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룩이 다른 것에 들어가서 원래의 성질을 바꾸어 놓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빵을 만들 때에 밀가루에다 누룩을 함께 넣고 반죽한 후에 따뜻한 곳에 넣어두면 어떻게 됩니까?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올라 기존의 밀가루 반죽의 모양과 성질을 바뀌어 놓습닏다. 그래서 누룩은 원래의 것을 변질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에 대해서 주의하라고 했는데, 그들의 누룩은 그들의 교훈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로 여겨졌지만, 사실 하나님 말씀의 본래의 뜻을 왜곡시켜서,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16:1절에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떡5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고, 그 이후에 떡 7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4천명을 먹이신 사건을 듣고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함께 왔는데 이것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그 당시 유대교에는 몇 개의 대표적인 종교적 그룹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들도 있고, 또한 엣세네파라고 해서 세속화를 거부하고 다른 어떤 분파보다 구별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경건의 삶을 위해 광야와 같은 외진 곳에 자신들만의 신앙공동체를 만들고 수도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당이라고해서 이스라엘은 다윗 왕의 자손만이 다스려야 함을 주장하며, 로마제국의 통치에 대해서 무력으로 저항했던 무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유대교 안의 두 그룹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의 종교적, 정치적 입장이 달랐고, 이로 인해서 그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함께 온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함께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보여 달라"고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요구를 하는 그들을 향해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고 하면서 그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을 떠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무엇이고, 또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과 같이 우리 신앙생활에 부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누룩과 같은 것들은 무엇이 있을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예수님께 요구했습니다.
그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요구한 것은, 예수님께서 떡 일곱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사천명을 먹이신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떡으로 사람을 먹이신 그 기적을 보고 그들이 연상한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던 광야 시대 때에, 하늘에서 내린 만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교리적으로 대부분 다르지만, 공통적인 것은 모세 오경을 중요시했고, 당연히 모세도 존경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모세 시대 때에 하늘로부터 만나가 내린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임을 나타내는 표적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는, 예수님께서 칠병이어로 사람들을 먹이셨는데, 모세와 같이 하늘로부터 내리는 만나와 같은 표적은 없냐는 식의 요구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질문하는 의도는 예수님이 표적을 보여 주면 그 표적으로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들은 예수님을 트집 잡고 해하고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적은, 죄로 멸망받을 니느웨 사람들이 구원받은 사건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표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니느웨는 앗수르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앗수르는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의 나라였고, 후에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곳에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기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나를 통해서 그 멸망의 소식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이를 거부합니다. 적국이 멸망한다는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요나는 니느웨로 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왜냐하면 그 멸망의 메시지를 듣고 사람들이 회개하면 그들이 구원받을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사람들이 자신들을 괴롭히는 정말 멸망 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그들이 멸망당할 것을 알려주지도 않음으로, 회개와 구원의 기회도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니느웨로 가기를 거부하는 요나를 큰 물고기 뱃속에 태워서 니느웨로 가게 하시고, 요나는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40일 후에 멸망할 것을 알립니다. 그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왕으로부터 모든 성 사람들이 베옷을 입고 자신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것도 짐승들까지 베옷을 입혀서 자신들의 회개가 철저함을 보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멸망을 작정하셨던 니느웨 사람들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죄인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니느웨의 구원 사건이 그 표적이 되었습니다. 죽을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은 기적 중에 기적입니다. 죄인된 니느웨사람들이 살게 된 것은, 앞으로도 죽을 죄인이 살게 될 기적이 일어날 것을 알리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니느웨성의 죄인뿐만 아니라, 모든 죄인들이 구원받는 표적이, 하늘에서부터 내려 왔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5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사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요청하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몇 천명의 사람들을 떡으로 먹이시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그들을 살리는 생명의 떡임을 나타내는 표적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표적을 보고서도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더우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표적을 왜곡하고 예수님을 해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하늘을 보면서 앞으로 날이 좋을지, 궂을지를 잘 해석하고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은 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지를 예수님은 안타까워하셨습니다.
2. 그런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을 대적하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누룩과 같은, 잘못된 가르침의 관점으로 볼 때 예수님의 표적은 왜곡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책망을 받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열심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중심의 사람들로서, 모세의 율법뿐만 아니라 장로들의 유전까지도 철저하게 지킴으로, 의인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원을 바벨론 포로시대로 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유다 사람들 중에는 유다의 멸망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우상숭배를 하고 악을 행한 것임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살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인 문화와 사상과 구별시켜 철저하게 율법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바리새파의 선조로 여겨집니다. 바리새파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안식일, 십일조, 정결의식, 음식에 대한 규례 등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라는 이름도, 그리스어로 ‘파리사이오이’ 인데, "분리시키다, 분리된 자" 라는 의미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의로운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의 의를 통해서 하나님께 인정받고 구원에 이를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자신들의 의가 되어서, 다른 이들을 정죄하고, 또한 자신들을 의롭게 보이고자 외식적인 행위를 행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추구하는 율법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표적인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들의 가르침의 기준으로 볼 때에 하나님의 보내신 의로운 존재라기 보다는, 모세의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죄인과도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바울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5절에 보면,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충성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각에서 기독교인들을 보았을 때에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하면서 율법을 파괴하는 불의한 무리들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것에 열심을 냈습니다. 그것이 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열심이 자기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는 자신의 의가 아니라,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열심을 내시는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구원이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나타내신 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의 죄를 씻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주신 그 칭의로 인해서 구원받게 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곧 그는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이들이 정죄받을 죄인이지만, 그럼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누룩이 있습니다. 자신의 의로움과 경건의 모습을 내세우며 그렇지 못한 이들을 정죄하며 스스로 교만한 태도를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의로운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인이 구원받을 길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의로움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은 사두개인의 누룩도 조심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중심적이라면, 사두개인은 성전 중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직을 감당했습니다.
사두개인들 또한 엘리트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사두개인들은 다윗 시대의 제사장 사독의 뒤를 이어 제사장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소수였지만 성전을 중요시하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더불어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두개인들의 누룩과 같은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되심을 부인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부정합니다. 그들은 부활, 천사, 영생 등에 대해서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관심은 영생의 삶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삶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주요관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로마제국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여러 기득권을 누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영생에 대한 관심은 없고, 오로지 현세에서 잘 살기를 관심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사두개인들은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할 때에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소망을 가지지 못하고, 이 땅에서의 부귀와 영광만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면,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지금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주신 영생을 누리기 위해 준비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부귀와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 받을 상급과 영광을 소망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어째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하늘에서 내려준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예수님이 죽은 죄인을 살리는 기적, 표적을 가지고 오신 분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표적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바리새인과 같이 말씀에 순종하여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의가 되어, 다른 이들을 정죄하며 하나님의 구원이 마치 행위에 있는 것처럼 왜곡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인 줄로 믿습니다. 믿음생활을 하며, 나의 의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이 세상의 복만을 추구하며 산다면 사두개인의 누룩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천국에 소망을 두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거룩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이 세대가 악하고 음란하여, 예수님이 주신 영생에 대해서 무관심하며 부인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구원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는 이 세상에 증거하는 좋은 누룩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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