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관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이유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평화의 관계로 회복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그리스도안에서 화목의 관계를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평화의 관계를 시기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사탄입니다. 사탄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안으로 들어와서 악하게 역사합니다. 특별히 사탄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간질해서 관계를 깨뜨려서,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문제가 되도록 생기도록 만듭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관계를 힘들게 만들고, 교우들이나 친구사이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들어서 어려움을 주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다윗같은 경우에도 관계의 어려움을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전쟁터에 나간 형들과도 마찰이 있었고, 왕이 된 후에 아들들과도 힘든 관계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성경에는 다윗이 사울왕에게 쫓기는 이야기가 길게 나와 있습니다. 그 만큼 다윗은 오랫동안 사울왕으로부터 고통을 당했습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동원해서 다윗을 쫓았습니다. 한 나라의 왕의 추격을 받는다는 것은 아주 불안한 일일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이러한 다윗에게 사울왕을 죽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다윗을 쫓던 사울이, 배변을 보기 위해서 혼자의 몸으로 한 동굴에 들어왔는데, 그 안에 다윗과 그 일행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배변을 보러 혼자 굴로 들어왔으니 사울을 보호할 군사들도 없었고, 다윗을 공격을 막아낼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동굴안으로 들어오는 사울을 보면서 다윗과 그 일행은 흥분했을 것입니다. 무고하게 자신들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신들이 그 동굴안에 있는 것도 드러내지 않고, 사울 왕이 용변을 다 보고 가도록 그냥 놔둡니다.
그리고, 다윗은 나중에 멀찍이서 사울왕에게 자신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말합니다.
동굴속에 들어온 사울을 대하는 다윗의 태도를 보면서, 우리의 다양한 관계속에서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들도 관계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사울은 다윗을 잡으려고 이스라엘에서 뽑힌 삼천명의 사람을 데리고 갑니다. 다윗이 대단한 잘못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둘 사이의 관계가 벌어지게 된 이유를 보면 다윗의 잘못도 아니고, 다윗이 잘 되는 것을 본 사울이 그를 시기한 것입니다.
사무엘상 18:9절에 보면,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다.” 고 했는데, 그 날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오는 날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의 여인들이 사울을 환영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라고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사울은 그 말에 아주 불쾌해 했고, 그 날 이후로 사울은 다윗을 미워했고, 악령이 들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더욱 시기하고 미워했던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셔서, 다윗이 하는 일이 잘 되었기 때문입니다.
18:14절에서 보면,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기에 지혜롭게 행할 수 있었고, 행하는 일들이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신 이유는,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니,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가 좋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사울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함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고, 극기야, 하나님이 함께 하는 다윗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악한 영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들을 그냥 두지를 않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대적의 관계를 만들어서, 자신의 유익을 취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세상이 제자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19절에,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을 다스리는 악한 사탄의 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미워합니다.
그래서 다윗과 같이 상대방에게 선하게 대한다고 할지라도, 이를 왜곡하고 악하게 반응하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한 영의 계략에 잘 대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악의 영은 사람들을 분열시킵니다. 그것도 대단한 일이 아니라, 사소한 일을 오해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믿음안에서 화목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이들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때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그러질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믿음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2. 사람들과 바른 관계를 위해서는, 자신의 생각대로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사울이 동굴안으로 홀로 들어올 때에, 다윗과 그 일행은 사울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합니다.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이 먼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라고 합니다.
다윗에게 이러한 조언을 한 사람들은, 다윗의 일행으로 함께 사울에게 쫓기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에 사울이 동굴에 홀로 들어 온 것은 ,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라고 주신 기회고, 이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습니다.
왠만한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기름 부으셨으니, 사울을 죽이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것을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라고 말하면서, 사울 치기를 거절합니다. 자신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울을 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사울에게 말하기를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다윗과 같은 일을 당할 때에, 악한 마음을 품고 복수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복수할 기회를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로 인하여 악한 마음을 품고, 악에 얽매이는 것을 거절합니다.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울에게 선을 행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서 악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7-18절에,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늘 선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 또한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를 위해서는, 자신을 겸손하게 내려 놓는 일이 필요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왕인 사울이 쫓고 있는 다윗 자신은, 죽은 개나 벼룩과 같은 별볼일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앞에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춥니다.
서로의 관계가 힘들어지게 되는 것을 보면 그 가운데 상대방을 향한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사울왕은 스스로를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기에, 다윗의 인기와 성공을 보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상대로 대적하였고, 불화의 관계를 맺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언제나 사울에게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창을 던지며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사울을 대적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어 행동했습니다.
잠언 13: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관계의 어긋남에는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을 높이려고 할 때에 다툼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상대방을 대할 때에 관계의 회복이 있게 됩니다.
4. 그리고, 다윗은 사울과의 관계를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말합니다. “ 여호와의 재판장이 되셔서 둘 사이를 심판하시고,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왕에 손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다윗이 가지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사울과의 모든 관계를 아시고, 공의롭게 판단하셔서 행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사울왕의 손에서도 구해줄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그 관계 가운데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관계속에서 있는 어려움을 사람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모든 형편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다윗의 일행이 다윗에게 말했듯이, 자신의 좋은 대로 판단하고 행하다가 보면,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어긋나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의 관계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옳은 대로 판단하고 행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어긋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계략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관계의 어려움을 가질 때에, 스스로 옳은대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공의롭게 대해 주실 것을 믿으며, 서로에게 선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과 어떠한 관계를 형성하느냐는 믿음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안에서 화목을 원하시지만, 사탄은 이러한 관계를 깨뜨려서, 믿음생활을 잘 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누구든지 관계의 어려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더욱 시기와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대로 살려고 할 때에, 사탄의 공격대상이 되고, 이러한 시험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때에 자기 생각에 좋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생각에 좋은대로 행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이 겸손하게 낮추어야 합니다. 사탄은, 다윗이 사울을 공격할 기회가 있었을 때에, 사울을 죽여서 악으로 갚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울을 살려 주었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었습니다.
로마서 12: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이기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같이 악한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혹시, 동굴로 들어오는 사울을 보는 것과 같은 상황이 있으십니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앙갚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까? 그런데 그 기회는 악으로 갚으라고 주시는 기회가 아니라, 그 때에 더욱 아량을 베품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를 믿는 믿음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라와 나라사이, 인종과 인종 사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갈등속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사회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갈라놓고, 시기하고 미워하게 하지만, 더욱 힘써 화목의 관계를 지키며, 주님의 선하신 일들을 감당하는 관계로 세워져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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