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가 9월 둘째 주에, 창립 40주년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부르셔서 한 교회를 이룰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은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르셨는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이유없이 저와 여러분을 부르시지는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살아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 몇 주 동안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던 사람들을 살펴 보면서, 내가 하나님께 왜 부르심을 받았는지를 상기하고, 그 부르심에 잘 부합하며 살아가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신 위대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주셨고, 아브람의 믿음이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셔서 하신 말씀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날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고향에서 떠나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학업 때문에 오신 분도 있습니다. 직장이나 사업 때문에 오신 분도 있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하실 때에 이유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신 이유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복이 되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에게 주시는 복은 그에게만 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절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이유도 아브라함과 다르지 않습니다.
베드로전서 3: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복을 주셨고, 그것이 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그 복이 이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하시고자 부르셨는데, 세상을 복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든 민족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복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이름을 창대케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름이 창대케 된다는 뜻은, 그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일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심으로, 그를 위대하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시편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서 그리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창대케 하신 것은 그의 개인적인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창대케 하고 복주시는 참 하나님이심을 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름도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인 아브람이란 뜻은 ‘큰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아버지라고 불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장에 아브라함이 99세때에 이삭을 낳기 전인데, “내가 너를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고, 네 이름을 아브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라고 하라.” 고 새로운 이름을 주시면서까지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열국을 자신의 자식으로 삼아 축복하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결국 복있는 자는 하나님으로 인해 이름이 창대케 되는 자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 창대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름이 창대하게 하는 것은 때로는 복이 아니라,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1장에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시날평지에로 옮겨와 머물면서 성읍과 탑을 건설하고,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 탑을 건설한 이유가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 도시와 탑을 만든 자신들의 이름을 유명케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과 대적하며, 자신들의 이름이 창대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으셨고 무기력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도 우리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복을 주시고, 또한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하는 존재가 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받고,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이름이 창대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정치가도 있고, 사업가도 있습니다. 문명을 주도하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음악가들, 종교가들이 있습니다. 타임지를 비롯해서 유명한 잡지들이 ‘올해의 인물’이라고 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보다 더 창대한 이름은, 바로 하나님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사람의 이름이며, 그러한 이가 세상을 복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2.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으셨습니다. 바로 그 전에 복이라고 여겼던 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라는 곳은 이라크 바그다드 동남쪽에 있는 두 강이 흐르는 지역에 있는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비옥한 땅에 모여들었고 그곳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 당시에, 갈대아 우르에 산다는 것은 복받은 일이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세상의 풍요를 복이라고 생각하며, 각종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가장 먼저 지시하신 것이 그곳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5:7절에는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할 때에, 그것은 단순히 그 지역을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갈대아 우르를 떠남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 자체가 아브라함에게 복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친척들, 사람들도 아브람이 가지고 있던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복을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그곳을 나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없이 누리는 세상의 복을 포기할 때에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갈대아 우르의 사람들과 같이 풍요와 잘됨을 복으려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많이 소유하는 것을 복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을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관계맺고 살아가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도록 하시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는 그 때에는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단지,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복된 존재가 되도록 하신다면서 어디로 가면 복을 받을지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복은 어떤 땅이 아니고, 어떤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잘 알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하실 때에, 하나님과 관계맺고 동행하기 위해 땅을 버리고, 사람을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했던 복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창세기 13장에 보면, 아브랗함이 조카 롯과 헤어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가진 가축들이 많아지면서 목자들이 좋은 목초지를 차지하기 위해 싸웁니다. 아브라함은 조카와 싸우는 것보다 서로 헤어져 사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롯이 먼저 갈곳을 정하도록 우선권을 줍니다.
롯이 보니까 요단지역을 보니 소알까지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아 보였습니다(창13:10). 그래서 롯은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보는 동서남북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좋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든지 특별히 상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며 어디를 가든지 최고의 땅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자손이 가져야 할 복은 세상의 것을 소유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맺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 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을 복되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사람들을 복되게 하기 위해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 연구를 하며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할 사람들을 모아 사회운동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12:4절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것은 복잡하고 대단한 일을 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형태로 자신을 이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그 중에서 하나가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주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복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누구를 따라갔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라고 했습니다.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같이 고향을 떠났지만, 조카 롯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진 다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기 보다는 세상의 문화를 따라 살았습니다. 롯이 자기의 두딸로부터 두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그들의 자손은 모압과 암몬이 됩니다. 그리고 모압과 암몬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과 대적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사는 것이 이 세상을 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이끌려고 하셨을 때에, 좀 지체되던 때가 있었습니다.
11:31절에 보면,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아브람과 롯과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아브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나안으로 가기로 결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라가 하란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 거기 거류하게 됩니다.
‘거류하다’ 라는 것은 그곳에 눌러 살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고자 했는데, 갑자기 데라가 가던 길을 멈추고 하란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가나안으로 가던 여정이 중단된 것은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로 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가 죽자, 조카 롯과 함께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데라가 가나안 땅으로 가다가 하란에 거주하게 된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 먼길을 오느라고 지쳤을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었으니 그냥 하란에 머물러 살자고 했을지 모릅니다. 데라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으로 지시했지만 이를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아브라함지도 함께 가지 못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라 가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데라가 죽은 후에 곧 가나안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할 때에 때로 일행으로부터 방해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함께 가는 이들이 서로 협력한다면 서로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믿음의 여정에 방해가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라가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서로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때로 믿음의 여정에 지체가 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공동체의 뜻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서 따라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 가정, 교회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정한 신이요, 복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은 먼 곳에서 온 나그네였지만, 사람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두려워하며 존귀하게 대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셔서 복을 주시고, 그리고 세상을 복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을 복되게 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계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감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알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고, 또한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이 사회를 복되게 하는 믿음의 자녀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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