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8/2021 -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하라 [역대하 24:1-3, 15-18]
오늘 본문은 남유다의 8번째 왕인 요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절에 요아스에 대해서 묘사하기를,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요아스를 보는 하나님의 시선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의식해야 할 시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시선입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내가 어떠할지에 대해서 의식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주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에 맞춰 행동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보이기에 멋지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SNS 라든가, 개인 방송들을 보면 자신들의 좋은 모습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여행을 하며 여유있게 휴식하는 모습들을 보여 주고 싶어하고, 파티에서 사람들과 행복하게 즐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합니다. 아마 여러분의 휴대폰 배경 사진을 고를 때에도 가장 예쁘고 행복하게 나온 사진을 고르고자 수고 좀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에게 있는 어둡고 우울한 일들은 감추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보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마음까지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에도 반드시 의식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시선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모습을 사람들이 보기에 어떻게 평가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과 영광이 된다면, 우리 예배는 그것만으로 성공인 것입니다.
요아스는 하나님보실 때에 그 행위가 정직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한정짓는 구절이 앞에 있습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있을 때에는 정직했지만, 그가 죽은 이후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요아스와 같이 일시적으로 좋은 모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24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 바울은 처음 예수님을 믿고 믿음의 경주를 시작하면서부터 그 끝을 바라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서 다른 길로 빠져 나갈 준비를 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아니라, 목숨을 다해 끝까지 하나님이 보시기에 사명 감당하는 자가 되기 위해 살았습니다.
우리가 달리고 있는 믿음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고, 평가하고 계십니다. 여호야다 선지자가 죽은 후에 변했던 요아스 왕의 행동을 보면서,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보시기에 끝까지 변함없이 정직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하나님으로 인해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아스는 남유다가 위기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셔서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요아스는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요아스왕의 형들은 그가 갓난 아기였을 때에 모두 몰살을 당했습니다. 그들을 몰살한 사람은 다름아닌 그들의 할머니 아달랴였습니다.
아달랴의 부모는 악하기로 유명한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이세벨입니다. 그러한 아달랴가 남유다의 왕 여호람의 아내로 시집을 왔습니다. 그런데 아달랴는 그 부모의 악한 영향력을 받았고, 남유다에 악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먼저 남편 여호람 왕에게 영향을 줍니다. 여호람이 왕으로서 세력을 얻은 후에 한 일이 있었는데 자신의 모든 아우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합의 딸, 아달랴가 그의 아내가 된 것과 연관된 일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역대하 21:6).
그런데 아달랴의 친정인 북이스라엘의 아합가문이 멸망당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합왕의 가문이 하나님께 너무 악하게 하니까, 하나님은 예후를 통하여서 그 가문을 멸하십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아달랴의 아들, 남유다 왕인 아하시아가 북이스라엘에 갔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아달랴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친정이 몰살을 당하고, 남유다의 왕인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를 본 아달랴는 남유다의 다윗왕가를 멸망시키기로 작정을 합니다. 그래서 왕을 이을 왕자들을 다 죽입니다. 아달랴는 자신의 손자들인, 왕자들을 몰살하고 자기가 스스로 남유다의 왕이 되어, 육년을 다스립니다.
이렇게 해서 남유다왕국에 왕을 이을 다윗의 후손이 끊길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한 왕자가 구출을 받는데, 그가 요아스입니다. 요아스는 아달랴가 왕자들을 죽일 때 태어난지 일년도 안되는 아기였는데, 왕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요아스를 아달랴의 손으로부터 구출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세바는 요아스를 남편인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맡깁니다. 그 이후로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성전에 숨기고, 육년 동안 양육했습니다.
이제 여호야다는 요시야가 7살이 되었을 때에 제사장들과 주위에 있는 군사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아달랴를 제거합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요아스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하신 약속이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자손이 영원히 왕위에 오를 것이다.’라고 했는데, 현재 다윗의 왕권을 이을 사람이 요아스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요아스를 구출하셨고 그로 왕되게 하셨습니다.
감리교회를 창시한 존 웨슬리 목사님은 1753년 11월에 아주 심한 병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때 그 병으로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자기의 비문에 새길 문구를 미리 만들어 일기(Journal)에 기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웨슬리는 자신의 비문을 "여기에,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존 웨슬리의 육신이 누워 있다"(The body of John Wesley, a brand plucked out of the burning;)는 말로 시작합니다. 존웨슬리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 것은 그가 어릴 때에 목사관에서 일어나 화재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가 여섯살때 목사관에 큰 화재가 났고, 가족들은 그 불을 피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여섯살의 웨슬리는 빠져 나오지 못하고 이층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때 동네사람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사다리를 이용해 웨슬리를 구했습니다. 그 일로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기억하며,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요아스왕과 웨슬리 같은 경우는 하나님의 특별한 구원의 사건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셔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맡겨진 역할은 다르지만 모든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셨고, 그가 왕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좋은 안내자를 주셨습니다.
요아스가 왕이 된 나이는 7살입니다. 그가 남유다의 왕으로 다윗의 가문을 잇고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지만, 그 나이에 스스로 왕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사장 여호야다를 통해서 요아스가 양육을 받게 하셨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요아스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말에 잘 순종함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왕으로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호야다 제사장인 죽은 이후입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백삼십세에 긴 생애를 마치고 죽습니다. 그 사이에 요아스왕도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죽은 후에, 요아스 왕에게 한 무리가 접근을 합니다. 그들은 유다 방백들이었는데, 그들은 왕에게 절하고 왕에게 무슨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요아스왕은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죄로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됩니다. 요아스왕을 찾아온 유다의 방백들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요아스의 모습을 보면 어리석어 보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던 자가, 어떻게 한 순간에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로 전락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성경은 그렇게 된 이유를 간단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요아스가 그토록 쉽게 하나님을 버리게 된 이유가 방백들의 말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아스의 행동은 사람들의 말에 따른 행동이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있을 동안에는 여호야다의 말을 들어 하나님께 정직하게 행동했지만, 이제는 우상을 섬기는 방백들의 말을 듣고 방백들이 원하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아스는 사람의 말을 듣고 행하는데는 열심을 냈지만, 정작 자신을 구원하시고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대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요아스와 같은 일은,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일어 날 수 있는 일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는 좋은 신앙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요아스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왕이 되기를 바라며 그의 삶에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심지어 제사장은 요아스가 장가들 두 아내까지도 선정을 했을 정도로, 아버지의 역할까지 맡아서 했습니다.
그런데, 요아스가 여호야다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구할 만큼 하나님과는 바른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사장이 죽은 후에, 유다의 영향력 있는 방백들이 와서 우상을 섬기자고 말할 때에 그들의 말을 듣고, 그렇게 쉽게 하나님을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다른 이들을 통해서 믿음의 안내를 받게 됩니다. 때로는 교회의 목회자나 부모, 그리고 교우들에 의해 신앙적인 말씀을 받게 됩니다. 그럴 때에 그 가르침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그 가르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늘 점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위해 행하는 믿음생활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한 믿음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도, 목사나 부모, 친구와 같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때문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요아스와 같은 형태는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근거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계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질 때에, 그 믿음이 변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제대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3.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성경에 나온 믿음의 인물들의 공통 점은,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그 믿음에 근거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정직하게 행했던, 모든 왕의 샘플이 되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시편 18:1-2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다윗은 분명 아버지 이새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더 이상 하나님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믿음의 고백을 근거로 행동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같은 강한 대적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이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믿고 골리앗을 대적하여 승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임을 믿고 사람을 의지하기 보다는 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고백하십니까? 그리고 그 고백에 근거해서 판단하고 행동하십니까?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라고 고백하면서 환난때에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존재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나의 만족이 된다고 고백하면서 불평과 불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내 판단과 행동의 근거가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할 때입니다.
마태복음 7:24-25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을 듣는 것만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듣고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각자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에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심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요아스왕이 하나님께 정직하게 행했지만, 여호야다 제사장이 죽은 후에, 요아스는 방백들의 말을 따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악을 행했습니다. 비록 그는 여호야다의 제사장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는 행했지만, 정작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대는 실패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나의 하나님으로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믿음과 말씀대로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는다면,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구하고, 그 목적을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구원에 감사함으로 반응하는 예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는다면 그의 말씀을 구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아스와 같은 믿음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나의 하나님이 아니라, 남의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말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과 속을 불꽃같은 눈으로 바라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정직하게 행하심으로, 하나님보시기에 선하고 정직한 자로 끝까지 평가받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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