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 중고등부 학생들과 중국에 선교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직접 선교는 할 수 없었고, 중국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북한과 연접한 길림성에 있는 조선족 교회들을 방문하고 함께 예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공산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한 삼자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예배가 제대로 드려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영적으로 눌려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모여있는 몇십명의 조선족분들이 찬양을 하는데 얼마나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며 찬양을 하시는지 깜짝 놀랐습니다. 공산국가에서 신앙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을텐데도, 전심을 다해 찬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시편을 보게 되면, 많은 시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147:1에는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라고 했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선하고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성도가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찬양순서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이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말씀도 보면,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인사말을 마치자 마자, “찬송하리로다.”하며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에베소서 편지를 쓰던 때는 하나님을 찬양할 만한 좋은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를 쓸 때에 바울은 로마감옥에 감금되어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러한 환경속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하는 것은, 바울에게는 이러한 고난의 상황을 뛰어넘은 하나님을 찬양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교인들에게 “찬양하리로다.” 라고 말한 다음에 하나님을 왜 찬양해야하는 이유를 3절부터 써내려가는데 14절까지 한 문장으로 단번에 써내려갑니다. 우리나라 성경에는 몇개의 문장으로 나누어서 번역을 했지만, 원래 원본에는 이것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바울은 하나님이 왜 찬양을 받으셔야 할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이것을 에베소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박진옥집사님께서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집사님께서 찬송을 하나님께 부르신 이유는 지금의 상황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집사님은 지금 암으로 인해서 육신적으로 평생에 가장 고통스러운 때를 지나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큼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사님은 매일 찬양하면서 지내신다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로 언제 하나님을 찬양하십니까?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쉽지만, 고난 중에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찬양은 좋은 일을 경험한 사람만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이미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깨닫는 자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은 은혜를 주셨어도 이를 깨닫지 못하면 찬양이 나오지 않고, 도리어 불평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을 찬양케 하였던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우리가 찬양의 근거로 삼아야 할 은혜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로 바울은 3절에서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합니다. 자식복, 남편복, 재물복, 건강복… 여러분은 어떠한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자들은 재물복을 받았다고 하고,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면 인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가지지 못했으면, “나는 지지리도 복도 없는 사람” 이라고 푸념을 늘어 놓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복이 없다고 푸념할 사람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받은 복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는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풍요하고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복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복은 바울도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중에서 야곱의 사랑을 받은 베냐민의 자손인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 당시 최고의 랍비였던 가말리엘로부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의 사람입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 복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이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까 땅에 속한 것들이 그다지 가치있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삶을 이 땅에서 이룰 때에 그것을 복이라고 여기며 이를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 욕망을 기초로 한 복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건강을 원하지만 병들어 고통스러워할 때를 경험합니다. 재물이 많은 것을 복이라고 여기며 추구하지만 돈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좋다고 여겼던 사람으로 인해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은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욕망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복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인 것입니다. 신령한 복은 육신의 욕망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풍성함을 누리면서 살아가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신령한 복은 이 땅에서 줄 수 없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인 것입니다.
2. 그렇다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다 누릴 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49-50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우리 모두는 이 땅 위에 살아가지만, 하늘의 신령한 복은 하늘에 속한 자가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스스로 하늘에 속할 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없는 존재로 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죄인이 하늘에 속한 자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함을 받을 때에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는, 하늘에 속한 자가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자가 된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복의 내용도 달라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7: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이를 복으로 알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속한 아들들은, 내가 바라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한다면 내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혹시나,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망되는 일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너무 상심하지 말것은,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나에게 내가 원치 않은 가시와 같은 병이 있고, 좋지 못한 상황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령한 계획을 이루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복받을 하나님의 자녀로 택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복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만한 자격이 있어서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된 것이, 창세전부터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들은 거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거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을 공급받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 받는 것도 다 거져인 것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것이 생각해 보면 다 거져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을 받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를 택해주셔서, 하나님께서 거져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공급해 주시는 은혜를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는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면,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기업이 되었습니다. 기업은 “클레로오 kleroo’ 라는 단어를 쓰는데, “제비뽑아서 몫을 할당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되로 하나님께 할당된 몫, 기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고자 우리를 경영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8절에,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셨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총명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업이 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주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지혜와 총명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속한 자들의 지혜는 이 땅에 국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지혜와 총명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세상에 보여 주시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된 우리는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모습을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거짓이 많은 세상에 하나님의 진리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고자 하십니다. 폭력과 차별이 많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온유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영하심에 따음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 땅에 세워지는 지를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경영을 받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고, 우리를 하늘의 지혜와 총명으로 경영해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 우리는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10절에 바울은 말합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다 그리스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세상은 하늘과 땅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땅에 속한 사람들이 있고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에서 땅과 하늘이 통일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함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하늘나라와 같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늘나라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시고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이 대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어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부르신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가 비록 땅위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경영하시도록 맡겨드림으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 있는 것과 땅에 있는 것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더욱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으로 가득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복이 됨을 깨달으시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안에 거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령한 복을 날마다 누리기를 바라며, 이러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인하여서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