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빠의 보통 아닌 육아’라는 책에, 저자가 첫돌을 맞은 아이의 돌잡이를 준비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저자가 아내에게 묻습니다. ”돌잡이때 윤이가 뭘 잡으면 좋겠어? 청진기, 판사봉 이런 건 별론데. 직업이나 돈 말고 우리가 심어주고 싶은 가치를 돌잡이 캐릭터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리고 부부는 돌잡이를 준비하며 아이에게 심어주고 싶은 가치 여섯 개를 캐릭터로 만들었습니다. 정의(슈퍼맨), 유머(유재석), 건강(에너자이저), 성실(박지성), 인격(김대중), 창의(스티브 잡스). 남편은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윤이가 어떤 걸 잡으면 좋겠어?” “아 어렵다. 뭐 하나 뺄 게 없네.” “아하! 아무거나 잡아도 줄줄이 다 딸려 올라오게 실로 몰래 묶어 놓는 거야!” “우와 완전 기발한데? 여보는 진짜 천재야!”
이것이 보통 부모의 마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세상에서 잘되며 있는 복을 다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마음은 곧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놓여진 것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말해 줍니다.
모세는 그 동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이러한 풍요를 누리면서 살아갈 것을 기대했습니다. 가나안 땅에만 들어가면, 애굽에서의 430년의 노예생활과,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보상받기에 충분한 복이 그들앞에 보장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말을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무엇을 두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가나안 땅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복과 생명이 보장된 만사형통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망과 화를 만날 가능성이 여전히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망과 화를 말씀하신 것은, 그들이 사망과 화를 경험하는 삶이 아니라, 복과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라고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우리의 앞에도 하나님은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앞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이들은 생명과 복을 누리는 이들이 있고, 어떤 이들은 사망과 화를 당하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복과 생명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알지 못하기도 하고, 알아도 그 방법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저주와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앞에 놓인 복과 저주, 생명과 사망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가 복과 생명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해 어떤 방법을 주셨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절에 보면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서 생존하고 번성하게 되고 복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 세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라.” “청종하라.”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1.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잘 사는 길은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랑하지 말아야 할 대상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엉뚱한 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살면서도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그 땅에서 쫓겨나는 것도 사랑해야 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사랑하며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시라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또한 복을 주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들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돈이 나의 복이고 생명이라고 믿는 이들은 돈이 없으면 못산다고 믿고 살아갑니다. 배우자를 너무나 사랑하거나 자녀를 너무 사랑하게 되면, 그들이 없으면 죽을 것같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돈이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죽을 것 같지만, 막상 그러한 것들이 없어도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물질과 사람은 우리에게 복과 생명을 주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죽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고, 또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도 다른 것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강조합니다. 신명기 6장에서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그 방법까지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적당히 사랑해야 할 분이 아닙니다. 시간되고 여유가 되면 사랑하고 그렇지 않으면 뒷전으로 밀어버리는 사랑을 하나님에게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서 사랑해야 할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적당하게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기까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죄인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11절에,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하셨습니다. 목자가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단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그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목자되신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양된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을 증명해 보여 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사랑해서 목숨까지 바치신 분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텐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복과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으니 더욱 감사한 일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드려, 심지어 생명까지 드려서 사랑해야 할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또한 그들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두번째로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라”고 명령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말을 잘들어주는 사람이 좋습니까? 아니면 사사건건 이렇게해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좋으십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자신이 해달라는대로 해 줄 것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빠지는 이유가 그 이유입니다. 우상은 말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우상을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말을 우상하게 하면, 우상이 그 말들을 이루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으로 볼 때 하나님이 외면을 당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향하여서 지속적으로 말씀하시고, 사람들은 그 말씀을 청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복을 받고,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16절에,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합니다. 명령과 규례, 법도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령으로 들어야 합니다. 명령은 강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고 주인이심을 인정할 때에 그 명령 his commandments 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규례는 his statutes 법령, 규정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의 법으로 여길 때에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법도 His judgements 를 지키라고 합니다. 법도는 재판장의 판결을 의미합니다. 내가 내 삶의 재판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고 믿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습니다.
모세는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키다’라는 말은 ‘솨마르’라고 해서, 본래 의미는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이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8:11-12절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새가 와서 그 씨를 먹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해 주십니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하나님의 말씀의 소중함을 아는 존재가 있습니다. 마귀입니다. 이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이 복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질 때에 그것이 그 마음에 뿌리내리고 열매맺지 못하도록 낚아채 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사람들은, 그 말씀의 가치를 알고, 울타리를 치고 그 말씀을 잘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들이 그 말씀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지켜야 합니다. 내 생각과 감정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지 못하도록 내 주권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마음의 밭에 그것을 간직하고 잘 지켜 나갈 때에 그것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솟고, 열매를 맺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고 하셨고, 또한 미간에 붙여서 표를 삼고, 집 문설주나 바깥 문에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보기위해서 공부할 때에 그 답을 외우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노트에다가 반복해서 글을 적고, 그리고 입으로 몇번씩 반복하면서 답을 외웁니다. 그런데 그 어떤 공부보다 열심히 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저는 몇년 동안 일대일 제자양육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교인들은 매주 2구절을 암송해야 하는데, 그 말씀을 암송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십니다. 어떤 분은 그 말씀을 열번 이상씩 쓰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운전석 대쉬보드에 성경구절을 붙여 놓고 지속적으로 암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마음에 두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복과 생명을 받는 방법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사람 사이에도 자신이 말한 것을 우습게 여기면 기분 안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며, 자신의 생각과 말을 앞세우는 이들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 말씀을 마음에 두고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삶을 복되고 잘되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3.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받고 잘사는 길은, 하나님의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고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는,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생활이 힘들었지만 유익했던 것 중에 하나는, 광야에서는 하나님 한분만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다고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적자들이 나타날 때도 결국 하나님의 힘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오니 풍요하게 되니까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도 다른 것들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안주셔도 자신들이 농사지으면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옷과 신발이 헤어지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만들어 입고 신으면 됐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필요로 하면, 신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풍요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속에는 하나님 말고도 의지할 만한 것이 많아 보이고, 스스로의 능력을 의지하면서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에게도 잠언기자와 같은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굴이라는 사람은 잠언 30:7-9절에,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사람이 부하게 되면 필요한 것을 스스로 구하고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과 생명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의지하라’는 영어는 Hold fast 로 본연하고 있습니다. 단단히 붙잡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의지하는 존재를 붙잡습니다. 돈을 의지하는 이들은 돈을 꽉 붙잡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이들은 사람을 꽉 붙잡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 날마다 하나님 앞으로 나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세상 것을 의지하기 위해서 좇아가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 기도하며, 예배하며 주님께 나오는 이들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소개했지만,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복뿐만 아니라, 저주와 멸망도 놓여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이 복과 풍요를 추구하면서 살아갈 때에, 도리어 하나님의 저주와 멸망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은, 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찾고 구하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복은, 복받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과 힘, 생명을 다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복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은, 복받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능력이 되심을 믿고 꽉 붙잡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가나안에 있던지, 애굽에 있던지, 광야에 있던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지키며, 그분을 의지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면, 우리가 언제 어디에 있던지 상관없이 그것이 복된 삶인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과 생명만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저주와 사망도 내리시는 분입니다.
17절에 보면,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을 절하고 그를 섬기면… 그러면 복과 생명이 아니라 사망과 저주가 있을 것이다.” 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과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지만, 그에 합당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저주와 사망을 주시는 분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28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하나님은 단순히 사랑해야 대상만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과 풍요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두신 복과 생명을 누리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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