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가장 믿음이 흔들리기 쉬운 때가 고난을 만날 때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고난을 받고, 또 그 고난이 길어지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고난을 해결해 주시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때의 시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사도 베드로는 이를 불시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때 교인들에게도 성도가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이상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시험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 이상한 일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불시험 당하는 일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성도가 불시험을 당하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나 현대 교인들이나 때로는 예수님을 믿기에 당하는 불시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불 시험의 정체를 알지 못하면, 그것처럼 이상한 일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백성, 자녀가 된 사람들이 왜 고통을 당하도록 하나님께서 내 버려 두시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같이 그 고난, 불시험의 의미를 알게 되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시험이 얼마나 유익한지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성도로서 당하는 고난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 불시험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려고 하시는지를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당하는 불시험은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을 이루는 일입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불시험이 오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연단하려고 온다고 말합니다. 연단이라는 것은 ‘페이라스모스’라는 희랍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훈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훈련을 대표하는 곳은 군대라고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이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은 철저하게 훈련을 받습니다. 기초훈련을 하면서 군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체력과 전투 능력을 훈련합니다. 훈련 과정은 정말 하기 싫고 고통스럽습니다. 군인이라고 총쏘고 싸우는 법만을 훈련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인으로 만들기 위해 일상적인 모든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훈련시킵니다. 잠자고 일어나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훈련을 받습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에 어떻게 먹으라고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힘들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 연단의 과정,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된 군인으로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된 자들에게 불시험을 주시는 것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불시험을 통해서 만들고자 원하시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제대로 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연단하십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불시험을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관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세상적인 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고통없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서 성장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연단의 과정속에 들어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 받을 제대로 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불시험이 따르게 됩니다.
다니엘서 3장에 보면 유대에서 바벨론 포로로 같이 잡혀 온 세 친구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벨론왕 느브갓네살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바벨론의 두라평지에 세웁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에 명령하기를 악기 연주 소리가 들리면 그 금신상에 절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다가 던져 넣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그 신상에 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에게 절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세 친구는 불풀무에 들어가기로 결단합니다. 왕이 이제라도 금신상에게 절하면 불에 집어 넣지 않겠다고 회유합니다.
그런데 그 세친구는 말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비록 세 친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불시험을 당하게 되었지만, 그들은 그 시험을 통하여서 자신들의 믿음을 더욱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당하지 않아도 될 고난을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당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 그 고난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도리어 하나님께서 나로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신 것이고, 그리고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고자 아주 당연한 연단의 과정임을 깨닫게 되면 그것도 은혜로 여겨집니다.
2. 그리고 불시험은 당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불시험, 곧 고난당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더 이상한 말을 합니다. 바로 고난을 받을 때에 도리어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보통 고난은 내가 의도하지 않게 불현듯 찾아오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대면하기 때문에 반갑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즐거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참여한다는 것은 ‘코이노네오’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는 ‘공유하다. 동업자가 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내가 즐거워하며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도 고난당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케 하시고자 함을 깨닫기 때문에, 이제는 자원하여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불같은 시험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응하며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억지로 감당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그 고난에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로마 병사로부터 채찍을 맞고 침뱉음을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로부터 욕과 저주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행하는 고통스러운 박해를 온 몸으로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고난을 받으셨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 고난을 피할 수 없었거나, 아니면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제압할 만한 능력이 없어서 그 고난을 강제로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난을 피할 수도 있었고, 그리고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제압하실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고난에 참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 아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듯이 하나님 자녀는 고난을 피하는 것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고난을 당할 때에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시험을 연단으로 바꾸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그 고난을 피할 수 없거나, 나에게 고난을 감당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고난을 피하지 않고,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자원하며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고난 중에서도 내 감정과 생각대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응하기 위해서 그 고난을 자원하여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욱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깡패 목사로 알려진 김익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1874년에 황해도 안악군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유교집안의 외아들로서 귀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학문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그가 16세 되던 해에 과거 시험을 보았는데 그만 낙방하였습니다. 그 이후로 젊은 김익두는 많은 고난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시험에서 떨어진지 얼마 안되어 그의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김익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장사를 시작했는데, 그만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김익두는 술을 마시게 되고, 마을 사람들을 폭행하며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난폭하게 사람들을 대했는지, 사람들은 김익두를 ‘안악골 호랑이’라고 불렀고, 어떤 사람들은 ‘오늘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해 주소서’ 하고 성황당에 가서 빌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김익두는 스왈렌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네사람들을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김익두가 변한 모습을 보고서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 귀신에 사로 잡혔다며 정신 이상자 취급을 하며 도리어 욕하고 핍박했습니다.
김익두가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자 그는 동네에 ‘김익두 죽다’라고 방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김익두가 정말로 죽었는지 시험하려고, 그는 김익두 얼굴에 더러운 물을 퍼부었습니다.
김익두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이내 감정을 다스린 김익두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예수를 믿은 것은 나인데, 복은 당신이 받는구료'라고 말했습니다. 김익두는 예수님을 믿은 후에 고난을 받는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며 그 고난을 이겨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김익두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과 시베리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시다가 1950년 공산군이 쏜 총에 순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단하시고자 주시는 불시험은 억지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스스로 그 고난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은 불시험을 통해서, 성도들이 언제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존재로 훈련을 받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 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좋은 일을 경험하면 찬송하고 즐거워하지만, 고난을 당하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원하시는 것은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고통가운데 훈련받은 사람들은, 어떠한 순간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불시험 중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성도의 영광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18절에,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복된 것은, 그 고난으로 인해서 하늘의 영광을 더욱 소망하게 되고, 결국 하늘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26절에는, 성경은 모세의 고난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이 땅에서 왕자로서 부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것보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같이 고난받는 것을 더 즐거워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기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에 이르게 하는 관문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이 고난에 참여하며, 또한 이 고난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과할 때에, 또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상과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불시험을 당할 때에 그것을 즐거워하라”는 베드로의 말은 정말로 이상한 말입니다. 하지만 불시험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불시험은 성도들에게 특권과도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받는 것이 불시험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고난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훈련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반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난을 억지로 당하는 자가 아니라,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에 피하고 싶고 원망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응하며, 그 고난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만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해져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에게 불시험의 시련을 주심으로써, 성도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늘 영광돌리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늘 불시험과 같은 시련의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일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 고난에 참여하여 그 시험을 이김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하나님 자녀의 모습으로 더욱 성숙하고 변화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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