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이끄셨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받은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만 광야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이 광야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예수님도 광야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또한 광야로 같은 상황으로 이끄시고, 그곳에서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훈련시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광야가 어떠한 곳인지를 잘 알아야지, 그 광야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8:15절에 그들이 지났던 광야가 어떠한 곳인지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광야는 물이 없는 간조한 땅입니다. 오아시스를 찾지 못하면 뜨거운 햇볕에 수분을 잃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는 위험한 곳입니다. 불뱀과 전갈이 있어서 주의하지 않으면 맹독을 품은 뱀과 전갈에 물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바위에서 물을 내셔서 간조한 땅을 적셔주셨고, 불뱀과 전갈로부터 보호해 주셨습니다. 더군다나 광대하답니다. 오랜 시간 그 위험과 불편함을 거쳐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광야의 불뱀들이 대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이 불뱀에 물린 이들이 죽어가기 시작합니다.
이 때 나타난 뱀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동안 광야의 불뱀과 전갈로 부터 보호해 주셨는데, 그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니 그것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하는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불뱀의 습격으로 죽어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제서야 모세에게 와서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고, 그들로부터 뱀들을 떠나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놋으로 뱀을 만들어 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도 그 뱀을 보면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뱀을 떠나 달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그 뱀을 보는 이들마다 살도록 더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병을 주시고 약을 주시는 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내면을 보면 병을 받게 만드는 것도 이스라엘 자신들이고, 또한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게 만드는 것도 자신들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에 따라서 죽음을 내리기도하시고, 또한 자격이 없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떠한 모습들이 뱀에 물릴만한 모습인지를 보면서, 우리는 뱀에 물릴만한 삶이 아닌지를 살펴 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로 지름길을 막으실 때에, 뱀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던 이유중에 하나는, 그들에게 놓인 지름길인, 대로가 막히고, 멀고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산을 떠나서 광야를 행진하던 중에 에돔나라 국경를 만납니다. 그리고 모세는 에돔사람들과 협상을 합니다. 에돔에 난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왕의 대로는 에돔과 모압, 암몬을 잇는 대로로 그 길은 오래전부터 무역통로로 사용되었고, 전쟁시에는 군사도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길을 통과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적지를 편하고 빨리 갈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왕의대로를 통과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 길을 통과할 때에, 에돔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테니 통과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에돔은 모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에돔은 200만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땅을 통과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실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과 먼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야곱의 자손이라고 하면, 에돔은 야곱의 형인 에서의 자손들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에돔이 이스라엘의 길을 막기보다는, 먼저 나서서 자기네 땅으로 통과하라고 해야하는 것이 이치일텐데, 도리어 에돔은 이를 막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에돔과 싸우지도 말라고 합니다. 에돔사람들이 사는 땅은 하나님께서 에서에게 주신 기업이니 그들과 싸우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형제간의 마땅한 도리를 알려주십니다. 에돔이 형제의 도리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이스라엘도 그 도리를 무시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에돔가운데 있는 지름길을 포기하도록 하셨고, 에돔 주변을 돌아서 길도 없는 긴 광야길을 걷도록 하셨습니다.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에돔과 싸워서, 그 왕의 대로를 통과할 수 있을 때에 하나님은 이를 허락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길을 돌아가면서, 불평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대로를 주실 때도 있지만, 왕의 대로를 놔두고 길고 험한 길을 걷도록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불뱀에 물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목적이, 왕의 대로를 걷기 위한 것이라면 불뱀에 물리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이 땅에서 왕의 대로로를 걷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이 최종적으로 걸어야 할 길은 좁은 문을 지나 좁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왕의 대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생긴 편한길이고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었다고해서 그 길이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훈련시키고자 하는 길은, 사람들이 다 걷고 편해하는 대로를 걷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걷지 않는 험한 길들을 걷게 하고자 함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대로를 가지 못한다고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험한 길을 갈 때에, 많은 사람들은 함께 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그 길이 큰 길이건, 좁은 길이던,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인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주신 은혜가 하찮게 여겨질때, 불뱀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할 때에 말하기를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합니다.
광야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는 곳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식물이 없는 그곳에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날마다 만나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밥을 지어 가족들에게 먹여주는 것과 같이, 날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먹여주심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그들에게 있음을 손수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물을 찾겠다고 우물을 판 일도 없습니다. 먹을 것을 위해 씨를 뿌리거나 농사를 짓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서 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들이 그럴만한 뭔가를 행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만나를 언약궤안에 넣어 기념하도록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만나는 하나님께 있어서는, 중요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음식을 귀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그 음식을 ‘박한 음식’이라고 경멸합니다. 박한 음식이라고 하는 것은 ‘가치없는, 경멸할 만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는데, 그 사람이 그 음식을 먹으면서, 맛이 왜 이렇게 없냐고? 입맛 버리겠다고 말한다면 어떠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하찮게 여겨질 때에 그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만나를 하찮은 음식으로 여겼던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만나를 먹을 때에 아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민수기 11:8절에, 처음 만나를 먹었을 때에 소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맛 같았더라”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어떻게 됩니까? 기름 섞은 과자같은 만나가 ‘박한 음식’이 되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시간이 지나니까 너무 익숙해지고, 이제는 그 은혜가 무가치하고, 도리어 경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은혜가 하찮고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에, 불뱀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우리가 그 만한 수고를 해서 얻어졌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어느것하나 우리에게 더해질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박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사람이 귀하게 여겨졌는데 그 사람들이 박한 식물처럼 느껴진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처음 배우자를 만나서 결혼할 때에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배우자가 하찮게 여겨진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언떤 물건을 처음 대할 때 얼마나 귀합니까? 그런데 막상 며칠 소유하다가 보면 소중하게 여겼던 마음이 사라지고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물건으로 전락하기 일수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사람이나 물건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인데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 지면서 하찮게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11절에서,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을 죄인을 살려주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늘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불뱀에 물리지 않기 위해서는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때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도 그것이 은혜임을 깨닫고 자족하며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이들을 그냥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불평하는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셔서 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기도 하지만, 그에 합당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 은혜를 거두어 가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리자 정신을 차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뱀을 떠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뱀을 떠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뱀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들까지도 살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보는 자들은 살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놋뱀을 본 사람들을 살려 주셨고,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은혜를 그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해서 살았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놋뱀을 보면 살 수 있다고 하니까 그 믿음을 가지고 보았을 때에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뱀에 물린 사람들에게 놋뱀을 만드셔서 살리셨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우리를 살리실 분을 세워주셨습니다. 바로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3:14-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저와 여러분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뱀에 물려 죽을 죄를 저지르면서 살기 일수입니다. 하나님이 거져 주신 은혜를 당연히 여기며 삽니다. 그런데 이에 더해서, 내가 원하는 것으로 주시지 않으시면 도리어 원망하며, 그 동안 베푸셨던 은혜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이는 불뱀에 물려 죽기에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그 어느 은혜보다 더 큰 구속의 은혜를 허락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죄인된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를 바볼때 살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하찮게 여기며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크고 편한 길을 걷지 못한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좁고 험하다고 할지라도, 그 길이 생명의 길인 줄로 믿고서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은혜를 하찮게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주신 사람들, 물질, 교회, 이 사회가 소중함을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구원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좁고 거친 길을 동행하는 시간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하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큼을 깨닫고, 감사로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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