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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관련된 격언 중에서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법입니다. 그런데 왜 법을 만드냐하면, 자신들의 공동체가 질서있게 운영되고, 공동체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국가가 형성되면 국가를 질서있게 유지하기 위해서 국법을 만들게 됩니다. 회사에도 법이 있어서 그 회사가 질서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합니다. 가정에서도 알게 모르게 그 가정을 유지하는 법이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그 법을 잘 지켜야  공동체가 질서있게 잘 유지됩니다. 반대로 그 법이 지켜지지 않게 되면 사회가 무질서 해지고 위기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법을 잘지키라고 법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는 법을 또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법을 지키는 것을 보면, 그 동기가 벌을 받지 않으려고 억지로 지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보면 수 많은 율법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고 그것이 곧 법이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법도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고 강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이 세상법과는 다른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밑바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5-40에서,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물을 때에,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 그런데 때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에 내포된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왜곡해서 받아들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대표적으로 왜곡되어 있는 구약의 한 법을 인용하십니다.

레위기 24:2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 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보통 사람들이 이 말씀을 대할 때에 생각하기는,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입혔으면 나도 당한 만큼 갚아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 법의 취지를 잘못 해석한데 있습니다. 이 법은 내가 당한 것에 대해서 복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해하게 되면 당신도 그대로 해함을 당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며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방을 곧 자신과 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계신 분중에서 내가 만약 상대방의 눈을 쳐서 상하게 하였는데, 곧 자신의 눈도 상하게 된다면 함부로 상대방의 눈을 때리지 못할 것입니다. 화가 나서 상대방을 쳐서 이를 부러뜨리고 싶지만,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이도 부러져야 한다면 함부로 상대방을 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자신을 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들 하준이와 오늘 본문 말씀을 놓고서 이야기를 하는데, 자신이 중학교때 읽은 책에서 그러한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설속에 나오는 스파이가 있는데 그 스파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한 대로 자신에게도 똑같이 그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스파이가 어떤 사람을 때리면 자기도 다른 사람에게 맞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총을 쏘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총을 쏩니다. 그러니까 그 스파이는 상대방을 죽이지도 못합니다. 상대방을 죽였다가는 자기도 죽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가한대로 자신도 똑같이 당하니, 상대방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상대방을 대할 때에 나와 별개인 사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바라보고 대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법은 사회적으로 약자이거나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기도 했습니다.

레위기에는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라고 말씀하신 후에, 24:22절에거류민에게든지 본토인에게든지 그 법을 동일하게 할 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본토인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고, 거류민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나그네처럼 살고 있는 다른 민족을 말합니다. 그러니 거류민들은 소수의 사람으로서 다수인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을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류민이 비록 사회적으로 약자라고 할지라도, 그들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으로서 여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법을 통해서 다수인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소수인 이방인들을 보호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레위기 24절에 나오는 말씀이, 또한 출애굽기 21장에도 나옵니다. 출애굽 21장에서는남종이나 여종의 눈을 쳐서 상하게 하며 그 눈 대신에 그를 놓아주어야 하고, 남종이나 여종의 이를 쳐서 빠뜨리면 그  이 대신 그를 놓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근동지역(Ancient Near East)에서 종이라고 한다면 사회안에서 약자 중에 약자입니다. 주인의 소유로써 주인이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은 사회적인 최약자인 종들에게 조차 해를 입히게 되면 그 댓가로 그들을 자유케 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법을 주실 때에는 강한 사람들이 약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보호하였고, 그들이 사회적으로 소수이고 약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을 너와 같이 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법을 통해서 약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 또한 약한 자들을 사랑하며, 보호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볼 때에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할 때에 법의 목적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그 속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법을 가지고 서로 정죄하고, 서로의 악함에 대해서 복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서 사람을 대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무시하면 나도 그 사람을 무시해도 되고,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해를 가하게 되면, 나도 그 사람에게 똑같이 대해주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행한대로 보복을 하게 될 때에 사회가 안정되고 평안함을 이루게 됩니까? 다른 사람이 내게 그렇게 했으니, 나도 똑같이 대해 주겠다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도리어 그 보복을 통해서 사람의 관계속에서 더 큰 미움과 갈등이 발생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을 더욱 완성시키시는 말씀을 하십니다. 구약에 나와 있는 율법의 취지를 제대로 완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1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예수님은 5:39절에, 악한 자에 대해서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를 입혀도 그에 대한 보복 조차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악한 자에 대해서 대적하는 행위는 사람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목적인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역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악한 자들에게 어떻게 대할 때에 하나님의 율법이 어떻게 완성되어야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십니다.

1) 먼저 예수님은오른편 뺨을 치는 자에게 왼편도 돌려대라고 하십니다.

상대방의 오른뺨을 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을 때린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보통 상대방의 오른뺨을 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오른손의 손등으로 때려야 하는데 그것은 상대방에게 최고의 수치심을 주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히브리 랍비들의 규정에 의하면 손등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것은 상대방에게 최고의 수치를 주는 행동이기 때문에, 손바닥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것보다 갑절의 벌을 주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오른뺨을 맞았을 때에 왼편까지 치도록 돌려대는 것은, 상대방의 폭력과 미움에 대한 저항인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때렸듯이 똑같이 갚아준다면, 똑같이 미움과 폭력에 말려들고, 악에 대해 동조하는 일이 됩니다.

때로 사람들이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수치를 안겨주실 때에, 같이 뺨을 때리려고 하다가 똑같이 악에 휩쓸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므로 도리어 악에 대해서 저항하며,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살다가 보면, 우리의 뺨을 치며 수치를 주며 미워하는 상황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같이 뺨을 치려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어금니를 꽉 깨물고 또 다른 뺨을 돌려대며 선함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겉옷은 삶에 꼭 필요한 물건입니다. 겉옷은 네 모난 천으로 낮에는 걸쳐입고, 밤에는 이불 대신으로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장에 기록된 법 중에서는, 가난한 사람의 겉옷을 전당 잡았을 경우 밤이 되면 돌려주도록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 밤에 겉옷이 없어서 추위에 떨 것을 배려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줄 것을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악한자가 속옷을 취하려고 공격할 때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대적하고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겉옷까지 줄것을 각오하며 악에 휩쓸리지 않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은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법은 군인들이 민간인을 강제 징용하여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로마군사가 강제로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까지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악한 이들은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나의 자유함을 억압하여 강제로 나를 움직이려고 하지만, 그 때에 도리어 내가 자원함으로 행함으로 권력의 억압으로 부터 스스로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상대방에게 선함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4) 그리고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사람을 소중한 존재로  여기십니다. 그리고 사람의 가치가 물질이 없는 것으로 인해서 폄하되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사람의 가치보다 돈의 가치를 더욱 높이 여기며, 돈을 위해서 사람을 해하고 죽이는 일까지 일어납니다. 물질적으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그 사람을 중요하게 여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30절에는,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라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5) 그리고 예수님은 이웃이든 원수든 모두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시기를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세상의 법은 사랑할 사람과 미워할 사람을 구별해서 상대하도록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삼아서 지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떄로 하나님의 법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 로마의 법처럼 기쁘지 않은 강제조항으로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명령속에 담겨진 사람을 향하신 사랑과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해서 살아가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임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법을 준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법은 온전히 완성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날 공동체마다 공동체의 질서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합리적인 법을 세우고 이를 집행합니다. 그런데 합리적인 법이 좋은 사회를 만들것 같지만 사회는 더 무질서해지고, 범죄가 생기며, 변호사들만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통해서 사랑과 존귀함이 실현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과 존귀함을 이루기 위해서, 나를 때리는 사람을 향해서 다른 뺨도 돌려대기도 하고, 나에게 악하게 대하는 이들을 더욱 사랑하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는 보복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악한 이들의 행동을 그대로 갚아주려고 할 때에, 내 안에 있는 사랑, 평화가 사라지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져 내리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행하셨던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악하게 대하는 자들을 향하여 똑같이 악한 모습으로 되갚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뺨을 때리며 조롱한 로마군병들과 대항하지 않으시고, 대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 위에 당신을 못받는 사람들을 향해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고,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셨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모습이 연약한 모습은 아닙니다. 도리어 악한 사탄의 강한 음모를 이기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저주하기를 원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악한 자들을 향해서 용서하고 사랑하심으로 사탄을 향하여 저항하셨고, 끝내 하나님의 사랑의 법을 완성하신 분이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행하는 성도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에 대해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그 법을 지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게 악하게 대하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마음으로 더욱 사랑하며 선하게 대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미워하게 하고, 천하게 만드는 악한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과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법을 완성해 나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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