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던 TV 프로그램 중에 “강찰부대 steel troops”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6개의 특수부대 군인들이 나와서 각 특수부대의 명예를 걸고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받은 이들이었기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막강한 힘과 투지를 보여주었고, 시청자들은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흥분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특전사의 구호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안되면 되게하라” 라는 구호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어진 미션을 성공하기 위해서 그 어떤 특수부대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특수부대와의 경쟁에서 일등을 했냐면 그렇지는 못했습니다. 저도 그 부대를 응원하였기에 그들이 원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한계를 보면서 안타까워했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맡겨진 일을 끝까지 감당하려고 하는, 목숨까지 바치려고 하는 군인정신은, 팬데믹으로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안되면 되게하라’ 는 구호와 자새를 가지고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되지 않는 것들을 통해서 성공보다 더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 바울이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꼭 극복하고 싶었던 자신의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던 것입니다. 가시라고 했을 때에 가시나무에 있는 뽀족한 가시를 말할뿐만 아니라, 뾰족한 막대기, 말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몸에 가시가 박히게 되면 어떤 일을 할 때에 큰 방해를 받기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바울은 이를 ‘사탄의 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자신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보낸 심부름꾼과 같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바울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육신의 질병이라고 추측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나 상황 등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 몸에 육체의 가시가 있으면 그것이 신경이 쓰여서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가시를 그냥 놔두지 않습니다. 빨리 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바울도 그 가시가 빨리 제거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도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육체에 가시가 자신에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도 육체의 가시가 여전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간구하기를 총 세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육체의 가시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바울과 같은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인 질병이나 약함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환경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없으면 내 삶이 더욱 행복하고, 잘 풀릴 것 같은데 이 가시로 인해서 불행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습니다.
어떨 때는 “나에게 이 가시를 제거해 주시면 더욱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시를 하나님께서 제거해 주실 것을 기대하며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대로 들어주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들어주시지 않는 이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유는 그에게 그 가시가 있어야 됨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제거되는 것보다 그대로 둠으로서 더 큰 유익과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냥 두시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응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시들이 어떠한 의미가 있고,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사도 바울이 하나님이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자만하지 않도록 하시고자 육체의 가시를 그대로 두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어떤 사람도 경험하지 못한 커다란 자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는 환상과 계시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체험은 스스로 자신을 커다란 존재로 생각할 만한 커다란 일이었고, 바울은 그 일로 스스로 자만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영적인 것이든, 세상적인 것이든지간에 다른 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하거나 소유한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것은 자만함입니다. 재물이나 지식, 영적인 경험들,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들이 있을 때에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자랑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환상과 계시를 보여주셨을 때에,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육체의 가시가 그대로 있는 것을 통해서 이를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자랑할 것은 내가 본 환상과 계시가 아니라,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말은 곧 자신은 약하고, 하나님이 강하신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시가 있을 때에 깨달아야 할 것은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시를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한 능력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때로 이를 잊고 자만하기 십상입니다.
에스겔 29장에 보면 두로왕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두로왕에게 지혜를 주셨고, 그가 무역을 통해서 재물을 많이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지혜와 재물로 인해서 그의 마음이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있도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두로에 바벨론을 보내어서 두로왕을 죽이도록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너를 죽이는 자 앞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들 앞에서 사람일 뿐 신이 아니라” (겔28:2,9).
삶에 가시가 없는 인생은 자칫 교만하여 자만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살아가는 유혹속에 있는 것입니다. 당신을 괴롭히는 가시가 있습니까? 이를 통해서 우리의 약함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리고 그 약함을 가지고 겸손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산다고 한다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신 목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여러가지 가시들은 나의 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시를 만날 때, 더욱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셨을 때에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으면 온통 관심을 그것으로 향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에 이 가시는 블랙홀과 같습니다. 자신의 아픈 것에 온통 신경을 쓰게 됩니다.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이나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가 있게 되면, 고통스러워서 자연스럽게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특별히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사는 이들에게 이러한 가시와 같은 이들이 있으면 참 괴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의 가시를 빼 주시는대신, 그의 관심을 가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바꿀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바울에게는 그의 가시로 인한 고통과 비교할 수 없는 족한 은혜가 이미 그에게 풍부히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죄인중에 괴수인 바울을 부르셔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에게 필요한 사람과 물질들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가 그를 찌를 때에 이미 주신 풍성한 은혜를 살펴 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가시가 자신을 찌를 때에 그 동안 하나님께 베풀어주신 것을 잊고, 그 가시로 인해서 감사가 사라지고 원망에 사로 잡힐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하나님께서 가시를 주시는 것은, 그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깨닫고 이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함으로 구원해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가족을 주시고, 교회를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서로 믿음으로 교제할 수 있도록 샘터를 주시고, 믿음의 사람을 주신 것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나를 찌르는 존재를 주셔서, 내 믿음을 연단케 하시는 것도 은혜인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4:4절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선하지 못하고 가시같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감사함으로, 은혜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가시가 나를 찌를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시고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 중에 나오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은혜의 풍성함을 기억하며,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승의 은혜’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주로 스승의 날, 학생들이 선생님께 부르는 곡입니다.
이 노래 가사는 이렇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지네. 참되거라 바르거라 가르쳐주신 스승의 마음의 어버이시다.” 그리고 끝은 이렇습니다. “아아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아아 보답하리 스승의 은혜”
이 노래는 스승이 베푼 은혜에 대해서 노래하면서, 마지막은 그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가사로 끝납니다. 그리고 그 은혜갚는 것은 참되고 바르라는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이가 해야 할 일은 그 은혜에 보답하는 일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보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 은혜를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구속의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이들보다 더한 수고를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백하는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데, 그 증거하는 것도 주님의 은혜로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갚아나가는 삶을 살아갈 때에,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받음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삶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르침인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과 사랑의 하나님을 선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라는 것을 세상에 증거함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더욱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할 때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만나기도 했지만, 도리어 그 때에 자신에게 능력을 주셔서 이를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삶을 살 때에 손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귀한 것으로 갚아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서 주지 못하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라고 고백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가시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좋을 때도 있지만, 또한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가시에 찔리고 괴로워하는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가시를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은 또한 선하신 일들을 하십니다.
바울도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통해서 자신을 자만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시가 없으면 자신을 자랑하며 자만하여 멸망 길로 갈 수도 있을텐데, 가시로 인하여 자만치 않고, 겸손히 주님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보고서 4:6절에,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시 가운데 우리로 겸손케 하시고 우리로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시가 우리를 찌를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함을 깨달을 때입니다. 사탄의 사자인 가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무력화하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음으로, 우리는 원망이 아닌 감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갚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와 사랑을 선포하며 그분의 자랑하며 보답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위에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푸셔서 기쁨으로 주의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시를 통하여서,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강력함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경험하는 삶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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