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갓 태어난 아이의 영어 이름을 지어 달라고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부탁을 듣고 성경의 인물 중에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의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의 인물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쏙드는 인물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들에게도 실수와 죄의 모습이 보석에 티와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신앙의 위인으로 불려지는 것은 그들이 죄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잘못을 했어도 이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쓰임받았기에, 신앙의 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도 이런 인물 중에 한 명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평가되어 지는 사람이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를 성군으로서 존경합니다. 그런데 사실 다윗은 중범죄를 저지른 죄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악한 죄를 고발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다윗왕에게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왕이시여,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암양새끼는 그 가난한 사람에게 가족과도 같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그 암양을 자식과 함께 키웠습니다.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게 했고, 그의 품에 눕게 했습니다. 마치 암양을 딸처럼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자에게 한 행인이 왔습니다. 부자는 그 행인을 대접해야 하는데, 자기의 양과 소를 잡는 것이 아깝다고 여겨서,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습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들으면서 이미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리고 나단선지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지라” 라고 저주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말을 들은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무엇이라고 말한지 아십니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죄된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윗에게만 해당하는 지적이겠습니까? 우리에게도 “네가 바로 그 사람이야”라고 하시며 하나님께서 질책하시고자 하는 모습이 없겠습니까?
다윗의 범죄는 믿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신앙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언제 우리도 다윗과 같이 실수하고 넘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느 정도 섰다고 생각할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 죄에 대한 시험과 유혹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질책하시는 내용을 살펴 보면서,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사람으로 불려져야 할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너는 내가 준 능력을 가지고 네 탐욕을 채우기 위해 사용한 그 사람이 아니냐?”
사람이 많은 힘을 가지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게 됩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죄를 지을 가능성도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다윗이 그런 경우였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기 전에, 힘이 없어서 아주 고달픈 시간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골리앗을 죽인 일로 인해서 백성들이 사울왕보다 다윗을 더 높였습니다. 사울왕은 이를 보고 다윗을 시기해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다윗은 힘이 없는 존재였고, 억울하지만 사울에게 잡혀 죽을까봐 날마다 분주하게 도망다녀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는 연약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니까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다윗에게 그 전에 없었던 막강한 힘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가지고, 죄를 짓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다윗은 성을 거닐다가 한 목욕하는 여인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함께 자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윗은 그 여인이 누구인지도 알아보라고 신하에게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의 충신, 우리아 장군의 아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우리아는 지금 암몬 사람들과 싸우는 전쟁터에 있는 신하였습니다.
다윗은 그녀가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왕궁으로 불러 들입니다. 그리고 동침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다윗은 당황스런 소식을 우리아의 아내로부터 듣습니다. 그녀가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은 바빠졌습니다. 자신의 악한 행동을 그녀의 남편, 우리아에게 숨기기 위해서 수를 씁니다.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 장군을 오게 해서 그의 아내와 동침하도록 주선을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임신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지 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아 장군은 자신의 주인 요압과 그의 부하가 전쟁 중에 있는데, 편안하게 집에가서 아내와 동침할 수 없다며 집에 가지 않고 왕궁에 머뭅니다. 이를 보고 다윗은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아 장군을 가장 치열한 곳에서 싸우다가 죽도록 만들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아 장군은 다윗에 의해 전쟁터에서 억울하고 허무하게 죽게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재력, 영향력이 있을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왕의 권세와 능력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꼭 필요했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권력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지 않고, 그 권세를 자기를 위해 누리려고 했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일에 악하게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그 권력을 가지고 행하는 악한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셨겠습니까? 만약 그 권력을 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악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후회하지는 않으셨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크고 작은 달란트들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주실 때에는 그것을 주인된 하나님을 위해 충성되게 쓰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하신 나라를 위해서 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한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고 생각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위치에 계신 분들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그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으로 인해 죄를 짓지 않도록, 더욱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주신 힘을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힘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준 능력으로 나를 위해서 쓴 사람이 바로 너구나” 라고 말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말은 듣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너는 영적으로 나태해져서 나를 잊고 살았던 사람이 아니냐?”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이 범죄했던 때가 언제인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암몬 자손과 전쟁을 할 때입니다.
10장에 보면, 다윗은 이미 암몬 사람하고 전쟁을 한 차례 치렀습니다. 암몬의 나하스 왕이 죽자 다윗은 죽은 암몬 왕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죽은 암몬왕의 아들인, 하눈에게 조문단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눈왕은 조문단을 스파이라고 여기며, 그 조문단에게 수치를 보여서 돌려 보냈습니다. 그는 조문단으로 간 사람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옷을 엉덩이까지 잘랐던 것입니다. 다윗이 이렇게 한 하눈을 가만둘리 없습니다. 다윗은 암몬에 쳐들어가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봄에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과 암몬과의 싸움이 재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윗이 그 전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굳이 다윗이 나가서 싸우지 않아도 승리할 수 있을 만한 장군과 군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있던 다윗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1:2절에 보면, 다윗이 저녁 때에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서 왕궁 옥상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저녁까지 낮잠을 잔 것입니다. 중동지역은 낮에 날씨가 뜨겁기 때문에 낮에는 일하지 않고, 낮잠을 자는 ‘씨에스타’ 라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그가 저녁까지 잠을 잤다는 것을 기록한 것은 그 당시의 문화를 설명해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적인 나태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라가 전쟁 중에 있는데 다윗은 늦게까지 낮잠을 잘 정도록 게을렀고 나태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 승리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낮잠을 길게 자고, 한가하게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여인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을 간음하고 그 남편을 죽이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의 육신적인 풍요와 평안이 그를 영적으로 나태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시기를 받고 쫓김을 받을 때에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며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들을 보면, 하나님을 바라고 구하는 시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할 때에 지은 시가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드소서”(시 59:1). 나를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을 애타게 찾던 자가 다윗이었고,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다윗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다윗이 영적으로 깨어 하나님을 구하는 삶을 살았을 때에 그것이 그에게 참된 능력이 되었습니다. 사울왕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일 정도의 위치와 힘이 있었지만, 정작 사울왕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시는 것을 사울은 알았기 떄문입니다.
성도의 힘은 어디에서 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늘 영적으로 깨어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삶이 풍요해지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되면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굳이 하나님께 무릎 꿇지 않아도 충분히 걱정근심없이 편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풍요함과 삶의 편안함을 주실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육신적인 풍요가 영적인 빈곤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이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것 같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할 때에 조심하십시오.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이유가 단순히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를 귀하게 생각하며 교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육신의 풍요와 편안함을 주었더니 나를 멀리했던 사람이 너로구나”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 “너는 언제나 변함없이 나와의 관계를 중요하시며 살아가는 구나”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3.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듣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왕으로 세워줬더니, 나의 왕됨을 잊어 버린 자가 바로 너가 아니냐?”
다윗이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졌을 때에 나타난 현상은 자신이 원하는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가 연약한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살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되어서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셨지만,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어두워지게 되니까 자신이 왕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인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저지른 간음과 살인되는 죽음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간음과 살인이라 중범죄를 짓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죄책감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고발하기 전까지 그 죄에 대해서 망각할 정도로 자신의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라는 의식이 희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어둠은 하나님이 나의 왕되심을 잊게 만들고 내 마음대로 방종하면서 살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과 같이 높이시거나 능력을 주셨을 때에는, 우리가 왕과 같이 마음대로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왕으로 해서, 하나님을 더욱 잘 섬기도록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과 같이 높이 올려 주실 때를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위치에 있던지 간에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왕이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스스로 겸손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런 말을 듣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높여주어도, 여전히 나를 왕으로 모시고 겸손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너로구나”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로부터, 아니 하나님으로부터 뼈아픈 말을 듣습니다. “당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말하는 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정적인 의미로 이러한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능력을 주실 때에 그 능력을 내 욕망을 채우고 누리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준 능력을 가지고 내 뜻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 사람이 바로 너냐?”라는 말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육신의 풍요와 편안함이 영적인 나태함으로 빠져서는 안됩니다. 도리어 육신의 풍요와 편안할 때에 영적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으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나태함에 빠지지 않고 언제든지 나와 교제하는 사람이 바로 너냐?”라는 말씀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때에 우리는 내가 왕이 된 것처럼 자만하며 살지 말아야 할 것이니다. 그럴 때에도 우리의 왕은 하나님이 되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시기에, “언제나 나를 왕으로 모시고 섬기는 이가 있다고 하던데 바로 너로구나” 라는 인정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와 편안함을 누리면서 영적으로는 나태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기 쉬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영적으로 깨어서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를 상실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귀하게 사용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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