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3/2022 - 당신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도행전 3:1-10] - 선교주일 오전예배
https://youtu.be/YKfxG3_Uhho
우리교회는 매년 7월 첫째 주일을 선교주일로 지냅니다. 오늘 선교주일을 맞아 선교에 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받는 것을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주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까?” 사실, 둘 다 좋은 것이겠지요.
보통 어릴 때에는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성장하면서, 내가 줄 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그분들을 돕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시는 분들도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나눔의 기쁨을 아시는 분들입니다.
사도행전 20:35절에 보면, 주는 것이 복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복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은 받음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줌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을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복을 누리라고 여러분을 부르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자신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름의 능력으로 다른 이들을 섬기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지금 시각으로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미문이라는 성전 문앞을 지날 때에 구걸을 하는 사람을 봅니다.
그 구걸하던 사람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날마다 성전 미문앞에 옮겨져서, 그곳에 앉아 구걸을 했습니다. 성전 들어가는 문의 앞은 구걸하기에는 딱 좋은 곳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도움을 원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있으십니다. 많은 차가 몰리는 신호등 앞, 그리고 교회도 도움을 요청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그 당시에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문은,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또한 인심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렇게 앉은뱅이가 앉아있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두사람을 보고 앉은뱅이는 구걸을 합니다.
"형제들이여, 저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불쌍히 보시고 좀 도와주세요."
그때 그걸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 , 아마 그 구걸하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의 얼굴도 보지 않고 고개숙인채로 구걸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를 향해서 베드로는 ‘우리를 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구걸하던 사람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기대하며, 고개를 들어 두 사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작은 것을 도움이라도 받는 이에게는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작년 7월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어려운 이웃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를 의논하던 중, 다운타운에 계신 노숙자분들을 섬기기로 했습니다. 노숙자분들은 가장 최소한의 것들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입니다. 그런분들에게 음식을 드리는 사역을 시작하는데, 매 달 2, 4번째 토요일에 음식을 가지고 나갑니다. 우리 선교팀들이 가면, 이미 그 차를 알아보고서 멀리서 음식을 받으시기 위해서 오십니다. 작은 음식이지만, 어떤 분들에게는 그것이 하루의 끼니가 되는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나의 작은 섬김이, 가진 것이 별로없는 분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가 ‘우리를 보라’는 말을 들고, 베드로가 자신의 필요를 채워 줄 것을 기대하며 베드로를 바라봅니다.
그 때 베드로가 그를 보면서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이 말을 들은 구걸하는 사람이 얼마나 실망이 되겠습니까? 자기를 보라고 하더니, 자신에게 줄 은과 금은 없다는 것입니다. 곧 줄 돈이 없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김이 빠지겠습니까?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이어서 말합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벌떡 일어나는 것입니다. 평생 일어나지 못하고 앉아서 살았던 그가 일어나서 걷고 뛰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비록 그가 요구하는 은과 금은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앉은뱅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것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어떤 이름보다 귀하고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권세를 가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평생 앉아서 지내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능력의 이름이었습니다.
사도들이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쳤을 때에, 자신들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선포했을 때에 병든 자가 치유받으며, 귀신들이 그 이름 앞에 떨며 도망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신 것은 단순히 육신의 병을 고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사람의 영혼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의 이름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이를 명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이 세상에 어떤 대단한 사람이라도 사람들을 죽음에서 영생으로 이끌어 주실 수 있는 분은 없으십니다. 여러분들의 휴대폰에 기록된 수 많은 연락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도 내 영혼을 구원해 줄 이름이 없습니다. 이 나라의 최고의 권세자인 대통령도 사람들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나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의 이름인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의 이름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거져 주셨습니다.
그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이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기뻐 뛰며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동안 그는 성전미문에 앉았지만, 성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성전은 자신의 생계를 해결하고자 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는 성전 문에 앉아 평생 앉은뱅이로 살게하신 하나님을 원망하며 있었을른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고, 이제 그는 하나님을 들고 뛰며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직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와 같이 주저앉아 있는지, 아니면 기뻐하며 뛰며 성전에 들어가 예배하는 자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멀쩡한데, 영적으로는 아직도 예배당 문 앞에 주저앉아 있는 앉은뱅이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였다면, 우리는 분명, 교회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쁨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2)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를 경험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다른 이들에게 주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말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주어졌고, 이를 네게 준다고 했습니다
성도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입니다. 그의 이름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들에게 누려집니다. 그의 이름으로 믿고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의 이름을 가진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그 이름을 주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준다.” 고 했습니다. 이것이 선교입니다.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구원의 능력을,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다른 이들에게 잘 주며 살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다른 복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사실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평범한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자신들은 능력이 없지만, 그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며, 그 이름으로 죽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주신 동일한 이름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우리는 비록 은과 금은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능력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이름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는 선교사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이름 예수, 그 이름의 권세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한나님의 응답받는 권세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주님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 이름을 나눔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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