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성탄절을 기념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이나 가게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장식을 합니다. 자신의 집을 전구로 장식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교회들은 성탄절 찬양이나 연극등을 준비하며 아기 예수님 탄생의 날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의 탄생을 위해서 준비한 것이 있으셨습니다. 그것은 좋은 침대나 아기 예수님이 가지고 놀 장난감같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준비할 사람을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준비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세례를 준다하여 세례 요한으로 불리는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거론되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장에 보면, 요한의 출생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보다 더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인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요한이라고 이름하라고 하고, 그 아이가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합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아이를 임신하지 못했던 엘리사벳이 임신을 합니다.
친족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그녀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 때에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던 요한이 마리아가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어머니 엘리사벳의 뱃속에서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출산하였을 때에, 긍의 아버지 제사장 사가랴는 성령이 충만하여 이렇게 예언합니다.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1:76)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할 인물로 요한을 택하셨고, 요한은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세례 요한은 장성하면서 누구보다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언제가 메시야가 오시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힘을 썼던 것입니다.
우리가 대림절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탄을 기다리는 이 때에, 정신없이 살다가 “어? 오늘이 성탄절이네?” 하며 맞는 것이 아니라, 세례요한이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서 준비했던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무엇을 준비하며 지내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준비시키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세례요한이 장성한 후에 광야에 살면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풉니다. 그 때에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서 “네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세례요한은 그 물음에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사역하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존재로 오시는지를 세례요한을 통해서 세상에 외치도록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소리를 외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 성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서 외쳐야 할 것입니다.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아니라, 대도시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야 할텐데,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광야라고 하는 곳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곳입니다.
도시에서는 사람의 소리가 난무하여서 하나님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광야는 다릅니다. 광야에서는 사람의 소리는 잠잠해지고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고,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세례요한이 외치는 소리는 세례요한이 하고 싶은 말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외치고자 하셨던 그 말씀을 외치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리를 발하기 위해서 광야의 시간이 꼭 필요했습니다.
누가복음 1:80절에 보면, 그가 어디에서 지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빈 들, 곧 광야에 머물면서 세상 사람들의 소리가 아니라, 메시야의 길을 준비하게 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보고서 대단한 흥미를 가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행색이나 말하는 것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그가 메시야는 아니더라도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세례요한에게 관심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나 선지자로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하나님의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소리가 세례 요한에게는 유혹의 소리였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나 선지자라고 말하기만 하면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며 따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단호히 거절합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가장 먼저 단호하게 한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만 힘썼던 것입니다.
만약 그가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자신이 마치 메시야나 선지자인것처럼 행하였더라면,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주의 길을 방해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세례요한과 같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 사람들의 소리와 내 안에서의 소리가 나를 지배하게 되면,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자가 되기 쉽습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꺼이 광야에서의 시간을 가졌고,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제대로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길을 예배하라고, 세례요한에게 주신 소리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죄사함에 관해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은 그가 태어났을 때에 그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1:77) 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임을 알게 하는 자로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이 장성하여,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서 외쳤던 것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야가 오셔서 자신들을 궁원해 주시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원은,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독립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대항하며,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위해 애를 썼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안티오코스 4세의 지배를 받을 때에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서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유대인들에게 끔찍한 일을 행합니다. 예루살렘에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이를 숭배하도록 했고, 돼지고기를 먹으며, 사내 아이들의 할례를 금지하고, 안식일 준수를 금하는 조치를 내렸습니다. 극기야 애굽원정에 실패하고 돌아온 안티오쿠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에 돼지를 끌고 들어가서 돼지 피를 벽에 발라 더럽히는 불경한 일을 저지르고, 성전의 금고와 기물을 약탈합니다. 안티오쿠스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모독하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했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학대가 더해지자, 유대에 반란군이 일어납니다. 유다 마카베오를 중심으로한 사람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하스몬 왕조를 세우고 독립을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결국 유대인들은 로마군대에 의해서 토벌을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로마로부터 구원받아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구약에 예언된 대로 다윗의 자손에서 메시야가 나타나면, 이스라엘을 다윗왕 때와 같이 강력하게 세울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이스라엘에게 더욱 시급한 구원은 로마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유대인들에게 외쳤습니다. 로마사람들에게 억압당하며 사는 것을 애통해 하기 보다, 죄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을 애통해하며 이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 주실 진정한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거부하지 말고 영접함으로, 참된 하나님 나라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굳이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가 죄인이었기 때문임을 세례요한은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애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죄의 노예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기뻐하며 축하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성찰하고 회개함으로, 그 분의 오심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에 세상 사람들에게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될 사람들을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에도 자신들을 구원할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억압, 경제적인 가난, 육신적인 질병, 사회적인 차별 등으로부터 구원함을 받기를 원하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메시야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권세를 가진 사람,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정치인들, 심지어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 같은 것입니다.
사람과 약의 도움으로 고난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구원하시기로 하실 때에 사람과 물질적인 도움도 유효한 것입니다. 궁극적인 구원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심각하게 보시는 구원의 상황은 죄로 인한 죽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가 가지고 있는 죽음의 권세를 깨닫지 못하고 죄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죄의 실상을 고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해줄 진정한 그리스도가 되심을 외칠 세례요한과 같은 사람들을 오늘날 원하십니다.
성탄의 계절은 그분이 왜 오셔야만 했는지를 기억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고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때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심하기보다는 세상적인 즐거움에 관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삶의 잇슈들에 사로 잡혀 예수 탄생의 의미와 기쁜 소식을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은 세례요한과 같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로 오셨음을 선포하며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족에게, 이웃에게, 이 사회에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광야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소리에 묻혀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 이를 선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세상의 소리로부터 떨어져, 하나님의 소리를 듣는 광야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광야의 시간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그분과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선포하며 살아갈 수 있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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