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2021 - 다니엘의 기도와 감사 [다니엘 6:1-10]
한국에서 전도사로 목회할 때에 어느 영성훈련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박오일의 일정인데, 그곳에 참여한 분들을 보면 각양각색입니다. 훈련에 먼저 참여하신 분이 추천해 주셔야 그 훈련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어떤 분은 영성훈련이 좋다고 하기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신 분들도 계시고, 어떤 분들은 가기 싫은데, 아내나 친구가 “당신은 꼭 참석해야 한다.” 며 참가비를 대신 내 주어서 어쩔 수 없이 참석하신 분들도 많으십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오셨든지 상관없이, 그곳에 참여하신 분들은 최고의 대접을 받게 됩니다. 편한 숙소자리에,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쾌적한 분위기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그런데 첫날 저녁에 프로그램 중에서 침묵시간이 있습니다.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침묵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함께 방쓰는 분들과 대화를 못하니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침묵하며 묵상할 수 있었고, 어렵지 않게 침묵의 시간을 마쳤습니다.
나중에 훈련에 참여하면서 받은 은혜나 느낀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서울에서 비교적 큰 교회를 담임하시는 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목사님은 침묵시간에 침묵을 하면서 영적으로 유익한 시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서 그 목사님께서 하신 첫 말씀에 스스로에게 놀랐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아침에 되어서 세면을 하기 위해서 세면장으로 갔는데, 그곳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 ‘다른 것들은 다 좋은데 세면장이 형편없구만…’ 목사님은 무의식중에 불평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당황하셨던 것입니다.
불평이라고 내가 생각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뭔가 불편한 일이 생기게 되면 나오는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불평할 만한 때에는 불평하고, 감사할 만할 때는 감사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 감사할 일이 있어야지 감사하지 않습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상황가운데서 어떤 분은 감사를 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불평을 하기도 하니, 감사나 불평을 해야 하는 절대적인 구분이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마귀의 세계는 감사가 없다. 마귀는 항상 원망, 불평만 할 뿐 절대로 감사가 없다' 고 말했다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로 불평에 빠지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속에서 은혜와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특별히 그는 상황적으로 볼 때 감사할 내용이 없을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의 감사의 삶에는 기도가 뒷받침되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번씩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난 창문을 열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의 기도와 감사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도전하는 것이 무엇이며, 이 때에도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다니엘은 인생 말년에 사람들로 부터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을 받게 됩니다.
평생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사람에게도 억울한 일이 생기고, 사람들로부터 대적을 당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주전, 539년 경, 메데와 바사, 두 나라가 연합하여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다리오가 초대왕이 되었습니다. 다리오 왕은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고관들 120명을 세웠고, 총리 셋을 두어서, 고관들이 총리에게 그들의 직무를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니 세 명의 총리는 다리오왕 다음으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한명이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두 명의 총리와 고관들에게 적대적인 대우를 받습니다. 총리와 고관들이 보기에 다니엘은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은 메데와 바사가 멸망시킨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다가 관리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나이가 80정도가 되는 별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다니엘이 높은 위치를 차지하였고, 그를 섬겨야 되니 총리와 고관들이 못 마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니엘을 그 자리에서 잡아내려야 겠다고 생각하고, 다니엘을 고발한 근거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이 다니엘의 흠집을 찾고자 하여 그가 국사, 나라의 일을 어떻게 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이 총리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뭔가 흠잡을 만한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흠이 있게 마련입니다. 더군다나 정치를 하는 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흠잡히기에 쉬운 위치에 있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선거에 출마한 사람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흠을 찾아 상대 후보를 낙마시키려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공격에서 자유한 사람이 없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라는 속담과 같이, 상대방이 나의 약점을 문제삼으려고 한다면 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리오왕이 세운 총리들과 고관들이 작정하고 다니엘을 고발할 것을 찾으니까 얼마나 철저하게 그 일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대단한 것은, 그들이 허물을 찾으려고 해도, 아무런 허물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도리어 그들이 발견한 것은, 흠이 아니라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다리오왕이 맡긴 나라의 일을, 부패한 방법이 아니라, 바른 방법으로 잘 수행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들에 대해서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이 국사를 함에 충성으로 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다리오왕에 대한 인간적인 충성으로 된 것이겠습니까?
다니엘의 충성은 한 인간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다리오왕이 자신을 총리로 세운 것 같지만, 다니엘은 그 위치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일임을 잘 알았습니다. 다니엘은 총리의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임을 알고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다니엘도 사람이기에 실수나 허물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의 일을 흠없이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고, 이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은, 날마다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이들에게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 역할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회사, 직장에서 그 일을 감당할 때에,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늘 기도하며 그 일을 흠없이 소홀함없이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흠없이 그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그렇다고 그에게 어려움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29:10절에,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는 온전한 자를 미워하고, 정직한 자의 생명을 찾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하고 정직하게 살아간다고 모든 이들이 좋아하고 환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악인들은 그러한 이들을 미워하며 어려움을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다가 고난과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 총리와 고관들은 다니엘이 그토록 충성스러운 사람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을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은 국사를 통해서는 다니엘을 고발할 수 없음을 알고서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다니엘의 신앙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5절에 보면, 그들은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다니엘을 고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모습을 보니 그가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에 관심하게 됩니다. 이제 그들은 다니엘에게서 흠을 찾을 수 없으니까, 그에게 흠을 내고자 합니다. 유일한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임을 믿는 다니엘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기도하게끔 음모를 꾸밉니다.
총리들과 고관들은 왕에게로 가서, 한가지 법을 세울 것을 요구합니다.
“다리오 왕이시여, 앞으로 삼십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명령을 내리시지요”
다리오왕은 부하들의 이러한 제안에 만족해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신하들이 자신의 존재를 대단한 존재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사람들의 구함의 대상, 기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마치 자신이 신과 같은 존재로 인정받는 것 같았습니다. 다리오왕은 부하들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다리오왕의 신하들은 다리오왕의 교만한 마음을 자극해서 그 일을 성사시킵니다.
그런데 참 그들은 교묘합니다. 다리오왕의 신하들은 굳이 이것을 금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금령이라는 것은 왕이 그 법을 통과시킨 후에는 왕조차도 이 법을 바꿀 수 없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총리와 고관들이 특별히 금령으로 하자고 한 것은 그들은 다리오왕이 다니엘에 대한 애정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고발되었을 때에 그를 좀 구해볼까하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자굴에 던져졌을 때에도 잠을 자지 못하고 금식하며 다니엘이 당한 일에 대해서 슬퍼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대적들은 왕 조차도 다니엘을 구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계획을 짰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기도의 삶은 대적자들에게 좋은 공격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이 대적들에게 조롱과 박해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도리어 나에게 손해가 되고, 내 삶에 유익이 없도록 만들어 놓으며, 우리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 것입니다.
3. 다니엘은 그들이 하는 일이 자신을 죽이기 위한 음모인 것을 잘 알았습니다.
자신이 당하는 상황은 참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금까지 충성하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가 되어서 그가 죽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불평의 소리가 먼저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 이렇게 죽게 만드시는 것입니까? 라며 원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에 대해서 연구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충분히 살 수 있었습니다. 그 금령은 30일이라는 한시적인 시간동안에 있는 법입니다. 그때만 무사하게 넘기면 됩니다. 다니엘은 살기 위해서, 30일 동안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평생 기도하며 살았는데 30일은 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라고 정당화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대적자들이 안보이는 가운데 기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난 창문을 열지 않고, 닫고서 기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도 두려우면, 자기만 아는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는 늘 하던대로 윗층에 올라가서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향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도리어 대적들이 보란듯이 떳떳하게 기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정으로 기도할 대상은 하나님 밖에 안계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의 육신적인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만을 자신의 주님으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 죽는 것을 더욱 귀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신앙의 도전이 올 때에 이에 굴복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공격당하는 이유가 되고, 손해를 보는 일들도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어떤 교인들은 예배와 기도의 생활을 중지하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분은 창문을 닫고, 때로는 골방에 들어가서 그 신앙을 숨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의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이나 환경에 지배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가 그 상황에서 감사할 내용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골로새서 4:2절에 보면,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라고 했습니다. 기도의 삶속에는 감사가 동반됩니다. 기도는 우리의 관심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맞추도록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비록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은혜요 복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 감사가 있게 되고, 그 감사로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믿었기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다니엘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해서 모함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해외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님들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고난을 받고, 목숨의 위협까지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믿기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니엘과 같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가 드러나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우리의 감사의 이유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도 다니엘과 같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런데 믿음을 도전하는 시험을 받을 때에, 너무 쉽게 예배의 삶을 접고, 기도의 삶을 접고,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삶에 고난과 억울함이 온다고 할지라도, 다니엘과 같이, 늘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선한 일이 일어질 것을 위해서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음 주일에 추수감사주일로 섬기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과일모양의 감사열매 종이를 나눠드렸습니다. 한 주간 기도하시는 가운데 감사의 내용을 적으셔서, 추수감사주일에 제단앞에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감사는 어떠한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그 결과를 보고서 감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도의 감사는 그것이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가 모든 일을 접할 때에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지금의 은혜가 충만함을 깨닫고 반응하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리고 감사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불평이 아니라, 기쁨을 주십니다.
비판과 원망이 많은 이 때에, 현재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시험을 이기고,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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