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tFHR53khnE
시편 34편은 다윗의 시인데,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각오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하나님을 송축하고, 찬양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영혼이 하나님을 자랑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격려합니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십시다.” 다윗은 하나님을 노래하고, 그를 자랑하는데 있어서 진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여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마다 그 태도는 차이가 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가사 하나 하나에 감동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지만 특별한 감동이나 열심없이 찬양하기도 합니다.
다윗과 같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 입니까?
8절에 보면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라고 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지를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은 선하신 분임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런데 말로 들어 아는 것과 직접 맛보아 아는 것은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한국 TV 방송 중에, 전국에 음식점을 찾아다니면서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출연자들은 주문한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의 맛이 어떠한지를 말로, 표정으로 설명을 합니다. 그분들이 먹는 모습과 설명을 들으면 저절로 입에 침이 고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잘 설명해 주더라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실, 그 음식을 직접 먹어 맛을 보아야 그 음식의 맛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떠한 분으로 경험하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다른 사람이 경험한 하나님을 들어 아는 것과, 실제로 내가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아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라고 해도, 다윗과 같이 찬양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 다윗은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참 선하시다는 것을 맛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맛이 나는 분이십니까? 하나님이 좀 쓰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까다롭게 여겨지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제대로 된 맛은 선하신 맛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 본다면, 우리는 더욱 주님을 찬양하며 자랑하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다윗이 맛보았던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수 있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가 언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이 있습니다. 오늘 시에 소제목이 있는데,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위기에 빠질 때가 있었는데, 이 때 미친척 연기를 해서 그 위기를 모면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 시대 때에,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서로 적대국으로 전쟁이 잦을 때였습니다. 그 때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장군인 거인 골리앗을 물멧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로 다윗은 명성을 얻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치켜 올렸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왕보다 다윗을 더 높였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다윗의 업적을 더 높게 여겼습니다. 다윗의 인기가 높아지게 되니까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위기를 느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여겼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로 작정을 했고, 다윗은 사울왕의 추격을 피해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과 군대가 자신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니 다윗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래서 그가 결심한 것은 이스라엘의 적국인 블레셋 땅으로 도망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울이 거기까지는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블레셋으로 도망갔는지 그 심정을 알만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블레셋으로 도망갔다가 더 큰 두려움에 빠집니다.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골리앗을 죽인 다윗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살고자 아기스왕에게로 왔는데, 도리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다윗은 그곳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생각해 냅니다. 미친체 합니다. 자신이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아기스왕과 그 신하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고 미치광이 흉내를 냅니다. 아기스왕이 그 미친체하는 다윗을 보고 어떻게 합니까?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며, 다윗을 쫓아버립니다. 그래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무사히 도망나와 다시 이스라엘 땅으로 오게 됩니다.
그 일을 통해서 다윗은 하나님이 진정한 피난처임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기 위해서 가드왕 아기스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도 그에게는 피난처가 되지 못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그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피난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에 안전한 피난처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인생에서 환난이 있을 때에 무엇을 피난처로 삼습니까? 다윗과 같이 자기를 보호해 줄만한 사람을 찾는 분도 계십니다. 어떤 분은 재물이나 권력이 자신을 환난에서 보호해 줄 것이라고 여기고 이를 추구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정한 도움은 사람이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를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피했던 자만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피하지 못함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로 피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환난에서 구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의지함을 뜻합니다.
다윗은 4절에 고백하기를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6절에는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아기스왕으로부터 벗어나 구원을 받았던 것은 다윗의 미친 연기력 때문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가드왕 앞에서 미친체하기 전에,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간절히 간구했던 것입니다. 다윗이 미친체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가 구원받을 것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가드왕에게 있어서 미친 다윗을 쫓아 버리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블레셋에게 대적했던 일을 이유로 다윗을 죽이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드왕은 다윗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보기 싫다고 쫓아버렸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이것을 우연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에 이것을 우연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자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아는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간구하지 않았다면 다윗은 자신이 가드왕으로부터 도망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미친 연기를 끝내주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자기의 연기에 가드왕과 그 신하들이 깜빡 속았다며 자신이 한 것처럼 이야기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이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께로 피할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던지 안하던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윗과 같이 하나님께 간구하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으며 하나님께로 피하십니까? 보통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 때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내 삶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보통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평상시에는 하나님이 베푸신 선하심에 익숙해져서 이를 깨닫지 못하며 삽니다.
그런데 위기 때에 도리어 그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선하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의 위기를 만나며, 인생의 쓴 맛을 볼 때에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심을 맛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간구함으로 하나님께로 피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그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15절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신다.” 는 것입니다.
그리고 19절과 같이 “의인은 고난이 많지만,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 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것이 우리의 죄때문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 만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의롭게 살고자 할 때에도 고난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성장과 연단을 주시고자 고난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다윗의 고난은 자신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고, 사울왕 이후의 왕으로 이미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입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할 때에,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고난을 받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신을 그냥 두지 않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계시고, 자신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만 보시고, 의로운 사람의 부르짖음만을 들으십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뿐만 아니라, 악인들의 행위도 보시고, 악인들이 하는 말도 듣고 계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을 살펴 보시고,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는 것은, 그들을 돌보시고,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들을 기뻐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보시고, 그들의 말을 들으시는 것은, 그들의 악함에 보응하시기 위함입니다. 21절에,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쓴 맛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 받는 선하심을 맛보기 위해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의 말씀으로 의롭게 살아가는 자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다윗과 같이 손해도 보고,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의롭게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시편 139:1절에 시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시인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시인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하다고 하지만,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직접 맛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맛 평가만 듣기만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맛을 보고 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경험이 근거가 되어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예배하며 찬양하며 자랑하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하십니다. 그런데 너무 일상적이라서 이를 느끼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감각하고 찬양하며 자랑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은 다윗과 같이, 환난 때에 맛보게 되기도 합니다. 환난 때에 하나님께로 피난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구원의 맛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니, 환난과 고난을 당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여 주시려고 하는구나” 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의지하며 피난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는 사람이고, 그 맛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찬양하고, 자랑하며 간증하는 사람입니다. 때로 환난의 쓴 환경을 경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늘 간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