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주일에 요셉에 관해서 보았습니다. 성경은 요셉이 가족으로부터 혼자 떨어져 종노릇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고, 그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볼 때 요셉의 삶은 가족과 떨어진 다음부터는 계속 추락하는 형상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 야곱의 집에서 사랑받는 아들로 살 때가 형통한 모습이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한껏 받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을 정도로, 좋은 때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셉이 종으로 팔려서 보디발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힐 때에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들로부터 팔려 종이 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된 사람을 누가 형통하였다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 형통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할 때에, 형통은 내가 계획한 일들이 다 성공하고, 다른 이들보다 많은 것을 소유한 이들에게 붙이는 말로 여깁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 있어서 형통은 다릅니다. 내가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 그 모든 장애물을 이겨 나가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요셉과 같은 모습입니다.
시편 139:7-10절에는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저자는 자신이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계시며, 그 하나님께서 그를 인도하시고, 붙드실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가 형통한 자입니다.
우리에게 대단한 사람이 함께 함으로 형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에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형통한 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서 감옥에 갇히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요셉이 그 감옥에서 나와 애굽왕 다음으로 가는 애굽의 두번째 권력자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형통케 하셔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때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도는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때로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갔을 때에 하나님은 간수장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요셉이 감옥에 있는 모든 수감자를 관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바로왕을 시종들던 두 사람이 감옥에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은 술을 맡았던 관원이고, 한 사람은 빵을 맡았던 관원(the baker)입니다. 수감생활 중에 이 둘은 같은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들이 꿈꾼 다음날, 요셉이 그들을 보니 근심의 빛(dejected)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들이 꿈을 꾸었는데 이를 해석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그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 꿈을 해석해 줍니다. 술맡은 관원(the cupbearer)이 꾼 꿈에 대해서는, 그 관원이 삼일후에 다시 그가 복직될 꿈이라고 알려 줍니다.
요셉은 술맡은 관원(the cupbearer)에게 꿈을 해석해주면서 부탁하기를,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창 40:14-15)
그리고, 빵맡은 관원(the baker)의 꿈을 해석해 주기를, 그 관원이 삼일 후에 나무에 매달려 죽게 될 꿈이라고 말해 줍니다.
그리고 삼일 후에 요셉의 해몽은 현실이 됩니다. 삼일 후, 바로왕의 생일이 되었을 때에 술관원(the cupbearer)은 원래 자리로 복직이 됩니다. 그러나 빵맡은 관원(the baker)은 사형을 당해 죽습니다.
술맡은 관원(the cupbearer)이 꿈해몽 대로 복직이 된 이후로, 요셉은 얼마나 기대를 했겠습니까? 요셉은 그 사람이 자신의 억울함을 바로왕에게 알려주고, 자신은 이 감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도 술맡은 관원(the cupbearer)으로부터 어떤 소식도 없습니다. 애석하게도 술맡은 관원장은 감옥에서 나간 후에 요셉을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서 만 이년이라고 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나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술관원(the cupbearer)이 자신의 원통함을 벗고,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해석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은 좋았는데, 하나님은 요셉이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은 막으셨습니다. 술관원(the cupbearer)이 전혀 요셉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셉이 생각하기에 그 술맡은 관원으로부터 배신감도 느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술관원은 요셉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결코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꺼내어 주시는 것은 아무 어려움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다른 때가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계획하거나 관심하는 일이 언제 이루어진지를 알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종말의 때는 언제가 되겠냐고 묻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고, 그 때는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종말의 때를 아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을 종말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나가기를 원했고, 술맡은 관원을 통해 그 일이 이루어질 때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요셉이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 이번 기회에 제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이 갑갑한 감옥에서 나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는 요셉의 때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기대했던 때를 이루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원하시는 것은 요셉이 바라는 때가 더디 오던, 아니면 아주 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계획하고 관심하는 일들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날에 관심하며 그 일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때가 우리의 기대의 때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하신 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매순간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하신 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평상의 삶속에서 소홀함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함께 하는 때를 살아가기를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2. 그러기에 요셉은 자신의 때를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의 지금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을 드러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 바로왕에게 꿈을 주십니다. 바로가 나일강에 서있는데 윤기있고(sleeked) 살진 일곱 암소가 나일강에서 올라와 그는 소와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 이어, 흉하고 파리한 소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었습니다. 바로가 그 꿈 때문에 깹니다.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한 줄기(stalk)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heads)이 나오고,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이삭들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이 꿈을 꾼 후 바로왕의 마음이 영 불편했습니다. 그의 꿈의 끝이 개운치 못했고,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해 번민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바로왕은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 꿈을 해석해주기를 바라지만, 바로에게 그 꿈을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술맡은 관원(the cupbearer)이 바로왕의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요셉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꿈을 해석해 주었던 요셉에 대해서 왕에게 이야기 합니다.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릅니다. 요셉이 바로왕의 부름으로 감옥에서 나옵니다.
요셉은 그 동안 덥수룩하게 길었던 수염도 깎고, 죄수의 옷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바로를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요셉은 어려움 없이 바로왕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앞으로 애굽에 칠년동안 큰 풍년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칠년이 지나면, 사람들이 그 동안의 큰 풍년을 다 잊어버릴 만한 끔찍한 흉년이 칠년 동안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두번씩이나 보이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를 행하기로 이미 작정했기 때문이라고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바로에게 어떻게 할 것 까지 조언하게 됩니다.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일곱 풍년동안 곡물을 저장하여, 일곱해 흉년의 때를 대비하시면 땅이 흉년으로 말미암아 망하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가 그 이야기를 듣고서 그 일의 적임자를 요셉이라고 지명하고 그를 그 자리에 앉히고자 합니다. 아무리 꿈을 잘 해몽했다지만 그것으로 죄수를 애굽의 총리로 단번에 둘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것은 누가보더라도 파격적인 임명입니다. 그런데 왕뿐만 아니라 그의 신하들도 이에 동의합니다.
바로왕은 자신이 끼고 있던 인장반지를 빼어서 요셉의 손가락에 끼워줍니다. 그 반지는 왕의 손가락에 끼는 반지형태의 도장입니다. 나라에 어떤 일이 있을 때에 최종 결정을 왕이 하게 되는데, 왕은 이 인장반를 찍어서 그 일을 결정했음을 확인해 줍니다. 그런데 바로왕이 요셉에게 자신의 권력을 상징하는 왕의 인장을 주었다는 것은, 요셉에게 애굽왕의 권세가 그에게 주어졌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가 자신의 권세를 그에게 주고 막중한 임무를 요셉에게 맡긴 것은, 단순히 요셉이 바로의 꿈을 잘 해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는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바로왕은 요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라고 말합니다. 바로에게 있어서 요셉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함을 바로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요셉을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요셉이 하나님을 간증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술관원(the cupbearer)의 꿈을 해몽할 때에도 그에게 말하기를,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데 내게 이르소서”라고 말합니다. 그의 꿈을 해몽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라고 요셉은 하나님을 간증합니다.
바로가 요셉을 처음 만났을 때에 말하기를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라고 말합니다. 그 때 요셉은 대답하기를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라고 합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요셉은 확실하게 알았고, 이를 다른 이들에게도 확실히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요셉을 볼 때에, 요셉의 능력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능력인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로가 그 자리를 앉히는 것도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로왕은 요셉의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서 풍년과 흉년을 작정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요셉을 통해서 살길을 열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의 특징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절에서,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증거하기에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매순간 요셉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시키는 분이셨습니다.
요셉은 애굽 전체를 흉년에서 구할 무거운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30세된 요셉이 그 일을 맡기에는 참 부담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젊고 경험이 없는 사람이, 애굽이라는 큰 나라를 갑자기 다스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가 야곱의 아들로서 함께 있었다면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집을 떠나 오면서 하나님은 그를 훈련시키셨습니다.
요셉이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상인에게 팔리게 되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 들어가고, 감옥으로 가는 일들은 요셉으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는데, 왜 그러한 길로 인도하시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의 집의 재산과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감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요셉이 비록 수감자이지만 그곳의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던 야곱의 아들로서의 요셉으로서는 경험할 수 없고 배울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서는 그 동안 요셉과 함께 하시면서 그 일들을 고난 중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그의 도구로 쓰시고자 그 동안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간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보디발이 왕의 시위대장이었기에, 요셉을 가둘 때에 왕과 관련된 사람들이 갇히는 곳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곳에서 술 맡은 관원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 술맡은 관원(the cupbearer)을 통해서 바로왕과 만나게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은 때로 고생스럽고, 하기 싫어서 힘든 일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뜻하심이 있어서 맡겨주신 것임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할 때에 요셉이 의지적으로 뭔가를 계획해서 한 일은 없습니다. 요셉이 스스로 종이 되고, 죄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적도 없습니다. 만약 요셉이 애굽의 두번째 권세자가 될 것을 계획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계획으로는 그 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동의도 구하지 아니하시고, 이미 그를 향한 계획을 하셨고, 그 일을 이루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요셉이 한 일은 그저 매 순간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충성스럽게 자신의 맡겨진 일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요셉이 사람에게 충성했다기 보다도, 하루하루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보시기에 충성스러운 자로 살았던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알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시간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죄수였던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애굽을 흉년에서 구하게 될 대단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해 계획한 것도 없었고, 또한 애굽 총리가 될만한 경력을 쌓아 놓은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동안 요셉을 준비시키셨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요셉을 통해서 이루어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한 것은 하루하루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충성스럽게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과 같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일들을 언제 이루시려고 하는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처해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순간에도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정해 놓으셨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지속적으로 우리를 훈련하고 계십니다.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스럽게 살아감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때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어떠한 계획을 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언제 그 일들을 이루실지를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매 순간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심으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때를 날마다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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