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참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관심을 끌기 위해 떨기 나무에 불의 모습으로 임하셔서, 모세가 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의 불로 임재하셨을 때에,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놀라운 광경을 봅니다. 떨기나무에 불에 타고 있는 것입니다. 떨기나무가 타는 것은, 뜨거운 광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가 한 떨기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불 붙은 떨기나무가 적당히 타서 없어져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타는 것입니다. 누가 그 기이한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습니까?
모세는 이 광경을 자세히 보기 위해 떨기나무로 가까이 갑니다. 그런데 가까이 오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그리고 급하게 모세를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은 모세를 이름으로 부릅니다. 아마 모세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떨기나무에서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려졌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모세를 불러주시던 순간이었습니다.
모세는 그 동안 하나님을 직접 체험할 만한 일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그 동안 하나님이 자신과 별상관이 없는 분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왕자로 있다가 미디안으로 도망와서 양을 치는 목자로 40년을 지내는 동안에, 모세는 스스로를 아무고 신경쓰지 않는 그냥 방치된 사람처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그를 아셨고, 그에 대한 계획을 하고 계셨습니다. 비록 모세는 하나님을 처음 만나는 일이지만, 하나님은 평생을 그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가 때로 모세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방치된 상태와 같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부를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답하였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를 부르신 목적을 말씀해 주십니다.
10절에,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사명을 주시고 “이제 가라” 라고 그를 보내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예, 하나님 제가 가겠습니다.” 이렇게 응답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를 주셨을 때에 즉각 반응했는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분명한 사명을 주셨는데 이를 받지 못하고 거부를 합니다.
모세가 부르심에 주저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1절에 그는 하나님께서 ‘이제 가라’는 말씀하실 때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라고 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모세가 스스로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여러가지 이유로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음을 말합니다. “하나님, 저는 그냥 양치는 사람에 불과해요,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할 만한 인물이 안되요. 게다가 나이도 많아서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요. 하나님, 저는 말도 제대로 못해요. 그리고 하나님, 제가 이곳에서 왜 양을 치고 있는지 아시잖아요. 애굽왕이 저를 죽이겠다고 해서 저는 이곳으로 도망쳐 온 거예요. 저는 애굽의 바로왕에게 가면 죽고 말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를 모르셔서 모세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설득해 가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모세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그를 찾아오셔서 부르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끝내는 그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다시 한번 살펴 보고, 그에 합당하게 우리가 반응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자 하셨던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떨기나무로 가까이 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고 모세를 저지하십니다. 그리고,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지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거룩한 땅이라고 하신 것은, 그곳에 거룩하신 하나님이 임재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하실 때에 그 땅이 거룩해 집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임하실 때에 그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임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떠한 존재와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신을 벗으라고 하신 것은, 모세에게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을 치러야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5:13-14에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수아가 그 칼을 뺀 사람을 향하여, “우리를 위하느냐? 아니면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수아에게 말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곳은 거룩하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자신이 머무는 땅이 신발로 지저분해질까봐 신발을 벗으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신을 벗으라는 것은 우리가 나를 부르신 하나님 앞에 취해야 할 자세입니다.
인류가 신발을 만들어서 신고 다니는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지역에서는 신발이 아닌 맨발로 다니고 있습니다. 모세 당시에도 신발을 신은 사람들보다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것도 가난하거나 종과 같은 사람들은 맨발로 다녔습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상대방 앞에 자신을 낮추는 행동이고, 섬김의 자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는 그분께 내 자신을 낮추고, 그 분을 섬기기 위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신발을 벗으라고 하셨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가 세상을 대할 때와는 구별된 방법으로 하나님께 나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동안 모세는 신발을 신고 살았습니다. 땀에 찌들고 먼지와 오물에 찌들어 있는 것이 신발이었습니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오기위해서는, 더러운 것을 벗어버리고 성별하는 자세로 하나님께로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심을 믿는 믿음은, 우리가 신을 벗고 주님앞으로 옴으로 증명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다고 고백하면서, 세상 사람들을 대하듯이 하나님을 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기 위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성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는 자세로 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신은 죄로 더러워진 세속적인 신발을 벗어버림으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합당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이제 하나님은 신발을 벗은 모세에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7절에 보면,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에서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려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고통받는 당신의 백성을 보면서 과거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이행할 때가 되었음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하시기를,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의 가족 70명이 애굽 땅에 들어간 후, 그들이 애굽에서 지내면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애굽을 가뭄에서 구해 낸, 야곱의 아들 요셉을 알지 못하는 바로왕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집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신들을 배신하고 위협할 존재가 될 것 같으니까 이스라엘 자손들을 학대합니다. 더우기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죽이라고 명령까지 내립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의 인구는 줄지 않고 더욱 번성해갔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학대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듯이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으로 인도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언약을 이행하시기 위해서 모세를 끌어 들이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하기를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내가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겠다.” 고 하십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하시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막상 보내시는 것은 모세입니다. “네가 가라”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시는 일을 모세에게 미루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모세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바로 모세가 자신을 보내시는 하나님의 그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뜻하신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도 하나님과 같이 이스라엘 자손의 고통과 부르짖음, 그리고 근심에 응답해서 애굽으로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같은 마음으로 진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을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했던 하나님의 마음을 모세가 품고, 그 일을 위해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가지 사명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그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그 일들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대하는 사람들이나 일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셔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때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시고자 보내시고,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라고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일들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제가 아는 한 성도님은 남편이 정신적으로 좀 연약하신 분인데, 그 분은 그 남편의 부족하고 연약한 면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남편을 잘 섬기라고 보내셨다고 생각하시면서 힘들지만 겸손하게 섬기십니다.
우리교회에서도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헌신하십니다. 직분자들은 맡겨진 일들을 위해 헌신을 합니다. 교회일에 자원해서 일하시는 분들도 있으십니다. 노숙자분들이나 어려운 형편의 분들, 여러 선교지를 섬깁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사역자들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자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품고,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아파하심을 품고, 하나님을 대변하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모세가 걱정하는 것 중에 하나는, 만약 자신이 애굽에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물을텐데, 그 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14절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그리고 너는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을 잘 표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누군가를 의지하지 않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있는 자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십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만들었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갈 때도 스스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람이 존재하기 위해서 숨 쉴 공기, 마실 물, 먹을 음식, 몸을 보호할 옷, 햇볕과 같은 것이 필요합니다. 이 땅에 공기와 물이 없다면 온 인류는 하루도 안되어 전멸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있을 수 있도록 창조하시고, 그 피조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분이시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있게 만드신 창조주여, 이 땅의 모든 존재를 관리하시며 유지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내가 무엇이기에…” 라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감당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있게 하신 분이고, 또한 그에게 사명을 주실 때에 그 필요한 것 또한 공급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존재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우리들을 지금까지 이 땅에 있게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이 땅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존재 가치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존재의 근원임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존재케 하신 바른 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존재의 근원임을 믿을 때에, 우리는 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즉각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감당치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자신이 아니라, 그를 부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의 관심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고 믿고 행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신발을 벗듯이, 내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 앞에 나자신을 낮추고 섬길 때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의 공급하심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교회를 존재하게 하셨고, 우리교회를 부르셔서 하나님은 우리로 당신의 뜻을 위해서 쓰십니다. 주님의 맡겨주신 일들을 주님을 의지하여 충성스럽게 감당함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부르실 때에 ‘내가 누구이기에 보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로 답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제가 가겠습니다.’ 라고 응답하는 믿음의 성도, 교회가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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