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1/2020 -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 [로마서 5:12-19]
오늘은 사순절 첫번째 주일입니다. 올해는 부활절이 4월 12일인데, 부활절 전 주일을 뺀 40일간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이 기간동안,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이 나의 죄로 인한 것임을 상기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신앙생활의 기회로 삼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관심은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관한 보도입니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여행을 취소하신 분들도 많으시고, 각종 공공 집회들도 취소되고 있습니다. 이제 올림픽도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공포스러운 것은, 그 병이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병을 옮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염병을 관리하기 위해 역학조사 (Public Health Surveillance)라는 것을 하게 되는데, 그 전염병의 원인이 무엇이고, 무엇보다 전염병을 퍼지게 한 첫 사람을 찾기에 힘을 씁니다. 그래서 첫번째로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누구와 접촉했는지를 확인하고, 더 이상 전염병이 퍼지지 않게 그 사람들을 격리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사도바울은 이 땅에 죄와 사망을 퍼트린 처음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은 육신적인 사망이 아니라, 영적인 병, 죄로 인한 사망을 말합니다. 아담은 이 땅에 영적인 죽음을 처음 들여 놓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죄가운데서 영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담과 반대되는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퍼트린 죄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갈 때에, 그 죄의 병을 치유하시고 생명을 가지고 오신 분입니다.
한 사람이 별거 아닌 존재처럼 여겨지지만, 인류에게 죄의 병을 시작해서 사망에 이르게 한 것도 한 사람으로 시작된 것이고, 또 사람을 살리는 일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니, 우리 각자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대단하신 두분을 소개하고, 우리는 어떤 사람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오늘날 사람들이 육신적으로는 더욱 건강해졌고, 수명도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죄의 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죄처럼 고약한 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병을 고치지 않으면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안 계신 지옥으로 영원히 격리되어 지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고약한 죄의 병이 한 사람, 곧 아담으로 인해 이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들어온 죄의 병은 그 뒤에 태어난 자손들에게 퍼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게 되고, 모든 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어떤 전염병보다 무서운 것이 죄의 병입니다. 그런데 죄의 병이 무서운 것은, 그 병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전염병은ㄴ 안 걸리려고 앴는데 영적인 병은 무감각하기 쉽습니다.
창세기 6: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근심하셨습니다. 영어성경에는 고통스러워하셨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죄가운데 살면 영적인 죽음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죄의 병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그 병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사니까 얼마나 신나고 좋습니까? 결국 자신들의 죄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은 홍수를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죄로 인해서 세상에서 멸망당하고, 그 영혼도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죄의 병은 고약하지만 죄를 짓는 사람들 중에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리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풍요하게 살아간다고 자축하며 기뻐하지만, 하나님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이 없는 영원한 사망, 지옥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아담은 이 세상에 죄의 병을 가지고 온 첫사람으로 불명예스럽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사도바울은 아담과 정반대인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이 땅에 죄와 사망을 들어오게 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생명을 시작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모든 죄를 자신이 직접 담당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를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가장 심각한 죄인에게 내리는 벌이 십자가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매달리심으로, 죄의 형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실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영적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 하늘을 향해서 고통속에서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세상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께서는 그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영적으로 단절되는 절망을 맛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때 죽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집니다. 하나의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단절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단정되는 고난과 죽음을 당하셨기에, 우리가 죄의 병으로부터 나음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사람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심으로, 나는 죄로부터 구원받아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때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과 같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이 땅에 죄를 전염시킴으로 모든 사람을 죄짓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지심으로,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3.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의 병을 이길 약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죄의 권세는 전염성이 강합니다. 그러기에 죄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경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에 의해 우리의 영이 병들지 않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 먼저, 죄와의 접촉을 금해야 합니다.
이번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난리입니다. 샌안토니오에서도 마스크 사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10개의 약국을 들렀는데 겨우 한 가게에서 몇개의 마스크를 사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많은 마스크들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찾아 볼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말씀해 주시더라구요. 많은 사람들이 예방을 위해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 샀거나, 중국과 한국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가 없으니까, 미국에 사는 가족들이 이곳에서 마스크를 사서 보내느냐고 마스크가 동이 났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전염병을 막기 위해 병균과 접촉하지 않도록 애를 씁니다. 마스크를 쓰고 손을 깨끗히 함으로 병균을 차단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죄의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것을 멀리해야 합니다.
시편 1:1절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악한 것들을 가까이 하게 되면 자신도 물들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이 땅에 사망을 가지고 온 것을 보면 아담이 처음부터 악한 존재로 만들어져서가 아닙니다. 아담이 살던 에덴이라고 하는 곳은 죄로 없는 청정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도 영적으로 깨끗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사탄인 뱀이 접근해 오는 것입니다. 순진한 하와가 뱀과 몇마디 나누다가 그 생각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게 됩니다. 그리고 하와는 남편 아담에게 갑니다. 그리고 남편도 그 선악과를 먹게 만듭니다.
사람들이 죄에 빠지는 이유는 죄의 유혹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결과는 끔찍한데, 죄의 유혹은 달콤합니다.
“너도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있어. 한번 먹어봐. 날 믿어봐 ” “세상 사람들은 다 하는 일인데 뭐 어때. 하나님도 이 정도는 용서해 주실거야. 너도 한번 해봐” “이번 딱 한번만 해봐. 아무도 모를거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이러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죄의 권세를 이겨야 합니다.
이번에 코로나19를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전염성이 강한 것입니다. 사람을 멀리하고, 마스크를 써도 자기도 모르게 감염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바이러스에 걸렸어도 그것을 이길 면연력이 있는 분들은 좀 고생은 하지만 그 병을 이깁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그 병이 생명에 치명적입니다.
우리가 어느 때든지 죄의 유혹과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피할 수 만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를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의 병을 이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순종의 차이입니다.
로마서 5:19절에 보면,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와는 뱀이 와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잘못되었으니, 선악과를 따먹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을 때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말에 순종했습니다. 그 일로 이 땅에 죄와 사망을 들여놓은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하셨을 때에 역시 사탄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말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최고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라는 말씀까지 순종하심으로, 모든 죄인들이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죄의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을 안다고 병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병을 고치는 백신을 가지고 있다고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먹어야 하듯이 말씀의 약을 먹고 행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선함으로 악을 이길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럴 때에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아담 한 사람으로 인해 인류가 죄가운데 죽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인해 모든 인류가 살길을 얻었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이 땅에 사망이 들어왔고, 한 사람으로 생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누군가의 한 사람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여기 계시는 우리 각자는 시시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을 시작으로 해서, 몇 백년이 지나게 되면, 한 도시가 생기고, 한 나라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각자가 얼마나 중요하고 대단한 지를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아담과 같이 행할 때에 내 자신이 영적으로 죽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이들을 죽이는 일을 하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내 뜻대로 살아갈 때에, 그 삶속에 죽음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살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내 가정과 후손들이 살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는 예수님과 같이 영적으로 살리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내 자신이 영생을 살아가고, 또한 죄의 전염병 가운데서 죽어가는 사람과 가정, 학교, 이 사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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