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7btrFbI7sI
우리는 살아갈 때에, 늘 마음이 기쁘고 좋았으면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바람과는 다르게 마음속에 먹구름이 몰려 올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에 내 마음속에 걱정이 자리잡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괴롭힐 때에 마음속에 슬픔이 쌓이게 됩니다.
그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 있으면 삶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병이 들게 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몸과 정신에 병이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마음의 슬픔, 괴로움 속에 붙잡혀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음에 슬픔이 있는 여자가 나옵니다. 한나입니다. 그녀는 엘리선지자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 라고 소개합니다. 그 정도로 그녀는 마음에 슬픔, 괴로움이 가득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고 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슬픔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슬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들이 마음에 슬픔을 가지고, 불행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슬픔을 이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에 슬픔 가운데 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마음이 슬플 때 어떻게 신앙적으로 반응할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우리의 마음속에 슬픔으로 가득차게 되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합니다.
한나가 자신을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입니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오늘 말씀을 보면, 한나의 마음만 슬픈 것이 아닙니다. 한나의 적수인 ‘브닌나’도 마음에 슬픔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나와 브닌나는 엘가나 라는 남자의 아내들입니다.
그런데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힙니다. 한나는 브닌나의 괴롭힘으로 인해 울며, 음식을 먹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브닌나가 이유없이 한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닙니다.
브닌나의 마음에도 슬픔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 엘가나가 자기보다 한나를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브닌나의 마음에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 하는 한나를 괴롭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두 여인의 마음에 슬픔이 있으니까 문제는 그녀들에게 있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여인에게 기쁨이 될 만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브닌나에게 한나에게는 없는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한나가 자식이 없어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라고 말할 정도로 한나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둘은 그들에게 있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찰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간과하기 쉽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슬픔이 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슬픔이 아니라, 은혜로 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마음속에 슬픔이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어서, 괴로움 가운데 그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세번씩이나 기도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자신의 몸의 가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초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럴 때에 가시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슬픔이 찾아올 때에, 이에 우리의 시선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깨닫고, 그로 인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기쁨이 슬픔으로 인해 밀려 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슬픔이 가득할 때에, 다른 사람의 슬픔을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브닌나는 자신이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한나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한나를 공격합니다. 그녀는 한나에게 자녀가 없는 것을 공격합니다.
당시에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자녀가 없다면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한나에가 자녀가 없다는 것은 커다란 약점이요, 아픔이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자신의 슬픈 마음을 달래려고, 한나의 상처를 더욱 건드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슬픔을 다른 사람을 괴롭힘으로 위로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너무 자기 자신의 슬픔에 빠져 있으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자신만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키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한나와 브닌나를 보면서 누구에게 동정이 가십니까? 괴롭힘을 당하는 한나의 모습이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브닌나의 모습도 있습니다. 내 슬픔에 잠겨, 다른 이의 슬픔을 내 공격의 내용으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아픔과 상처에 너무 파묻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나를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을 상하게 하고, 이를 정당화시키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가지고 격분시키는 자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화평케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셨습니다. 브닌나가 한나의 아픔을 이해하고, 이를 위로하여 주었다면, 비록 브닌나가 남편의 사랑은 많이 못 받았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더욱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2. 우리의 마음속에 슬픔이 있을 때에, 우리가 찾아야 분은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브닌나는 마음의 슬픔이 있을 때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한나를 찾아가 괴롭힙니다. 그런데 한나는 달랐습니다. 브닌나가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어도, 브닌나에게 복수한답시고, “너가 이렇게 못되게 구니까 남편에게 사랑도 못받지!” 라고 브닌나를 격분시키지 않습니다.
한나는 그 슬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그녀는 실로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의 전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한나는 통곡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을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고통을 보시고, 기억하셔서 아들을 주시면, 평생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자식을 평생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이없는 것으로 인해 조롱당하고 괴롭힘을 당했으면, 아이를 낳아서 자신의 품에서 기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이 한번 낳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엘리 제사장이 봅니다. 그런데 한나가 기도할 때에 소리는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며, 속으로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서, 엘리제사장은 한나가 술에 취한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한나에게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고 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한나가 제사장에게 자기의 분노를 퍼 부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기는 너무 괴로워서 통곡하며 기도하는데, 이를 술취한 것으로 책망하는 제사장을 향해, “당신은 제사장이면서 기도하는 건지 술취한건지 이 것도 분간 못해요?” 그런데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형편을 말합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입니다.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라고 말합니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이 말을 하는 한나의 심정이 얼마나 괴롭고 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괴로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한나는 자신의 이 슬픈 마음을 헤아리고 해결할 자가 자신의 남편이나, 브닌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자신의 이러한 아픔과 원통함을 해결해 주실 분이라고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의 주권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어떤 슬픔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할 때에, 그 문제의 해결 또한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신을 못하게 하셨다면, 하나님께서 임신을 하게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슬픔을 주셨다며 또한 그 슬픔을 거두실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병을 주셨다면, 그 병을 고치는 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한나의 마음에 슬픔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슬플 때는, 하나님을 만나는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마음이 슬픔이 있을 때에, 도리어 하나님과 떨어져서, 세상적으로 그 슬픔과 아픔을 위로받고 해결받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 나올 때에 주님께서 그 상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치유하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엘리가 한나의 말을 듣고, 그녀가 얼마나 괴로움속에 있었는지를 알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녀에게 말합니다. “평안히 가라. 네 기도하고 구한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기를 원한다.”
그리고 한나는 이에 답하기를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나가 여호와께 기도한 이후에,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한나의 얼굴에 근심 빛이 없어진 것은,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한나나 엘리 제사장이나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아이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응답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브닌나가 변하여서 한나를 선하게 대해 줄 것이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상황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린 것입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슬픔으로부터 벗어났던 것입니다.
지금 한나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은 브닌나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브닌나가 한나의 마음을 가득 차지하고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브닌나를 쫓아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하나님으로 채울 때에, 그녀는 마음의 슬픔과 근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브닌나의 조롱과 저주의 소리로 인해서 괴로웠는데 한나는 그것으로 인해 더 이상 근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브닌나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든지, 한나는 브닌나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도록 자기 자신도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브닌나와의 관계도, 그리고 자녀의 문제도 한나는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근심과 슬픔은, 근심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사라질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있는 슬픔과 근심의 모든 짐들을 하나님께 맡겨드림으로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내가 근심거리를 짊어지고 갔다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하시는데로 맡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를 붙잡고 있는 슬픔과 근심으로부터 놓임 받게 되고, 주님의 평안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안에서도 내가 노력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내 마음을 짓누르는 일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안에 기도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으십니까? 그런데도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끄실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무력한 것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님께 그 모든 일들을 맡겨 드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의 삶속에 염려와 걱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며 간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평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평강은 염려거리가 해결되어져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께 나아올 때 염려하지 말고 오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계획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은 늘 기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때로 우리에게 슬픈 일을 만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한나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음으로 적수로부터 괴로힘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슬픈 일이 생길 때에, 우리는 그 슬픔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슬픔이 찾아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기쁨이 점령당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슬픔이 있을 때에, 슬픔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기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슬픔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앞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염려와 걱정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내 슬픔과 염려를 맡겨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있는 브닌나와 같은 존재는 누구입니까? 브닌나와 같은 존재가 나타날 때에, 우리는 브닌나가 내 마음을 사로 잡고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다른 사람의 브닌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는 브닌나가 아니라 한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나도 다른 사람의 브닌나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아픔때문에 다른 이들의 아픔을 보지 못하고, 내 슬픔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브닌나가 들어올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도록,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브닌나도 주께 맡기고, 자기 자신도 주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간구하며,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에 모실 때에, 하나님께서 평강을 주십니다. 마음의 슬픔과 괴로움의 때에, 우리를 평강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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