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4/2019 - 음부에서의 탄식 [누가복음 16:19-31]

by Rejoice posted Aug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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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복음 16:19-31, “음부에서의 탄식 Groaning in Hades”

대부분 사람들의 주된 관심은 이 세상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두고서 고민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들이 관심해야 할 또 다른 세상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죽은 이후에 맞이하게 될 세상입니다. 왜냐하면 그 세상은 이 세상처럼 한시적이지 않고,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보통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관심합니다.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할지,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할지, 건강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문제가 있을 때에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 관심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일들을 뒤로 하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관심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제가 장례식에 참여할 때입니다. 그 때에는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이 세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에도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장례식은 죽은 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예식이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이 삶의 모든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살아야 할 세상도 있고, 이를 준비해야 함을 일깨워주는 것이 장례식이라는 것입니다이 자리가 장례식 자리는 아니지만,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두 사람의 죽음을 비유로 말씀해 주심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이 세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관심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부자로서 이 세상에서 마음껏 즐기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성경은 부자를 소개하면서 그가 입었던 옷이 자색옷이었다고 말합니다. 혹시 보라색 옷, 자색옷 입으신 분 계세요? 자색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아주 부자였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당시 자색(Purple) 옷감은 아주 귀하고 흔하지 않아서 그 값도 아주 비쌌습니다. 자주색 염색은 두로(Tyre)지방에 사는 페니키아(Phoenicia) 사람들이 독점하였습니다. 페니키아 인들은뿔 고둥’ (Murex Snail)에서 자색염료를 축출하는데 그 양은 극히 소량이었습니다. 1평방미터의 자색 옷감을 만들기 위해서 약 40,000마리의 뿔 고동을 잡아야 했고, 사람들이 일일이 그 고동에서 자색의 염료를 축출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색옷은 아무나 입을 수 없었고, 왕이나 귀족, 그리고 큰 부자가 입을 수 있는 옷이었습니다. 자색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로 그가 얼마나 부자였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색옷을 입은 부자는 이 세상에서 소유하고 싶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나사로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부자와는 반대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지였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와 같이 삶을 즐길만한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으로 연명하고자 부자집 대문 앞에 누워 살았습니다. 나사로는 거지인 것도 속상한데 건강도 엉망입니다. 몸에 헌데가 나서 고통스러운데, 동네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습니다.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부자에게는 이 세상이 천국같고, 나사로에게는 이 세상이 지옥 같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죽은 이후에 직면하게 되는 세계는 이 세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어서 평안을 누리지만, 부자는 불구덩이가 있는 곳으로 떨어져 끊임없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죽음 이후의 세계는 부자와 나사로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죽어서 마주하게 될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중요한 세상이 죽음 이후에 있음을 깨닫고, 그 세상에 들어갈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항상 힘써야 합니다.

 

1.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 중에서 어디를 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믿으십니까세상 사람들은 물론,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천국과 지옥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하고 그 존재를 의심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죽어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말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도 그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단 죽게 되면,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게는 되겠지만, 문제는 그 때는 이미 천국에 갈 기회를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가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과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무지함 가운데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미리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부자가 이 세상에 살 때에 천국과 지옥이 있는지를 믿지 않고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어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때는 돌이키기게 이미 늦었습니다. 부자는 죽어서 음부(Hades) 라는 곳에 가게 됩니다. 음부는 죽어서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음부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부자와 같은 사람들은 불이 타는 곳에 던져집니다. 그곳은 너무 뜨거워서 죽을 지경인데 죽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거지 나사로와 같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안식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음부의 불구덩이에 들어간 부자가 탄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어쩌다가 이러한 곳에 오게 되었을까?” “천국과 지옥을 믿었더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텐데, 살아있을 때에 잘 살 걸살았을 때의 즐거움이 허망하기만 하구나…”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죽음 이후의 삶입니다

부자는 음부에서의 불구덩이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부자가 있는 곳과 아브라함이 있는 곳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어서 서로 건너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단 음부의 불구덩이에 가게 되면 그것으로 끝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동시에 관심해야 할 세상은 이 세상에서 죽어서 맞이하게 될 죽음 이후의 세상인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을 앞에 두게 될텐데, 그 때에는 천국에 가고 싶어도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 땅에 있을 때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합당한 삶은 무엇입니까? 오늘 읽으신 말씀을 보면 대부분이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부자의 대화를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합당한 삶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부자는 아브라함과의 대화를 통해서, 더 이상 음부(Hades)의 고통을 피할 수도, 줄일 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자의 탄식의 마음은, 아직 죽지 않고 세상에 남아 있는 다섯 형제들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바뀝니다. 왜냐하면 그 부자가 생각하기에, 그의 다섯형제들도 죽으면 자기와 똑같은 곳에 와서 고통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부탁합니다. “아브라함이여, 나에게는 아직 죽지 않은 다섯형제들이 있는데 그들이 이곳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살려 보내서 그들에게 증언하게 해 주십시오.”

부자가 생각하기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그들에게 전한다면, 형제들이 확실하게 그 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고 말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와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으니, 그들이 그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꼭 죽었던 나사로가 돌아가서 증언할 필요가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모세나 선지자의 말로는 안 되고,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서 그의 형제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제서야 그의 다섯형제들이 회개할 것이라고 부자는 말합니다.

부자는 자신들의 형제가 어떻게 천국에 올 수 있는지를 늦게 나마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들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듣고 회개한 후,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 때에 천국에 올 수 있음을 부자는 늦게나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천국은 죄로부터의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삶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도 마태복음 3:2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3:8절에는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한 자, 그리고 회개한 후 죄된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모세와 선지자가 전한 말로는 형제들이 회개할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아마 부자가 그랬기 때문일 것입니다부자도 유대인으로서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들었지만,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를 뒤늦게 알게 된 부자는, "제발, 모세나 선지자가 아니라, 죽은 나사로를 통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부자의 애타는 부탁을 들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는 것은, 죽은 자가 살아나서 말하는 기적과 같은 일을 근거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도리어,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아 천국에 이르는 기적은, 사람들이 모세와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죄된 삶을 깨달아 회개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구원이 거지 나사로를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된 이유는, 그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가난하고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니고, 그 보상으로 죽어서 좋은 곳에 가게 된 것도 아닙니다. 30절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에, 부자나 그의 형제들은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았지만, 나사로는 살아있을 때에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하는 말이면, 그 말을 더욱 믿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 전한 말을 근거로 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특별한 기적을 일으킨다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신령하게 생각해서 그 말을 무조건 믿으려고 하겠지만, 믿음은 그러한 사람들의 말에 근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눈에 보이는 기적적인 사건이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기적적인 현상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믿을 때에, 그 믿음으로, 우리는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에 천국에 이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3.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할 때에도 이 땅에서의 삶의 변화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살아야 합니다.

나사로가 모세와 선지자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나사로에게는 어떠한 환경의 변화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가난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헌데(sores)가 고쳐지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 아픈 상처를 개들이 핥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그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일 때에도 그가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끝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사로는 그러한 상황가운데서도 모세와 선지자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란 이름은 신약성경에 두번이 나오는데, 그 이름의 뜻은하나님이 돕다.’ 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그를 도울 이들도 없었지만, 나사로가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고 모시고 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천국에 이르도록 끝까지  도우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없는 것 없이 다가지고 있었고, 이 세상에서도 즐거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에게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지만, 한 가지 소유하지 못한게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누리는 천국과 같은 삶이, 죽은 이후에 진정한 천국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물질과 권력도 우리를 천국에 들어 가도록 도울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때로는 나사로와 같을 때도 있고, 부자와 같을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건강할 때도 있고, 병들어 아플 때도 있습니다.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높을 때도 있고, 가난한 때도 있습니다. 상황들은 다 변할 수 있지만,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천국과 지옥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천국에 들어갈 합당한 삶을 잘 살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 살다가 보면,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 다가 아니라, 그 죽음이후에 세상이 있고, 진정한 천국을 바라보며 준비하며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는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삶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천국과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천국에 합당하지 않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주 허무한 삶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죽음 이후에 맞이하게 될 새로운 삶에 대해서 관심하며, 준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도 또한 죽음 이후의 천국의 삶에 대해서 관심하고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자와 같은 삶을 살던지,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삶을 살던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죄된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은혜에 부끄럽지 않은 회개에 합당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감으로 천국에 이르는 삶을 죽기까지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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