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국에서 영어를 배울 때에 미국을 가리켜 “Melting Pot” ‘용광로’로 불린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여러 나라에서 모인 이민자들, 다양한 민족들이 한 곳에 섞여서 새로운 문화를 이루어 살기에 붙여진 호칭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는 참 일리가 있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을 표현할 때에 Melting Pot 이라는 표현보다는 Salad Bowl 이 적합하다고 말합니다. 한그릇안에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재료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과 같이, 미국은 한데 섞여서 한 문화속에 있는 것 같지만, 또한 각 이민자들의 문화와 가치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데서 생긴 말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인종과 문화 들이 때로 서로간의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미국은 죠지 프로이드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와 애도가운데 있습니다. 한 백인 경찰의 한 흑인 남성인 죠지 프로이드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무릎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프로이드의 목을 눌렀습니다. 프로이드는 목이 눌린 상태에서 간신히 ‘I can’t breath’라고 몇번을 말했는데, 그 경찰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누르고 있다가, 프로이드를 결국 죽게 했습니다.
이 모습이 방송이 되면서 사람들은 인종 차별적인 공권력에 항의하며 여러곳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비극은 상대방이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며 적대적으로 대했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드신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현재 이 땅에 77억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이 모든 사람들을 다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다름을 만드심으로, 서로 다름이 어우러져 하나의 아름다움을 만드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하나님의 바램과는 다르게 서로 차별하고 갈등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단 이러한 갈등은 인종간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 교회, 일터, 회사 등과 같은 곳에서도 나와 다른 색깔과 생각, 사회적 위치를 가진 상대방을 향해서 힘들어 하고 갈등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유를 통일하시고 하나되게 하신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통일되어 하나되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분열과 갈등이 많은 이 시대에, 특별히 믿는 이들이 어떻게 주안에서 하나가 되고, 또한 이 세상에 하나됨의 영향력을 미치면서 살아갈 수 있을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사도 바울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한 주인으로 섬기며 하나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13절에,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 당시에도 서로 차별하고 갈등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유대인들은 우상을 섬기는 헬라인들, 곧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여기며 차별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노예제도가 있어서 자유인들은 종들을 거느리며 그들을 차별하고 학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 남자들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릴 때에, “저를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종으로 태어나지 않게 하시고,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이들은 상대방을 차별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귀한 사람임을 깨닫고, 서로 하나됨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입니다.
한국에 독립운동가 중에 여운형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여운형은 1886년 경기도에 있는 묘골이라는 곳에 양반 가문의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는 성장하면서 양반들에게 무시와 억압을 받는 평민과 천민들을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고, 그의 마음속에는 그들을 향한 동정심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운형은 감리교 선교사들이 세운 상동교회의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1906년에 고향 묘골에 개신교 교회를 세우고 전도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여운형은 맏아들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상속을 받은 여운형이,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에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는 아버지께로 물려 받은, 빚 받을 문서와 노비문서를 불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종들을 모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나의 형제요 자매들이다.”라고 외치며 각기 살길을 마련해 주고, 결혼하지 않은 종들은 혼인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사람들을 하나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계급과 인종, 재산, 학력이 다르다고 평가하고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바라볼 때에 모두가 하나님이 만드신 존귀한 피조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고, 교회를 주셨고, 각자 속해 있는 공동체를 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로 원하시는 것은 믿음안에서 평화의 띠로 서로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서 많은 관계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정 안에 폭력이 늘어나서 갈등하는 가정도 생기게 됩니다. 서로 만나지 못하다보니 그 관계들이 소홀해지기가 쉬워졌습니다. 이럴 수록 믿는 이들은 지금 내가 속해있는 공동체가 서로 평화의 관계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 더욱 힘써야 합니다.
2. 이제 우리가 힘써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서로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5장 5-7절에,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했습니다.
“서로 받으라”고 할 때에, ‘받다”는 “받아들이다. 환영하다. 데리고 가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반갑게 맞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반갑게 용납할 수 있어야 하나될 수 있는데 사실 그렇지 못합니다. 인종이 다르고, 사상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그 사람을 받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전에 우리 교회에 캄보디아 선교하시는 부부 선교사님께서 오셔서 간증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그분들은 캄보디아의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시는 분들이십니다. 그런데 그 선교를 하시는데, 아내 선교사님이 선교사역을 하면서 한 3년간을 힘들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장애인들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곳의 장애인들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해 불결하고, 그래서 병든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한 분들에게 선교하기 위해서 다가가지만, 심적으로는 여전히 불편하고, 환영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것을 놓고 기도하며 꾸준히 사역했는데, 사역한지 3년 정도 되었을 때에, 그들을 진심으로 품게 되었고, 사역의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쉽게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받으셨을 때에 어떠셨을까요?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환영해 주셨다는 것인데, 우리는 어떤 존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셔야 했던 사람들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죄인된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하지 않으셨고, 받아주셨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시면서까지 죄인들을 온 몸으로 받아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이들로 교회를 세우시고, 자신의 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된 저와 여러분을 당신의 몸으로 받아주셨던 것입니다.
때로 받기에 힘들고, 하나되기 힘든 상대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기가 힘이 듭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상대방을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서로의 다름을 통해서 다양함을 만드셨고, 그것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상대방이 채우도록 하셨고, 상대방이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우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온전함을 만들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볼 때에, 상대방을 받들고 하나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셔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돌려 드렸듯이, 우리도 서로를 용납하고 받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기독교인의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서로를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입니다.
하와이에는 구세군에서 주최한 CEO 슬립 아웃이라는 행사가 있습니다. 기업 CEO들이 홈리스처럼 포장박스나 담요를 덥고 길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입니다. 구세군은 CEO 슬립아웃을 통해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홈리스의 고단한 삶을 체험하고 홈리스 문제를 지역사회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취지로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기 위해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노력은 참 가치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이 당하는 어려움과 고통, 기쁨을 공유함으로 하나됨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라고 여기는 것만하더라도 상대방을 용납하고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을 받으시기 위해서 몸소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33년간 사람의 모습으로 삶을 체험하셨습니다.
때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내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하나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남자들과 같이, 자신이 이방인이나, 노예나 여자가 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들을 만났을 때에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이해하며, 함께 그 고통과 어려움을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저렇게 하는지를 비방하기 전에, 왜 그렇게 해야했는지를 살피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나와 너무 다르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이해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보면서 나와 너무 달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더욱 하나됨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분열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됨을 위해 사셨던 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죄로 인한 분열을 하나로 만드시기 위해서, 분열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되고, 서로 하나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분열이 많은 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됨을 만드는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며 하나됨을 회복해 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사람을 분열시키려고 하는 사탄의 세력들이 많지만, 예수그리스도와 같이, 우리 가정이 주안에서 하나됨을 지키고, 교회가 하나되기를 지켜나가고, 이 사회가 하나됨을 지켜나감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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