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qjNvolZ4AQ
나태주 시인이 쓴 ‘풀꽃’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는 많은 사람들의 큰 공감을 받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고 합니다. 그 시는 아주 짧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는 시인이 학교에 교장선생님으로 있으면서 지은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지은 사연이 있습니다. 학교 아이들 중에 말을 안듣고 까칠한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예쁘게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 시를 썼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썼다기 보다도, 아이들을 예뻐하고 사랑해보려고 쓴 시인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 그 사람들이 좋아보이면 참 행복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에 선하고 아름답다면 그것 또한 기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그 피조물들을 보실 때에 어떠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날에 빛을 만드시고 보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첫날만 좋으신게 아닙니다. 그 다음날 땅과 바다를 만드시고도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그리고 땅이 각종 풀과 식물들을 내는 것을 보시고도 좋으셨습니다. 하늘에 해와 달, 별들을 만드시고도 보기에 좋으셨습니다. 하늘에 나는 새와 바다의 생물들을 만드신 후에 이 또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리고 땅에 사는 짐승들을 만드신 후에 끝까지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그리고 창조 육일째 되는 날, 그 동안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셨는데, 그 때에는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심히 좋았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는 내내 너무 좋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했을 때에, ‘토브’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하는데, ‘좋다. 선하다. 아름답다. 존귀하다.’라는 복합적인 뜻이 있습니다. 외형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속에는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선함이 담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창조 이후, 하나님이 좋아하셨던 그 아름다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고, 점차 하나님의 선하심을 상실하게 됩니다. 창세기 6장에 한나님께서 세상을 보실 때에 뭔 보셨는지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고, 그 마음에 생각하는 것이 항상 악함을 보셨다.”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의 좋은 모습은 온데 간데없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은 보시기에 그 사람들이 악했는데, 사람들이 스스로를 보기에는 그렇게 악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악하다고 보시는 것을 좋다고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잊어 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전도서 12:7절에,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새번역에 보면, ‘기억하라’ 앞에 “그 창조주를 기억하여라”라고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만 그 피조물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순간도 눈을 떼시지 않고 그의 만드신 모든 만물을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가 보고 계심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피조물로 존재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세상을 선하게 만드시고자 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우리를 새것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로 만들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천지가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처음 그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습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속에 있는 천지를 변화시키십니다. 그리고 그 변화된 모습을 보시고, 좋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실까요? “좋다. 심히 좋다.”라고 하실까요? 아니면 “별로인데?”라고 하실까요.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보실 때에, “좋다.”라고 여김을 받는 피조물로 날마다 변화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이들을 보시기에 좋아하실까요?
1. 먼저 하나님은 혼돈 가운데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가운데 있는 이들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들을 마음대로 방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해와 달들을 만들어 놓고 마음대로 떴다가 지라고 한다면 세상은 혼돈속에 빠질 것입니다. 동물들을 만들어 놓고 자기 마음대로 살라고 한다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하나님께서는 좋다고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들을 만드실 때에는, 법과 질서를 함께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각 피조물들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알게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수 많은 피조물이 존재합니다. 크고 작은 것들, 눈에 보이는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이 모든 것들이 살아가는 법을 주시고, 만물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우리가 살아갈 메뉴얼인,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에 우리의 삶은 혼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혼돈의 삶을 살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자면, 사사 시대에는 혼돈이 만연했던 때입니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였습니다.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데로 살아가다가 보니, 하나님과 대적하게 되고, 사람들과도 서로 대적하게 되었습니다. 공동체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워 집니다. 그래서 그 때에는 죄로 인한 영적인 혼돈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에 혼돈과 불안이 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내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면서 우리 삶의 평화와 질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내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는 가정은 싸움과 혼란이 끊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은 평안합니다. 교회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에 혼돈 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보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기에 참 좋구나…”
2. 그리고 하나님이 공허한 것들이 아니라, 참된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창조를 시작하시기 전에 땅은 공허했습니다. 텅비어 있고 황량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공허한 곳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채워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세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공허함은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에도 나타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공허함을 호소합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소유했다고 공허함이 사라집니까?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세상의 재물, 명성, 인기 등으로 채우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삶의 공허함은 더욱 커져만 갑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세상의 헛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으로는 영적인 빈곤을 도저히 채울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영적인 공허함을 육신적인 쾌락, 세상의 물질로 채우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삶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 이 세상을 만드신 그 크신 하나님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그분을 위해서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은 풍요롭게 됩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목자의 삶이 얼마나 공허하겠습니까? 다른 이들은 함께 어울려 잘 살고 있는데, 자신은 들판에서 양들을 상대로 피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맹수와 같은 것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다치고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허무한 인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공허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풍성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니까 황량한 들판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시를 지어서 하나님께 올리며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양치는 목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삶이 세상의 헛된 것들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 살때에 그 삶은 공허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졌습니다.
다윗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11절에,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모든 일에 자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주인이 되셔서 그안에 충만히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살 때에, 그의 삶은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의 능력이 되어주셔서, 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능력 충만희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세상의 헛된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사람은 공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지 마시고, 우리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내 안에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영광돌리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 보십시오. 그 삶은 공허하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풍성한 삶으로 변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어둠속에 있는 자가 아니라, 빛 가운데 있는 이들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지으신 것이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어둠을 비추게 되니까 어둠속에 있던 것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낮에 해를 두시고, 밤에 달과 별을 두셔서 세상을 계속 비추게 하셨습니다.
사람의 삶에도 어둠이 짙게 드려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어둠은 죄의 어둠입입니다.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실체를 보지 못하게 하고 거짓속에서 헤매도록 만듭니다. 죄는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사망으로 끌고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 빛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또한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1:5절에,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빛되신 하나님 없이는 영적인 어둠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어둠을 물리쳐 주시고, 빛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십니다.
우리의 삶이 어둠의 골짜기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할 일은 빛되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빛되신 주님을 늘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그 말씀이 우리의 발의 등이요, 우리의 길이 빛이 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빛된 하나님을 드러내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들은 늘 창조주를 기억하며, 그분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아름답고 좋게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시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은 허사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우리의 시선을 왜곡해서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합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와서 선악과를 따먹어도 괜찮다로 유혹했을 때에, 하와가 그 선악과 나무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아십니까?
창세기 3:6절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 선악과를 따먹었다가 하와는 죄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비록 이 세상이 혼돈 가운데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질서잡힌 평안한 모습을 보여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헛된 것을 좇아 공허한 삶을 살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인 풍요의 삶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죄로 인한 어둠속에 있지만 빛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빛된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이 보기 좋아하시는 새로운 피조물로 우리를 만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음을 깨달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다고 인정받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멋진 작품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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