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dFsPrk4MoAY
시편 121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올라가며 노래로 부르던 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어도 일년에 세 차례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찾았습니다(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그리고 이 때 사람들은 성전이 있는 시온산을 향해 가면서 이 시를 노래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시를 지은 시인이 1절에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이러한 질문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친구들끼리 서로 도와 가며 지냅니다. 스승과 같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인생이 무엇인지를 배우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만날 때에는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를 질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누구의 도움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라고 묻는 시인은 이내 스스로 대답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말합니다.
사람들마다 의지하는 존재가 다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라고 고백하기 전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 산은 원어로보면 복수로 ‘산들’ 입니다. 시인의 눈에 여러 산들이 보였습니다. 산들은 그가 넘어야 할 어려움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보면서, 그는 하나님이 자신들의 도움이 됨을 고백하며 그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인이 바라보았던 산들에는 이방 우상들을 섬기는 제단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과테말라 선교를 갔을 때에 한 산골 마을을 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을 앞에 커다란 돌산이 있었는데 참 신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보니, 그 산쪽, 곳곳에 하얀 천들이 날리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으로 삼으면서 하얀 천을 걸어놓은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산은 신령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방사람들은 우상에게 도움을 구하는 제사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우상의 도움을 바라는 제단이 있는 산들을 보면서 고백합니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입니다.”
오늘 시는 우리의 참 도움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세상에는 우상과 같은 존재가 나의 도움이 된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람이나 재물을 우상으로 만들고 의지합니다. 어떤 분들은 스스로 우상이 되어, 자신 밖에는 나를 도울 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눈을 들면 우상이 가득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고백도 시인의 고백과 같아야 합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우상으로 만들고 도움을 구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이 만드신 사람과 자연만물들까지 동원하셔서 능히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분임을 믿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를 보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1-2절은 시인이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다.’라고 고백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3-8절까지는 시인의 고백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너를 이렇게 도와 주신다고 답해주는 부분입니다.
오늘 말씀은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나의 도움이라고 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시는지,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어떤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121편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단어가 있습니다. ‘지키다.’라는 단어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십니다.’ 라고 고백할 때에, 사람들은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라고 화답합니다. ‘지키다’는 히브리어는 ‘솨마르’ 이고, ‘가시 울타리를 쳐서 보호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있는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시는 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않도록 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순례를 할 때에, 그 길은 평탄한 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칠고 황량한 광야길을 걸어가야하기도 했고, 산을 지날 때에는 가파른 비탈길과 낭떠러지 옆을 지나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성전으로 가는 길에는 실족할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비탈길로 미끄러져 내리거나, 웅덩이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실족하게 되면, 자신이 가야 할 길에서 이탈하게 됩니다.
믿음생활을 할 때에 실족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이탈하도록 하는 여러가지 시험과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족하지 않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40편 2절에 시인은 '(여호와께서)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고백합니다. 시인의 발이 견고하게 된 비결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발을 반석위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반석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반석위에 있을 때에 실족하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가 실족하지 않도록 든든한 반석이 되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실족하지 않는 비결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딛고 사느냐에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요동하는 사람이나 환경을 디디고 산다면 우리는 실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반석으로 하여 그분을 딛고 의지하며 살아갈 때에, 실족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바람이 제자들이 탄 배를 거스르기 때문에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고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바다위로 발을 내디딥니다. 그럴 때에 베드로의 발이 요동하는 바다물 위에서도 실족하지 않고 견고하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을 거스리는 바람을 보았을 때에, 무서움에 사로 잡히게 되고, 베드로의 발은 이내 바닷물로 빠져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의 실족함은 우리의 믿음을 견고한 반석이신 하나님께 기초하지 못하고, 늘 요동하는 사람들이나 환경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더 크게 보이십니까? 아니면 사람이나 환경, 문제가 더 크게 보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든든한 반석이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온전히 디디고, 그분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에, 우리는 요동치는 물결 위에서도 실족하지 않고, 도리어 믿음의 사람으로 굳건하게 서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실 때에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최근에 항공기 기장이 항공사로부터 해고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비행 도중 잠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30일에 뉴욕에서 로마로 가는 ITA airways 비행기가 10분간 항공 교통 통제소와 교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장과 교신하지 못한 항공교통통제소 (air traffic control)는 테러리스트로 인해 발생한 일일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전투기까지 준비시키며 위험에 대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주기장이나 부기장 중 한 사람은 깨어서 비행상태를 점검해야 하는데, 부조종사가 잠든 동안, 주기장도 잠에 빠진 것입니다. 비록 비행기는 자동 조정으로 문제없이 비행하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지만, 잠으로 인해서 승객들을 위험에 노출시킨 주조종사는 그 책임으로 회사에서 해고가 된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하여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을 지켜 준다하고 하다가 도리어 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피곤하시다고 꾸벅꾸벅 존다는 것을 상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살펴 보시며,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과 어느 신이 참신인지를 놓고서 겨루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참신을 가리기 위해, 제단을 쌓고 그 제단에 불을 내리는 신이 참신이라고 합의합니다. 그리고 먼저 바알선지자들이 바알신을 위해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송아지를 취하여 잡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제물위에 불을 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그런데 응답이 없으니까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놉니다. 그런데 오정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이를 보고 있던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합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엘리야의 조롱소리를 들은 바알선지자들이 흥분해서 더 격렬하게 외칩니다. 그리고 칼과 창으로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흐르게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바알로부터는 어떠한 응답도 없었습니다.
이방 사람들이 의지하는 우상들은 실존하지 않는 허상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 허상을 믿는 사람들의 제단에 불을 내릴 수도 없고, 그들의 삶을 지켜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살펴 보실 뿐만 아니라, 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는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영원토록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기 떄문입니다.
사람들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이웃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고, 도와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도움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옆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배우자나 자녀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당신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라고 고백하며 의지했던 사람이, 어느 날 사라져 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고, 나를 지켜주시는 분임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을, 영원토록 지켜주시며 책임져 주시는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영원히 돕고 지켜주고 싶은 이들이 있으시면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내가 책임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지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영원히 그들을 책임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 뿐만 아니라, 내 사랑하는 사람 또한 영원히 지키시고 책임져 주시는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을 면케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인데, 이 지켜주심은 육신만 아니라 영혼을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육신을 보호받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영혼을 보호받는 것입니다.
요즘 범죄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에,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방범 카메랄를 설치하기도 합니다. 총기 사건이 심각해 지니까,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그 위험에서 보호하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총기를 구입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노력들이 육신은 지켜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는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숱한 악한 일들은, 악으로부터 자신들의 영혼을 지키지 못한 이들로 인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환난이 무엇입니까?
초대 교인들은 환난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환난을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환난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영혼이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시지만, 사탄 마귀도 잠을 자지 않고, 우리의 영혼을 공격하고자 늘 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우리의 영혼을 죄악으로부터 지켜주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안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지켜주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날마다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돕고 지켜주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늘 가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지켜주고자 하는 사람과 멀리 있다면 환난 때에 그를 지켜주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고 지켜주시기 위해 그 누구보다 가까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리 가까이 오셨어도, 우리가 멀리한다면 그분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악이 우리를 틈타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더욱 가까운 관계속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요, 나를 영원히 지켜주시는 분임을 믿는 이들을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늘 하나님을 예배하며,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환난에서 면하게 하시고, 우리를 영혼을 지켜주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가는 순례자와도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은 평탄한 것만은 아닙니다. 광야와 산들도 있어서 위험할 수도 있고, 실족할 만한 것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을 나의 도움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이들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실족하지 않도록 우리의 반석이 되어주십니다. 우리가 졸고 잘 때에도 그분은 늘 깨어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그것도 영원토록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서 늘 우리와 늘 가까이 함께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위험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지켜주셨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도움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다.”라고 고백하며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가면서,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요, 하나님은 나를 지키시는 분이라고 고백하며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우리의 고백 속에,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여, 나를 지켜주시는 분임을 고백하며, 주님과 더욱 친밀해지는 영적 순례의 길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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