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크리스마스 주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위분들과 인사하시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원래 크리스마스는 라틴어 그리스도(Christus)와 모임(Massa)이 합쳐진 말입니다. 곧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바로 오늘과 같은 모임, 예배를 말합니다. ‘메리’는 기쁜 이라는 뜻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는 예배 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보다 사람들은 해피 할러데이라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와 기쁨을 전할 수 있는 시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인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 말씀에 보면, 요셉이라는 남자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은 천사를 만나기 전까지 상당히 당황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라고 하는 한 처녀와 약혼을 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약혼녀가 임신을 했다고 요셉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자신은 그녀와 동침한 일도 없는데 임신을 했다고 하니, 다른 남자의 아이였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리아는 그 아이가 성령님을 통해서 임신한 것이고, 임신한 아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는 겁니다.
누가 마리아의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셉은 조용히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결심을 합니다.
이렇게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때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서 요셉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가 말하기를, 마리아가 잉태한 아이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고 합니다.
천사의 말을 들은 요셉은 비로서, 마리아의 말이 진실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임신한 아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꿈 이후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지 않고, 결혼해서 함께 살게 됩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임신한 아이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이야기 해 주었을 뿐아니라, 그 아이에게 붙일 이름까지도 알려 줍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기 전에 마리아에게 나타났을 때에도 마리아에게 그 아이의 이름을 부모와 의논도 없이 아이에게 지어줍니다. 그 만큼 그 아이의 이름이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리고 구약에 예언된 또 하나의 이름이 나오는데, “임마누엘’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짓지 않습니다. 아기 이름을 지을 때에 얼마나 좋고 의미있는 이름을 위해 고민하십니까?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 바램을 담아서 이름을 짓게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독생자를 마리아를 통해서 이 땅에 보내실 때에 그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아 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 ‘예수’와 ‘임마누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탄생의 의미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예수’라는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땅을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십니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에는 ‘구원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사람을 구해내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소방관들은 불이났을 때에 불에 타 죽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불구덩이로 뛰어 들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속로 뛰어 듭니다. 의사들 또한 병들거나 다친 사람들을 고치기 위해서 늘 대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선가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구원은 이 세상 사람들의 구조활동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의 생명도 귀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영적인 생명입니다. 아무리 육신으로는 건강하고 멀쩡한 사람이라도,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뉴스를 보게 되면 오늘날 일어나는 크고 작은 범죄나 미움으로 인한 분열과 갈등의 모습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 일어나는 악한 일들은 이 사회가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나타내는 현상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죽어가게 되면 헛된 즐거움이나 욕심을 따라 사는 허망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구한 베테랑 소방관이나 경찰관 같은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영혼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들도 죄로부터 그 영혼이 구원받아야 사람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의 이름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유일한 이름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영혼이 죄의 죽음으로부터 구원받아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 성탄에 계절에는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로 고백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2.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라는 이름뿐만 아니라, 또 다른 이름이 나옵니다. 바로 ‘임마누엘’입니다.
이사야 7: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야가 탄생할 때의 징조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심으로 메시야이심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이라고 하는 이름의 뜻이 이러합니다.
히브리어로, ‘임’은 ‘함께’, 그리고 ‘마누’는 우리와, ‘엘’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은 구원이라는 예수라는 이름과 별개가 아니라, 큰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바로 ‘임마누엘’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 아담과 하와를 만드실 때에, 에덴동산에서 함께 하는 관계로 만드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게 만듭니다.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피해서 숨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멀어지게 되고, 사람들은 더욱 죄 가운데 살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멀어지게 되면, 그 사람은 죄 가운데 살다가 멸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대로 살아갔을 때에 그 나라가 평화와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신을 섬기고, 세상의 문화를 따라 살아갈 때에 그것이 죄가 되었고 멸망을 가져 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다는 것은, 세상과 가까워진다는 것이고, 사탄과 가까워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처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죄인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입니다. 곧 구원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서 그분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해 동안 누구와 함께 하기를 위해서 힘쓰셨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하기 위해서 시간과 물질, 노력을 투자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함께 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생과 관련된 분이기 때문입니다.
3. 그러기에 성도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평생 과제는 우리와 함께 하려고 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곧 구원을 이루는 삶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천년전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예수님을 통해서 직접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그 육신은 이 땅에 없으십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에 눈에 하나ㅏ님이 보이든, 안 보이든지 상관없이 의심없이 하나님의 함께 계심을 믿었던 사람입니다.
시편 139:7-8절에,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비록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늘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도 없는 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에도 누가 계십니까? 너무 힘들고 어려워 눈물 지을 때에도 누가 함께 계십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의존해서 살아갈 때가 많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집에 인터넷을 와이파이로 연결하는 일은 일상적입니다. 저희집에서도 와이파이로 컴퓨터와 휴대폰, 타블렛 등을 연결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와이파이 신호를 연결하려고 신호를 찾으면, 와이파이 신호가 열개 이상이 잡힙니다. 우리집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집들에서 보내는 와이파이 신호가 잔득합니다. 그 신호들은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신호들이 있어서, 눈에 보이는 컴퓨터의 인터넷이 작동을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와이파이 신호에는 음악도 있고, 영화도 있고, 글씨도 있고 없는 것이 없습니다.
비록 내가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의심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 이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임마누엘의 믿음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예배당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누가 있나하고서 들어가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예배당앞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데, 그 상대방은 누구인지 보이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가까이가서 보았더니, 그 자매는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자매는 영적으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과 대화하듯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믿음은, 사람이 안보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 것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게 합니다. 때로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에, 사람을 찾기 보다는 하나님앞에 나와 도우심을 구하며 소망가운데 살아갑니다. 혼자 있는 것 같은 고독을 느낄 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위로받고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예배를 드릴 때에도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향하여 예배하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인정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어느 덧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계심을 체험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서 오신 사건입니다. 이 세상을 위기로부터 구원하겠다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이 모든 죄의 현상들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우리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이 성탄의 계절을 지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오심에 응답하는 삶을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 누구와 함께 있는 것보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살아가길 관심하며 살아야 합니다.
구원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임마누엘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점점 사라져 가는 이 크리스마스, 성탄의 계절에,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바램을 기억하면서, 임마누엘의 믿음을 가지고 주님과 동행하는 계절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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