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66xiEmRhnso
지난 주일에 성령님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오셔서, 그곳에 모인 제자들 각자에게 임하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을 통해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 충만을 받은 열두 제자들은 거리로 뛰쳐 나갔습니다. 그 때는 유대시각으로 제삼시, 오늘날의 시각으로 오전 아홉시였는데, 베드로는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며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베드로는 구약의 요엘 선지자의 예언을 인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메시야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36절에 보면,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강력하게 도전합니다.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성령충만을 받은 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을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께 저지른 죄에 대해서 강력하게 고발했습니다. 너희들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들의 죄를 지적한 것은 그들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40절에 베드로는 말합니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베드로는 그 당시 세대가 패역한 세대였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패역하다라는 것은 “구부러졌다. 부패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서 죄가운데 있는 패역한 세대였습니다. 패역한 세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급한 일은 죄로부터 벗어나서 구원을 받는 일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전에, 그들은 패역한 세대를 두려워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죽일 것을 두려워서 골방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은 후에, 그들은 패역한 세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며 그들 앞에 섰던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셨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의 외침이, 베드로를 통해서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함을 받으라”는 말씀으로 선포되었습니다.
베드로가 말했던 패역한 시대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풍요와 육신의 정욕을 따라서 살아가면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역한 세대에서 어떻게 하면 구원함을 받겠습니까? 베드로는 이러한 질문에 사람들에게 답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패역한 세대에 어떠한 구원의 삶을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먼저, 구원에 이르는 자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애통함이 있는 이들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라는 베드로의 메시지는, 유대인들에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에 근거하자면, 그들은 53일 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었고, 자신들도 예수님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죽이라고 했던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두려움 속에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들은 예수를 못박는 죄를 저질렀지만, 그 죄로부터 어떻게 해결함을 받아야할지는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찌할꼬” 의 질문이 있어야 합니다. 유대인들만 십자가에 예수를 못박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하여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이 패역한 세대는 지금도 하나님께 대적하여 죄를 지음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 구원함에 이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 ‘’어찌할꼬…” 하며 애통해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참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 전쟁으로 야기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환경을 오염시키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죄를 짓는데는 익숙하지만 그 죄를 해결할 만한 능력은 없는 것입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전합니다. 어떻게 구원함을 받을 수 있을지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구원의 비밀은 자신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자신들이 죄인이라고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사해주시는 구세주이심을 비로서 믿었던 것입니다.
이 때에 삼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그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어찌할꼬”의 질문을 일으키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나의 죄의 문제에 대해서 깨달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의 해답은 주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것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문제의 해결자이심을 믿고, 예수님께로 가까이 나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아시고, 그 죄에서 벗어날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인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에 대해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늘 말씀으로 나를 살펴 보며, “어찌할꼬” 애통해 하는 가운데, 주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이 모두 “어찌할꼬?” 하며 죄의 문제를 해결받은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유대교인들에게 잡혀서 공회앞에 섭니다. 공회원들 앞에 선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나타난 이스라엘 조상의 죄에 대해서 고발을 합니다. 그리고 이제 스데반은 담대하게 외칩니다. 7:52-53절에,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스데반은 공회원들을 향해 “너희들이 의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 고 고발했습니다.
스데반의 말은 공회원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말로 그들의 마음이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찔림은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어찌할꼬” 의 애통함과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공회원들은 주도적으로 예수님을 죽도록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해서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자신들의 죄를 애통해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자신들이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도리어 자신들의 죄를 고발하는 스데반을 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해서 모두 ‘어찌할꼬’하며 돌이키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의의 근거가 되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을 의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의의 기준이 자기에게 있으니, 자기는 의롭고 다른 이들은 악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 의에 빠져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자기 기준으로 정죄하고 죄인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지만, 자기 의에 빠진 이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정죄하는 그 상대방을 죄인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내가 아무리 의롭다고 자신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의로울 만한 존재가 아님을 자각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 패역한 세대에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살피기 보다는, 내 생각과 환경에 근거해서 자신의 판단을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생각이 너무 의롭다고 여겨질 때에 그것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은 옳고 다른 이들은 그르다는 생각속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 그것이 나를 패역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의 의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 자신을 살피고 성찰 할 때에, 내 패역함이 드러나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핮당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내가 패역하고 무지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은혜요 구원의 시작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었던 이들은 자신들의 패역함을 깨달았기에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공회원들은 자신의 패역함을 외면했기에 스데반을 죽임으로 다른 죄를 가중시켰던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이 찔리며, “내가 어찌할꼬”하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깨닫게 되고, 참된 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이제 베드로가 ‘어찌할꼬’ 애통해하는 사람들에게 한가지 요구하는 것이 “성령을 받으라” 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패역한 세대를 거룩한 세대로 바꾸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씻음을 받았으면 이제는 구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원의 삶은 패역한 세대에서 벗어나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서도 패역한 세대가운데 있다면, 온전한 구원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의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과거의 패역한 옛사람의 모습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을 받을 때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패역한 세대와 우리의 옛사람으로부터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죄의 본능에 사로 잡혀 패역한 세대의 삶을 살아가기 십상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지역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빌립이 성령충만하여, 병자를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이 때에 그곳에서 마술로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술사 시몬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사마리아성에도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사마리아성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두 사도가 어떤 사람에게 안수를 할 때에 그 사람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술사 시몬이 이를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그가 보기에는 그 모습이 마술과 같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러한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합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사도행전 8:18-19)
시몬은 돈이면 성령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령을 돈을 주고 살고 팔 수 있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시몬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의 옛사람의 생각이 자신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도 사도들과 같이 안수해서 성령을 사람들에게 주게 되면 대단한 인물로 여겨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인격이십니다. 사람이 돈을 주고 팔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님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분을 사모하여 초청해야 합니다. “성령님, 내 안에 오셔서 다스려주십시오. 성령님, 이 패역한 세대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알려주시고, 능력을 주십시오.” 이렇게 간구하면서 겸손히 나아갈 때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삶, 구별된 삶,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함을 받은 핮당한 삶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인 우리를 위하여서 성령님을 준비하시고, 자녀들이 하나님께 성령님을 구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도가 패역한 세대에서, 구별되는데에 꼭 필요하신 분입니다. 성령님 받기를 소망하며 간구함으로 성령님을 받고, 구원받은 자의 거룩한 삶을 우리 모두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령님을 받은 베드로에게 간절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이 패역한 세대에 구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성령님은 그로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셔서, 예수님과 같이, 영혼 구원에 헌신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감동가운데 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
이 패역한 세대가 구원받는 길은 바로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며 “우리가 어찌할꼬” 애통하는 자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찌할꼬의 애통함은 이천년전 유대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로 인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내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임을 깨닫고 애통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죄를 지을 때에 이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받는 것과 같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애통하고 회개하는 자가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님을 받음으로 구원의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은 패역한 세대들과는 말씀으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의 의를 가지고 의롭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진정한 의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는 것입니다. 내가 세운 의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며 살아갈 때에, 진정한 의, 거룩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이 세대가 패역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있습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이 패역한 세대를 거룩한 세대로 변화시키는 영적인 영향력을, 베드로와 같이 세상에 행사할 수 있는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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