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버지 날입니다.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시고 애쓰시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제가 초등학교 때에 제 아버지는 종종 양말을 벗겨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루 종일 일하시고 저녁에 오셨을 때에 피곤하시면 바닥에 누우셔서 저를 부르십니다. 그리고는 ‘혁이야, 아빠 양말 좀 벗겨봐라’ 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아버지의 땀이 베고 냄새가 나는 양말 끝을 잡고, 쭉 잡아당겨서 벗겨드렸던 생각이 납니다.
저도 어느 저녁에 아버지 생각이 나서 침대에 누워서 아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리를 들어 올리며 양말 좀 벗겨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양말을 벗겨주는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이로부터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이게 가족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은 다른 어느곳보다 육신과 마음에 쉼, 안식을 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많은 아버님들께서 가족들이 편안히 안식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를 보면 사람들이 좀처럼 안식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안타깝게 가정들도 서로에게 쉼이 되어주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 밖에서의 분주한 삶이 가정안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가정에서 안식을 얻기 보다는, 가정이 또 다른 학교가 되고, 또 다른 직장이 되어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는 “나에게는 쉼이 좀 필요하다.” 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관심하시는 것도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뿐만 아니라 더불어 안식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6일만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칠일째 되었을 때에 쉬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칠일째 되는 날은 하나님과 처럼, 너희도 안식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3, 4장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사건을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향한 여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9년 동안 종노릇할 때가 있었습니다. 종의 삶에는 안식이 없습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언제든지 일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해방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도자로 셔서, 애굽의 왕 바로를 상대하도록 했습니다. 모세가 바로왕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제사하러 광야로 나가야 겠다고 말했을 때에, 바로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편해서 그런 생각을 한다며, 그들에게 일을 가중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안식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꺾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안식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애굽에서 나온 일세대 백성들은 안식을 약속 받았지만, 안식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4:1절에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수 도 있음에 대해서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안식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안식이 있는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을 빼앗길 수도 있기에 그 안식을 빼앗기지 않도록 두려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은 또한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던 것과 같이, 이 세상의 문화에 잠식되어 안식없는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누려야 할 진정한 안식이 무엇이며, 세상의 분주한 삶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을 누리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에 이르지 못한 것은, 복음 전함을 받은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주실 때에 믿음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 기쁜 소식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안식이 없는 노예 생활에서, 안식을 누리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노예생활하던 그들에게 이보다 기쁜 소식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의 복음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을 받았지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니까 광야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불신앙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니까 어려운 상황가운데서 번번히 불평을 합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 없을 때에, 대적들이 몰려와 불안할 때, 자신들이 가려고 하는 길이 막혔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했습니다. 자신들을 이곳에서 죽게 하려고 데려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의 약속을 불신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불신앙의 삶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이 어려울 때마다, 과거 애굽에서 노예생활했던 때가 좋았다며,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안식의 약속에 대해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늘 불만하고, 과거를 동경하다가 결국 그 안식을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의 약속을 믿게 되면, 그 안식이 실상이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자이신 하나님은 다윗을 편안한 길로만 인도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윗이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습니까? 사울왕에게 쫓겨서 목숨이 위태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자식들 중에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고 했던 아들도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 안식이 없는 불안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있던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비록 이 땅에서 불안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버지의 집, 진정한 안식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다윗은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다윗으로 하여금 인내하게 했고, 감사하게 했고, 결국 그 믿음대로 하나님의 집, 영원한 안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기독교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식의 약속을 받았다고 해서 다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이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는 시간이 있다고 할지라도, 이 길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안식으로 가는 길임을 믿고 그 길을 걸을 때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안식에 이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1절에,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에 이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떄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행하면 안 될 것 같다고 여겨서 자신의 고집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의 특징은 담대함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말합니다.
잠언 28:1절에,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하였습니다.
야생동물들을 보면, 늘 쫓기듯 불안해 하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토끼나 노루와 같은 초식 동물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육식 동물들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숨고, 도망가기 일 수 입니다. 연약한 동물들이 안식을 누리기는 참 힘이 듭니다.
그런데 사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자들은 불안해 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안식을 취합니다.
그런데 잠언에서는 의인을 사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의인 자체는 사자와 같이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도리어 세상에서 사자와 같이 여겨지는 자는 악인입니다. 그런데 잠언에서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는 안식이 없는 존재입니다.
반대로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합니다. 그것은 의인이 사자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의인은 사자와 같은 존재인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심을 믿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의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함을 믿기에,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안식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삶의 안식이 세상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물질이 나에게 안식을 줄것이라고 기대하면서 분주하게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안식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람과 관계맺는 일에 분주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안식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속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27에서 이와같이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으로부터 안식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그것으로 인해서 안식을 빼앗깁니다. 세상의 물질로 안식을 삼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도리어 그 물질을 잃어버릴까봐 불안해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안식이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도리어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와 어려움을 당하기 일수입니다. 술과 마약으로 안식을 얻으려는 자는 이로 인해 더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전능하시고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믿는 사람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런데 하나님의 안식은 저절로 들어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11절에 “그것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많은데,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힘써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장차 들어갈 가나안 땅을 붙잡고 살았다면, 그들이 처한 광야생활을 통해서도 안식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을 소망하며, 그 안식을 잃지 않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가 사탄입니다. 사탄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근복적으로 사람이 안식을 잃게 된 것은 죄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에덴 동산에 두실 때에, 하나님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죄짓게 만듬으로 그들은 하나님과 떨어지게 되고 안식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기를 힘쓸 때에, 죄의 권세를 이기며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안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거짓된 안식을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땅에 있는 물질과 사람들, 인기와 명예가 자신들을 안식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속입니다. 그래서 이 땅만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결국 이 땅의 것을 바라보다가 진정한 우리의 안식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도가 진정한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고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 광야를 지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수고하고 애써서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수고할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했던 일은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만나를 먹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내신 길을 믿음으로 갔으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독수리 날개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독수리 날개로 업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을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살게 되니까 이 땅에서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안식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이를 방해합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세상의 헛된 안식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욱 가까와 지며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은 안식이 있는 삶을 살아가십니까? 세상의 분주함속에서 땅만을 바라보며 애굽에서의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물질이, 사람이, 세상의 풍요가 나에게 쉼을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분주하게 살아가면서 쉼을 잃어 버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참 쉼은 하나님으로부터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참 안식인 구원에 이르게 하는 분임을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안식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고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에, 참 안식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안식을 잃었을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시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안식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모든 것 내려 놓으시고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하시면서 쉼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하리라” 주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참된 안식을 잃어 버리고 세상에서 불안과 분주함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이 땅에 사시면서 하나님과 동행을 하시는 가운데 안식을 누리실 수 있고, 또한 죽어서 하나님을 만나는 날, 이 세상의 모든 수고와 눈물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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