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11-20, “깨끗함이 나오게 하라”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청결에 많은 관심이 더해졌습니다. 손을 자주 씼거나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이 사용한 물건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혹시나 바이러스가 옮겨 올 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청결함에 대한 관심들이 컸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더러움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루살렘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온 것입니다. 그들은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예수님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게 되니까 예수님을 살펴 보려고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먼길을 찾아와서 하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왜 당신의 제자들은 떡을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않아서, 장로들의 전통을 어깁니까?”라는 것입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시비하기 위해 그 먼길을 왔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손씻는 문제는 부모가 어린 자녀들에게 야단칠 일이지, 다 큰 어른인 제자들을 상대로 할 일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장로의 유전을 따라 손씻는 것에 대해서 강조한 이유는 단순히 몸을 깨끗이 하는 위생의 문제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정결에 관해서 강조하는 것은,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와도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는 그들의 몸을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시내산 밑에 진을 치고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 임하시고자 하셨는데,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지시하십니다.
출애굽기 19:10-11,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깨끗한 모습으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머무는 진영도 깨끗하도록 하셨습니다. 만약 진영에 부정하게 된 자들이 있으면, 남녀를 막론하고 다 진영밖으로 내 보내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진영 가운데에 거하시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민수기 5:3).
하나님께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깨끗하게 씻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성막 뜰에 보면 물이 담겨져 있는 물두멍이 있습니다. 물두멍의 목적은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이 거기에서 손과 발을 씻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수족을 씻어 죽음을 면할 것이요” (출 30:20)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손발을 씻지 않고 제사를 드렸다가는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몸을 청결하게 하는 것은 필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확대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떡을 먹기 전에 손을 씻으라는 율법을 주시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는 것이 전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만든 신앙적 전통을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으면서 장로들의 유전까지 여기니까 그것을 힐난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지적을 받았을 때에 그것에 순응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그 말씀을 들으시고, 진정으로 조심해야 할 더러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정결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무엇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깨끗함 인지를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깨끗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책망을 듣기는 하지만, 그들은 정결한 삶을 추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고자 힘썼고, 그것도 모자라서 장로들의 유전까지도 지키면서 경건의 삶을 살고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더러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러면서 예를 하나 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고, 만약 부모를 비방하는 자녀가 있으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는데, 너희는 부모님께 드려야 할 것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십니다. 이것이 장로들의 유전에서 말하는 ‘고르반’이라는 전통입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라는 뜻인데 일부 사람들은 이를 악용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쓰일 물질이라도, 이것은 하나님께 드릴 예물입니다. ‘고르반’이라고 말하면, 그 물질로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다는 핑계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러한 일들을 행하게 됩니까? 예수님은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과 떨어져서,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이 만든 전통인, 장로들의 유전으로 폐하는 모습들을 말씀하시면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서 그들이 외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처럼, 고르반’이라고 말하며 행동하지만,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친밀하게 있는지, 멀리 있는지를 잘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외적인 정결과 경건에 신경 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어떤지를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가까이 모시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가까이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인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세상적으로 살아가면서 외적으로 경건의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그런데 하나님으로 부터 마음이 멀어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우리 마음에 더러운 것들이 자리 잡게 됩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쓰는 물건 중에서 세균이 가장 많은 더러운 것 다섯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신문 기사를 보니까 ‘주방 수세미, 휴대폰, 리모컨, 부엌 싱크대, 도마’라고 합니다. 주방 수세미는 더러운 그릇을 닦는 역할을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 가장 많은 세균을 가지고 있습니다. 휴대폰도 아주 깨끗해 보이지만 세균이 득실 거립니다. 그런데 더럽게 보이는 것 중에서 의외로 깨끗한 것이 있습니다. 변기입니다. 사람이 생각하기에 변기가 더럽게 생각되지만, 사실 수세미나 리모컨 보다 세균이 덜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때로 무엇이 더러운지 아닌지를 착각하면서 살기도 합니다. 외형적으로 깔끔하고 정갈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깨끗한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외형적으로 더러우면 그 사람의 내면도 더러울 것으로 생각하며 상대하기를 꺼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19절에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비방”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 더럽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고르반을 외치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공경해서 예물을 드리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안에 악한 생각, 도둑질의 마음이 발동이 된 것이었습니다. 부모를 위해 자신의 것을 소비하기 싫어하는 악한 생각, 자기 욕심과 도둑질의 마음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 예물을 바친다고 말하는 것이 거룩해 보여도, 그 속마음은 더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공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입술 뿐만 아니라, 그 마음에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는지를 살피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며 경건을 추구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진실한지를 늘 살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만드는 원인 중에 하나가 욕심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 욕심을 부리다가 보면 악한 생각을 품습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남의 것을 도둑질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해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살인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마음이 욕심에 의해 주장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육신적인 즐거움에 빠지게 되면 또한 더러운 일들을 하게 됩니다. 간음을 하게 되고, 음란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더러운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진정으로 더러운 것을 혼돈하게 만듭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륜을 남이 하면 불륜인데,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내 마음속에 있는 더러움을 예쁘게 포장하고 정당화시키는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 스스로는 께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에 더러운 것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잠언 30:5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더러움이 없이 깨끗합니다. 우리 마음이 깨끗하지 아닌지는 세상의 기준으로 분별할 수 없습니다. 이미 세상의 기준은 오염되어있기 떄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순전하며, 우리의 순결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 속의 더러움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세상의 말에 기초한 깨끗함은 실제로 깨끗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깨끗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분별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우리의 더러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마음의 더러운 것을 제거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최근에, 저희집에 날파리가 자주 날아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날파리의 출처가 어딘지를 면밀하게 살펴 보니까 귤을 담은 속이 깊은 과일그릇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귤들을 살펴보니, 위에 있는 것들은 멀쩡한데, 아래에 있는 귤 몇 개가 상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한 귤이 몇개 안된다고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상한 것들을 모아다가 뒷마당 에 아낌없이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썩지 않은 것은 물에 잘 씻어서 놓았습니다.
우리 안에 더러운 죄의 마음들을 제거할 때에, 우리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깨끗한 것이 우리의 삶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더러워질 때, 비누와 수세미로 깨끗하게 씻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0:21-22절에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구약 시대 때에 성막에서 쓰일 기구를 성별하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 그 피를 그 기구에 뿌려서 깨끗하게 했습니다.
이제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피는, 우리의 큰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더러운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피를 내 마음에 흘려 주셨음을 믿을 때에, 우리의 죄는 그 피에 가리워지고,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하다고 칭함을 받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실제로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119:9절에도 보면,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죄인의 마음속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더러운 것들이 마음에서 나와 이 땅에 퍼짐으로 이땅을 더욱 더럽게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더러운 마음에 순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순전한 말씀을 지켜 행할 때에, 우리는 깨끗한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더러운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17:9-10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내가 내 마음이 깨끗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내마음이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으면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나의 욕심에 끌려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마음에 더러움이 쌓입니다. 그리고 내 육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고자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더러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내 속에서 나오는 것은 더러운 것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깨끗한 것이 겉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간직하며,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순전하신 말씀을 마음에 두고, 이를 행함으로 거룩한 삶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보혈과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심으로, 깨끗함과 더러움이 혼돈된 이 땅위에 진정한 정결을 드러내고, 깨끗하신 하나님의 임재와 거하심을 경험하는 거룩한 성도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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