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SxlUGmRVwDk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사람들과 어울리시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외모도 깔끔하고 매너있고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사람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사람들을 괴롭히며,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 사람과 어울리시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의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아니하는 비호감의 사람들, 그리고 죄인이라고 욕을 먹는 사람들을 관심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그들을 찾아가셔서 당신의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예수님은 레위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레위의 직업은 세리였고, 세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혐오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세리들은 로마제국을 위해서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제국에게 받쳤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세리들은 동족에게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서 자신의 유익을 채웠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세리들을 상종못할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세리들을 멸시했는지, “세리와 창녀와 사마리아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레위가 누구인지 몰라서 실수로 부른 것이 아닙니다. 레위가 세관에 앉아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레위가 사람들에게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는 사람인 것을 아시고 그를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세리 레위가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예수님은 그 잔치에 가셔서 그곳에 온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레위가 베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레위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 잔치에 모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사기꾼, 깡패, 성폭력자와 같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보고서는 예수님과 그 제자이 왜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함께 하시는 것은, 그들이 바로 죄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세리와 죄인들을 부르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죄인된 우리를 부르셔서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이 베푸신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주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죄인들을 부르신 예수님의 관심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는지를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가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죄인을 병든 자에 비유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병든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듯이, 죄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필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병에 걸리게 되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의사일 것입니다. 가벼운 병같은 경우에는 가까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료를 받겠지만, 목숨이 달린 위독한 병은 실력이 좋은 의사를 찾게 됩니다. 내 병을 고칠 의사가 국내에 없다고 여겨지면, 해외에서라도 자신의 병을 고칠 의사를 찾고자 애를 씁니다. 병든 자에게는 치유받기 위한 갈절함이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에 인기있는 의사는 예수님이셨습니다. 병든 사람이 예수님에게만 오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주변에는 앉은뱅이, 나병환자, 말못하는 사람, 혈루증을 앓는 사람,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병든 사람들은 육신적인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궁극적으로 고치고자 하시는 병은 영적인 병입니다. 영적인 병은 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병입니다.
영적으로 병든 사람은, 하나님의 관계가 단절되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내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이땅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짓고 살아가다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어떤 교회에 목사님이 교회에 장례예배가 있으니 함께 예배를 드리자고 광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시지를 않으셨습니다. 설교단 앞에는 관이 놓여있었고, 주위에는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꽃들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설교시간에 목사님은 죽은 사람을 소개할 때에 좋은 점은 말하지 않고, 그 사람이 살면서 지은 죄를 말하면서 그 사람은 그의 죄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가 너무 궁금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은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의 모습을 보려고 관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관속에 있는 죄인을 보려고 관 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관안에는 죽은 사람은 없고, 거울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울은 관을 들여다 보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사람들을 보면서 말합니다. “바로 그 거울에 비치는 사람들이 죄인입니다.”
요한일서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모든 이들이 죄인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선하게 보인다고 할지라도, 죄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2. 그런데 불행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그 죄의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께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께로 와서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겠습니까?
먼저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병중에는 병에 걸리면 이를 즉각 알 수 있는 병이 있습니다. 외상이라든가 독감, 폐렴같은 것들은 병에 걸리게 되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치료를 받고자 합니다. 그런데 별로 증상이 없는 병들도 있습니다. 암과 같은 것은 암에 걸려도 초기에는 증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암에 걸렸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내가 암에 걸린 것을 모른다고 해서 병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분은 몸이 안 좋아도 병원에 가는 것을 꺼려하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병이 있다는 말을 들을까봐 두려워서 아예 의사를 찾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 관한 문제는 그냥 모른채 외면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옥에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죄의 문제로부터 해결받기 위해서는 나를 의롭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큰 은혜인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동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 병고침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된 사람을 용서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았으면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는 죄인이 자신의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죄인은 용서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은 언제나 수요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첫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 참회의 수요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순절을 맞이하는 자세는,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회개함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점점 무감각해집니다. 지난 한 주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생각하시며 회개하신 분이 있으신가요? 없으시다면 여러분은 죄를 짓지않고 지난 한 주간을 지내셨다는 말씀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 입술과 생각으로 지은 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러한 일들이 죄인지를 깨닫지 못했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였을 것입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회개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은혜를 받게 됩니다.
3.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변화됩니다. 과거에 지은 죄에서 돌이켜서 점차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믿음이 성숙할 수록 회개할 것이 더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죄를 더 지어서가 아니라 죄에 대해 더욱 민감해 지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죄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이 죄인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1:15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다.” 고 말합니다. 그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 라고 할 때에 과거에만 괴수였다가 아니라 현재 괴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믿고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죄인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고백은 자신에 대한 절망에서 하는 고백이 아닙니다. 도리어 구제불능인 죄인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로마서 5:20절에,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 말씀은 내가 죄인됨을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이러한 죄를 용서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넘친다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내가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내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그래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없는 죄인은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로마서 3:23-2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이를 회개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에 대해서 무감각 때를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죄로 만역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심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신과 이 땅의 죄를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는 일들이 적어진 것 같습니다.
이 사순절을 지내면서 나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에 대해서 더욱 민감해 질 수 있고, 주님께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용서의 은혜가 충만한 시간들을 보내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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