지만, 주님에 대한 사랑없이 책임감때문에 억지로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들을 하면 그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일들을 할 때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감당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갈릴리는 사명을 잃어 버리고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이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받고, 사명이 회복되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며, 그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전에 떡과 물고기를 구어 주시며 먹이십니다. 예수님의 양을 치고 먹이라고 보내시기 전에 먼저 제자들을 먹이시고 힘을 주시며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의 사역을 감당하러 가기 전에, 갈릴리에서의 예수님앞에 나와서 주님께서 공급해주시는 떡과 물고가를 먹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내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공급해 주시는 능력에 기초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상심하고 좌절한 당신의 제자들에게 줄 물고기와 떡을 구으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패한 베드로와 제자들의 상심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누구보다도 상처받으시고 아프셨던 분은 예수님이셨을 것입니다.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죽으신 고통이 그 누구에 비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의 좌절과 아픔을 챙기시고, 회복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맡겨주신 삶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에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무지함, 죄됨의 모습을 너무 잘 알고 계십니다. 때로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실패하고 실수를 하게 되면, 스스로 상심하여서 교회를 멀리하고, 주님을 멀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실패하고 좌절 될 때에 당신을 만나러 갈릴리로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예수님을 따르기에 실패할것을 이미 아시고 갈릴리로 그들을 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좌절을 안고 갈릴리로 와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제자를 부르신 것은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자격없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셨고, 또한 예수님을 향한 제자들의 사랑을 회복시키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는 사역의 회복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비록 제자들이 주의 사역을 감당하기에 부족하지만,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역을 감당하라고 다시 한번 그들을 격려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보내시기 제자들을 먼저 먹이심으로 사역 감당을 감당할 힘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주님을 믿을 때에 힘들과 좌절될 때에, 예수님을 멀리하며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고기와 떡을 구워 놓으시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주님께로 향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에 대한 사랑과 사명을 회복하셔서, 주님앞에 더욱 귀하게 쓰임받는 성도요 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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