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nNy7weNq_R4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어떠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께 어떠한 존재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 본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열납되다.” 라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지다. 기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상태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사람들은 말을 할 때에 상대방을 의식하면서 합니다. 그래서 상대방에 따라서 말하는 태도와 내용도 달라집니다. 그런데 다윗은 말을 할 때에 사람들보다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했습니다. ‘묵상’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힉가욘’으로 ‘작은 소리로 읊조리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입술로 내는 소리는 제한적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는 수 많은 말들이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의 읆조림들 중에서 일부가 입술의 말로 나오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담겨진 것이 입술로 나오고, 그리고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열납받으실 만한 것으로 채워질 때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말이 나오고 행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기쁘게 받아주시길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셨음을 사도행전 13:22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말과 마음의 것들을 품고자 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곧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들을 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잘 보여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선생님의 마음에 맞는 학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윗상사의 심기를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말과 행동을 삼가하며 그들의 마음에 자신을 맞추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라고 한다면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마음에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내 입술의 말을 사람만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듣고 계심을 인식하며 하나님께 열납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울림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소리까지도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 열납하실 만한 마음의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은 소원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이 예배를 드릴 때에도, 우리가 입술을 통해서 기도하며 찬양할 때에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것을 소망하며 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묵상들도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마음을 다 열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가인과 아벨이 동시에 제사를 했어도,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사만을 열납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 앞에 열납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다윗은 오늘 시편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비결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증거, 여호와의 교훈, 여호와의 계명 등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열납받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고, 그 말씀에 정직하게 반응하여서 말하고 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 열납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열납하시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하고,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 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순금은 변하지 않고,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꿀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힘을 솟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능력을 더해 준다고 다윗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으신 본문 전에 있는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연을 만드셨는데, 그 자연이 어떻게 운행되는지를 밀하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자연만물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감당하며 오차없이 이 땅에 존재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한 이 창조물들이 어떻게 운행되어야 할지도 말씀으로 지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가치있는 인생은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대로, 그의 섭리를 따라 살아갈 때입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이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함을 알았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자 했습니다.
이 세상에 어떠한 말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최고로 가치있는 존재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을 소성케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늘 새로운 존재로 만들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 땅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이치를 깨닫게 하셔서, 창조 질서에 맞게끔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기쁘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담겨 있을 때에 우리의 마음이 기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을 지배하지 않을 때에 어떻습니까? 슬픔과 우울함, 짜증이 우리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한다고 했습니다. 육신적인 눈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밝아져 어둡고 거짓된 죄된 것을 분별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를 귀찮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살아감으로, 이 세상에서 가치있는 존재, 하나님의 복을 받는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그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9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하게 여기는 원인 중에 하나가 뭡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의 말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사람이 상대방을 중요하게 여기거나 무서운 존재라고 여기면 그 사람의 말을 소홀하게 여길 수 없습니다. 군대라고 하는 곳은 상사의 말에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상사의 말을 명령이라고 말합니다. 사회 직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직장인들은 상사의 말을 경청해야 하고, 그들은 말을 행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우습게 여기게 되면, 상대방의 말 또한 소홀하고 가볍게 여기기 마련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기분 좋을 때는 들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무시할 만한 존재가 아니십니다. 우리의 영혼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경외의 대상이 되십니다.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명령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람의 본분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1절에 보면, 다윗은 말합니다.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라고 했습니다. 비록 다윗이 한 나라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종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떠한 사회적인 위치에 있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종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종된 사람이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주인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종들끼리 재미있게 “낄낄” 거리며 웃고 말하다가도, 주인의 인기척이나 헛기침이라도 들으면 다들 조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주인이 자신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중에는 반려 동물로 개나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이 있으신데, 그 동물들이 여러분을 어떠한 존재로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2014년, 영국의 동물 행동학 분야 권위자 존 브래드 쇼 박사가 고양이와 개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사람에 대해서 어떠한 존재로 생각하는지 개와 고양이가 다르다고 합니다.
연구진이 두 동물의 행동을 관찰했는데 , 개는 개와 놀때와 그리고 사람과 놀때 하는 행동이 다르다고 합니다. 개는 인간을 주인, 리더라고 생각하며, 그 지시에 복종하고자 노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를 훈련시키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개들에게 앉으라고 말하면 개들이 앉고, 일어서라고 말하면 일어서도록 가르칠 정도입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개와는 다릅니다. 고양이는 사람과 놀 때에도 그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양이는 사람을 자신들의 주인이나 리더와 같은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마치 자신과 같은 고양이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며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양이는 자기 고양이들 간에 하는 행동을, 사람에게도 그대로 행한다고 합니다.
이 연구결과를 보면서 저는 개에게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나도 개처럼 살아야겠다.” 제 맘대로 살아보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잘 선대해 주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고 주인이신 줄로 믿습니다. 늘 주님의 말씀에 경청하여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충성스러운 종, 백성의 사람을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마땅한 본분인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죄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켜 줍니다.
19:12절, “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다윗의 자신을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죄는 드러난 죄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숨은 죄, 허물도 있습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난 것들을 그렇게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 숨어서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죄짓게 만드는 숨은 죄와 허물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숨은 허물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명할 들추어내야 할 것이 필요한데 그것이 말씀인 것입니다.
로마서 7:7-9절에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무엇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무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빛과 등불로 삼아 나 자신을 살펴 볼 때에, 나의 숨어있던 죄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죄가 자신을 주장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행함으로 그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고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게 행함으로 죄와 허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늘 말씀의 빛으로 비춰봐야 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 무의식 중에 자리잡은 죄와 허물이 있는지를 늘 살피며, 정결한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기독교인이 잘 보여야 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반대로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하고 환영해준다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거절함을 받는 것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열납해 주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때로 사람들에게는 거절을 당하고 공격도 당했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로 살기 위해서 힘썼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다윗은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그 말씀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며, 그 말씀이 말과 행동으로 나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우리를 다스릴 때에, 우리의 영혼은 소성케 되고, 우리는 지혜를 얻으며, 우리의 마음을 기쁘고, 우리는 정결케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말과 마음을 우리 하나님은 듣고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잡고 다스리시는 우리의 마음, 그리고 그 말씀이 우리의 입술의 말을 통해서 나올 때에,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속자이신 하나님께 기쁨으로 열납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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