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5/2021 - 염려를 멈추고 그의 나라를 구하라 [마태복음 6:24-34]
오늘 말씀은 산상수훈의 일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 모인 무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시는데, 오늘 본문에 보면 ‘염려’라는 단어를 여러번 사용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진 염려거리를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이 이 염려가운데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염려를 지적하고 계시는데, 그것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라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목숨을 위한 염려 입니다. 생계를 위해서 먹고 마시고 입으려고 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그것까지도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염려는 이것들뿐만이 아닙니다. 이곳에 계신 분들이 목숨을 위해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으로 염려하시는 분은 없으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서 염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의 염려는 가지각색 입니다. 어떤 분들은 내 염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염려가지 내 염려로 만들기도 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 는 속담이 있듯이,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염려도 자신의 염려도 삼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오늘 염려도 모자라서 미래의 일까지 미리 당겨서 걱정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예수님은 이것까지 아시고,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6:34)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사람들이 보통 내일 일만 염려하십니까? 몇 십년 후의 일을 염려하기도 합니다. 은퇴 후에 대해서도 염려하고,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서도 염려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앞으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까지도 염려하면서 살아갑니다.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마음에 근심, 염려가 있으면 정신이나 육신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의 염려는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적인 염려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를 염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방 사람들이 살아가는 목적은 자신에게 있는 염려거리를 해결하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곧 염려가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먹고 살지를 염려하는 삶이 아니라,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이 땅에서 염려하는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것에 더욱 관심하며 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심을 믿으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에게 염려거리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무지함이 있고, 또한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이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그러니 삶에 문제가 대두될 때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염려거리가 있지만, 염려함으로 바뀌는 것은 없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 고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이 키가 작다고 염려한다고 키를 크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염려한다면 무의미한 것입니다.
남자분들이 나이가 들면서 고민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입니다. 저도 머리를 감을 때에 빠져있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염려한다고 머리가 좀 더 난다면 좋을텐데, 도리어 염려함으로 스트레스 받아서 머리카락을 더 빠질 것입니다.
우리가 염려할 일이 있을 때에 조심해야 할 것은 그 염려에 빠지는 것입니다. 염려는 하면 할 수도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커지고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서 염려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여서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염려할 일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맡기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목숨의 문제를 놓고서 염려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며 책망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어떤 존재보다 사람을 귀하게 보시고 돌보시는데 이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꽃꽂이에 백합꽃이 있는데 이를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리키시는 백합화는 들에 핀 야생 꽃입니다. 사람이 가꾸거나 돌 보지 않은 들에 핀 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아름답게 옷입혀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했다고 비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플도 하나님께서 입히시는데,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귀히 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지 않겠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갈 때에 염려거리가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때에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귀하게 여기시고,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여러분께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염려가 가장 없는 시절은 언제였나요? 돈이 많을 때입니까? 건강할 때입니까? 언제입니까? 아마 어린 아이 시절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어린 아이때에 염려거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 만큼 염려거리가 많은 때는 없을 것입니다. 어린 아이 때는 목숨을 위해 스스로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구할 수 없는 때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때가 가장 염려가 없고 행복한 시절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있는 염려거리를 부모에게 모두 맡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염려할 것을 부모들이 대신 염려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먹이고 입힐까를 부모가 정성껏 준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염려속에 있는 이들도 이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께 모든 염려를 맡기고,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염려거리가 생길 때에는 하나님게서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책임져주실 것을 믿고 맡겨드려야 합니다.
내 자녀, 직장, 사람들과의 관계, 미래의 일들이 염려하고 내가 붙들고 있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해결되지 못한 일들을 붙잡고 마음과 육신이 상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그분께 모든 염려를 맡겨드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2. 예수님은 우리에게 있는 모든 염려는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먼저’라고 하는 것은 순차적으로 일번이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목숨을 위해서 구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이방인들은 생존을 위해 세상의 재물을 추구하면서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의식주를 위해서 힘써야 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의식주 해결이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먹고,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성공이고, 그것이 삶의 목적을 이룬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방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에 역사가운데는 나라를 빼앗긴 일제 식민지 시대가 있었습니다. 일본은 1910년에 대한제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강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라를 잃은 한국인들은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독립 운동을 벌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본사람들을 상대로 무력으로 싸운 이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하지는 못하지만 독립자금을 대기 위해서 자신들의 생활비를 절약해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다시 찾기 위해서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위험까지도 감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살았던 이유는 일제로부터 독립된 나라를 구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이들의 마음속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이유가 이 세상에서 육신적으로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안에, 우리 교회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손해를 감수하고, 잘 먹고 사는 것까지도 감수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우리가 어떤 형편에 있던지 상관없이 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난하던 부하던, 강하던 약하던, 높은 위치에 있던 낮은 위치에 있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안에는 무엇을 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있으십니까?
우리가 공부하고, 일하고 하는 것의 기본적인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되시고 그분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처해진 곳에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때로 사람들은 잘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나라를 구하다가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내가 처해진 곳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면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을 삶의 목표로 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염려속에 사는 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염려할 일이 있을 때에 염려 속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평강으로 구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에 그 염려거리를 제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염려하는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염려하는 일이 있을 때에 기도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 뜻을 주의 뜻에 맡길 때에 우리는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허락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우리의 염려거리를 제거해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기도하는 이들이 염려거리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믿는 이들이 이 세상의 염려속에서 마음과 육신이 상하며 살아가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염려에 빠져서 살아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재물이 이 염려를 해결해 줄 것처럼 거짓으로 속여서 재물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세상 사람과 같이 이 세상에서 썩어질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위해 구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거룩한 일을 위해서 택함받았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어질 것을 구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있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그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굶주리고 핍박을 받을 때에 그것이 염려거리가 아니라, 도리어 감사가 되고, 주의 평안을 누리는 축복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살지 않는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염려거리가 많은 이 세상을 살지만,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겨드림으로, 그의 나라를 구하심으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에 충만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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