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부활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이천년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여러분들은 정말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사실 사람이 죽었다 다시 산다는 것을 믿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삼년 동안 동거동락했던 제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여러번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손에 넘겨져서 죽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만 예언한 것이 아니라 죽은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날 것도 함께 예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예언하신대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죽음 이후에 일어날 일은 무엇입니까? 부활이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는 별 문제없이 받아들였는데, 죽으신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실 것이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겠다고 했던 삼일째에 새벽부터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에 가서 부활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지키고 서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죽인 이들이 자신들도 죽일 것을 두려워해서, 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사시겠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만큼 부활을 믿는 것은 사람의 경험과 생각으로는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결국,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몸을 그들에게 보여 주실 때였습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면, 예수님은 당신의 부활을 확증하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서야 제자들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하필 제자 중 누가 없었나요? 도마가 거기 없었습니다. 도마는 다른 10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그렇게 말하는데도 믿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합니다.
그 일이 있고 8일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전적으로 도마에게 부활의 믿음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보고 도마가 말합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십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보는 것이 백번을 듣는 것보다 낫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직접 보지 않고서도 그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면 믿는 것”입니다. 앞으로 보지 못하고 믿어야 할 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의 근거가 뭔가를 보았기 때문이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믿는 믿음을 원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만큼이나 믿기 힘든 말을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비밀을 알려 준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과 같이 장차 부활할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몸으로 부활하고 싶으세요? 지금 내 몸으로 부활하고 싶다는 분들이 있으신가요? 아마 이왕이면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훌륭하게 부활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외적인 모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1-52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하였습니다.
나팔소리와 함께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할 때에 외형적인 생김새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지만 어떤 이들은 부활한 몸을 가지고 영원히 천국에서 살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멸망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일들은 앞으로 장차 있을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죽기 전에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해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부활에 대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고, 또한 부활을 준비하는 바른 자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모든 사람에게도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예표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게 될 것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 전에 부활한 사람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병들어 죽은지 사흘이 되는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셔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셔서 죽음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지만 나사로의 부활은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 아닙니다. 나사로가 다시 부활하기는 했지만, 나사로가 영원히 살지는 않았습니다. 얼마동안 더 살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사로의 부활은 육신의 생명이 조금 더 연장된 것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이 부활하셨을 때에 그 몸은, 처음 이 세상에 오실 때의 썩어질 육신의 몸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던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 울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오셔서,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하십니다. 그 때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 ‘동산지기’ 인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가는 두 제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믿지 못한 상태에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갑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가셔서 말을 건내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 보지 못하고, 나중에 예수님께서 식사자리에서 떡을 떼어주실 때에 그분이 예수님이 였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그 외형만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 나타나실 때에 예수님은 문을 여시지 않고, 잠겨 있는 문을 그대로 통과해서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몸을 입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은 시간되면 죽어서 썩어질 몸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영원한 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간 이 땅에 계셨고, 그 몸그대로 하늘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부활한 몸으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데, 어떤 이들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있을 일들을 우리가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지만, 보고서 믿는 것이 아니라, 듣고서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서, 앞으로 우리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여, 하나님과 영생하는 사람으로 준비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들은, 이제 앞으로 내가 부활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할 것을 믿는 이들은, 또한 지옥에서의 영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생할 것을 위에, 육신의 생명이 있을 동안에 이 땅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듣고 믿는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2.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은 영생을 살아가는 부활의 성도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죽고 부활하는 삶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의 먼저 거쳐야 할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죽음입니다. 먼저 죽어야 부활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이들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6:6절에서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생의 부활을 위해서는 예수님만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옛 사람, 죄의 몸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이 아니라, 사탄의 다스림을 받으며 우리 몸을 죄짓는 몸으로 사탄에게 종노릇하기도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육신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외면하면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감정을 사탄이 사용하는 죄의 도구로 내 놓을 때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악한 마음을 품고 혈기를 내며, 공격하게 하기도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들이 아니라, 음란하고 악한 생각을 하도록 유혹하고 지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몸을, 사탄이 사용하는 죄의 몸으로 지배를 받습니다.
내가 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은 가끔 이렇게 말합니다. “이놈의 성질 죽여야지, 이 나쁜 습관을 버려야지. 이 악한 생각을 버려야지”합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사탄의 죄의 도구가 되었던 영역들을 죽여야 합니다.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몸을 하나님이 다스리시도록 거룩한 몸으로 내어 드려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장차 마지막 날 우리가 부활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은 앞으로 육신적으로 살아있으시던지, 죽어있으시던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첫열매가 되셔서 우리에게 그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부활한 몸을 가지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사탄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져서 영원한 사망을 경험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장차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현재 이 땅에서 할 일에 대해서 말합니다. 바로 죄에게 종노릇하던 몸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지배할 수 있도록 내 몸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31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의 죄의 몸, 옛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내안에서 역사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나의 죄된 몸이 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님이 쓰실 몸으로 바뀔 때에,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와 사회가 살게 됩니다. 예수님과 같이 영생에 이르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 우리의 죄된 몸을 십자가에 못 받고, 주님이 쓰시는 선한 몸으로 우리를 내어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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