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1년 새해 첫주일을 맞아 신년주일예배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한해를 살아오면서, 사람들은 커다란 도전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삶의 변화를 적응하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변화는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기시 되어서,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으로 인해 전염될 수도 있고, 또한 나도 모르게 다른 이들에게 전염시킬 수도 있기에,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이 상대방을 배려한 미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을 만날 일은 급속히 줄어들고 집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갖혀 있는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도 많아졌고, 다른 때에 비해서 우울증으로 인해 정신상담을 받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스트레스는 영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온라인으로 예배와 모임이 진행이 되었지만,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며, 성도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어려움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이럴 때에 우리가 다시 점검해야 할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있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잘 소통하면서 살아가고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15:4절에 “내 안에 거하라” 고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지 않고서도 편안하게 예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5절에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답답하게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자유하게 많은 일들을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전도를 하다가 만나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 보면 예수님을 믿으면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에 가지 않는 이유로, 교회에 가면 여러가지 제약받는 것이 싫기 떄문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 술과 담배,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예수 안믿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정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도는 예수 안에 있을 때에 자유롭고, 주님의 일을 마음껏 감당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어떻게 그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로 열매를 맺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에 배가 고프 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 나무가 있길래 그 나무에서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는데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는 무화과 열매를 맺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열매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그 나무를 저주하셨고, 그 다음날 제자들이 그 무화가 나무를 보니, 나무가 뿌리째 말라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배가 고파서 화가 나니까 열매없는 나무보고 심술을 부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인 상태를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요란하게 살아가지만, 실제로는 열매 없이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한 모습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요한일서 2: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전한 말씀을 우리안에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둠으로 그리스도안에 거할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 되셔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8장에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습니다. 그 때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18:33)라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자신이 왕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왕이 아니십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안에 거하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고, 그 말씀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거함으로, 그 말씀의 통치를 받기를 원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폭군과 같이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우리를 당신안으로 끌어들여들여 다스리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먼저 그분을 우리의 왕으로 모실 때에, 비로서 예수님도 내 안에 거하시면서 왕노릇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말씀의 열매를 우리의 힘으로 맺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안에 들어와서 통치하시면, 그 말씀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원하기는 올해에는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이 우리안에 거하심으로 주님이 통치하시는 한나님 나라를 이루고, 주님께 많은 열매로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욱 사랑하는 어떤 것이 있다면 예수님 안에 거하기가 참 힘듭니다.
누가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데 농부는 하나님 아버지고,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어떤 씨가 가시 떨기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8:14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기를,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우리안에 말씀이 있다고 해서 그 말씀이 다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의 기운을 막는 어떤 것들에 의해 점령을 당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때로는 염려가 말씀을 점령합니다. 때로는 이 세상의 재물과 향락이 말씀의 기운을 막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예수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지만, 그럴 수록 우리를 그리스도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세상의 유혹이 그 만큼 강해지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사탄은 세상의 염려를 주어서 우리로 예수님안이 아니라 세상의 염려에 빠져 들게 합니다. 때로는 재물과 향락을 더욱 사랑하도록 해서 예수님을 떠나서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보다 세상의 재물과 향락을 더 사랑하게 되면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고, 예수님을 떠나서 세상에 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내가 관심하고 사랑하는 것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에 빠집니다. 게임을 좋아하며 그 안에 푹 빠져 들어갑니다. 세상의 재물, 향락을 사랑하면 그것에 빠져서 예수님을 떠나게 됩니다.
말씀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읽는 것에 빠져야 합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며 교제하는 것에 빠져야 합니다. 그럴 때에 그리스도안에서 말씀의 열매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는 주시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의 통치를 받고, 그 말씀을 이루는 열매를 맺는 백성으로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중요한 계명을 주십니다.
신명기 6:5절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잘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 안에서 통치를 받으며 열매를 맺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보다는 주변에 있는 우상에 더욱 관심하며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결국 열매없이 나무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사랑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사랑해서 주님을 떠나지 않고 그의 안에 거할 때에 열매맺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우리가 사역의 열매를 맺을 때에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만나십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겠다고 예수님을 좇아갔는데, 막상 예수님이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혀 가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과 같이 죽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도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씩이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다른 것 묻지 않으시고,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를 듣고자 원하셨습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예수님은 “내 양을 치라, 먹이라”고 그에게 목양의 사명을 주십니다.
예수님이 맡겨주신 사역은 예수님은 사랑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을 원하시지만 그 원동력이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기를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에 보면,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칭찬과 책망의 말씀을 주십니다. 칭찬의 내용은 에베소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망할 것은 예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사역을 감당했지만, 문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에베소교인들을 향해서, “사랑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렇게 열심히 수고했으니 잘했어”라고 칭찬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책망하십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참 묘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사랑으로 하면 그것이 힘든 일이라고 기쁘고 보람이 됩니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그것처럼 힘들고 짜증이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주의 사역을 감당할 때에, 주님을 사랑함으로 기쁨을 누리는 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것을 기뻐하며 주님을 사랑함으로 사역을 감당할 때에 그것을 기뻐하시고 칭찬해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관심하시는 것은, 우리가 열매를 많이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당신을 믿는 자들을 초대하십니다.
올해 우리의 관심도 예수님과 같이, 말씀의 열매, 사역의 열매를 많이 맺는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다고 모든 이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사랑하는 자가 그리스도를 사랑해서 그 안에 거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안에 거하지 못하는 이유를 보면, 예수님 보다는 세상의 것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꾸 예수님을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랑없이 의무적으로 억지로 하는 사역을 별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힘든 일이지만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기뻐하며 주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사명을 감당할 때에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올 한 해,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그 안에 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안에 굳건히 머물러서, 주님의 말씀의 열매를 맺고, 부르신 사명을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열매를 찾으실 때에 잎사귀만 많다고 책망받는 성도가 아니라, 많은 열매로 주님의 칭찬을 받는 성도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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