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4/2022 -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으라 [사도행전 2:36-41]
https://youtu.be/sQ9aqxbMsl8
다음 주일은 우리교회 창립 41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에서는 그 전 주간을 ‘회개와 용서의 주간’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우리를 당신의 몸된 교회로 부르시고 인도하신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게 행했던 일들을 회개하고, 서로의 잘못을 용서한 가운데, 정결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창립감사 예배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회개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
오늘 말씀을 보면, 초대교회에 굉장한 부흥이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에 3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부흥은, 단순히 양적인 성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흥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은 회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이 때 베드로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도전했습니다. “당신들이 죽인 예수는,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로 인해 찔림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동조하고 가담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니다.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그럴 때에 베드로는 말합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 위해서는, 회개를 통한 죄사함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회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함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저는 그 삼천명이나 되는 불신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에 너무 감격이 됩니다.
초대 교회의 부흥은 죄없는 의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비록 죄가 있지만, 하나님께 자신들의 죄를 회개함으로 죄로부터 정결하게 받은 이들이 초대교회의 부흥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웨슬리는 회개는 종교의 현관이요, 믿음은 종교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갈 때에 현관을 훌쩍 뛰어넘어, 곧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회개의 현관(Porch) 를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가 회개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 부흥하고 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회개의 중요성을 알고, 또한 회개를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정결함과 부흥이 있기를 먼저 축원합니다.
1. 여러분, 회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죄를 깨닫는 자가 회개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 이를 잘 의식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싸이코패스’ 라고 하는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분들은 죄를 저질러도 죄책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악한 것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 분들은 회개라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때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죄에 대한 무지함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십자가 위에서 7개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누가복음 23:34절에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로마 사람들은, 죄없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죽이는 끔찍한 죄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죄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이스라엘을 어지럽히고 위험하게 만드는 죄인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은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회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죄를 깨달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의 성장은 선하고 의로운 자들이 모여져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며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가담한 죄인들로 초대교회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을 당신의 거룩한 몸인 교회를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한 교인이 예수님을 전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럴만한 죄를 짓지 않았어요. 그리고 내가 언제 나를 위해서 죽어달라고 했나요?”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죄인이라고 말을 듣는 것은 참 불편한 진실입니다. 그런데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회개를 가지고 왔고, 회개를 통하여 정결케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까?
아니라면 죄가 없으셔서 입니까? 아니면 모르거나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아서 입니까? 회개는 우리를 영적으로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회개할 때에 더 큰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보면, 1907년에 한국을 변화시킨 큰 부흥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흥운동의 시작은 1907년에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있었던 동계 사경회로부터 시작됩니다. 사경회는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고, 기도하는 집회를 말합니다.
이 사경회는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원래 사경회를 하면 사람들이 말씀에 은혜도 받고, 성령의 역사도 일어나고 그래야 하는데, 그 때의 사경회는 좀 잠잠했었나 봅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서 사경회는 마지막 저녁 집회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녁 집회 이후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남아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새벽 2시경, 600명 정도의 사람이 남아서 기도하고 있을 때에, 그 교회의 장로인 길선주 장로님이 사람들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대뜸 ‘일년 전 세상을 떠나 친구가 임종시, 자신의 가족을 위하여 재산을 대신 정리해달라고 돈을 맡겼는데 그 돈을 제 맘대로 썼습니다.’ 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며 회개했습니다. 길선주 장로님의 회개를 들은 사람들은 그를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은 죄를 하나씩 하나씩 고백하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여인은, 청일 전쟁 때 자신의 아이를 죽였다며 회개했습니다. 한 남자는 불치병에 걸려 아파하는 아내에게 매일 술만 마시며 저주를 퍼부은 일을 회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첩을 두 명이나 두고 가정을 외면했던 것을 고백하며 회개했습니다. 선교사의 돈을 훔친 여자가 그 뒤를 이어 회개했습니다. 기도회는 회개로 눈물 바다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 회개를 목격한 여선교사는 "마치 감옥의 지붕을 여는 것과 같았다. 살인, 강간 등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죄가 고백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회개는 말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들은 그 사람을 찾아가서 용서를 빌고, 재물을 절도한 사람은 이를 갚았습니다. 이 집회로 인해 평양 전체에 부흥 운동이 일어났고, 이 부흥운동은 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단순히 교회를 부흥케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의 영적인 변화와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에게 “전도가 부흥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빌리그래함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부흥이 올 때, 우리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두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첫번째는, ‘아, 하나님은 거룩하시구나”하는 것과, 두번째는 “아,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부흥은 죄인된 나를 발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잠언 1:23절,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에게 부어주며…”라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에 있어서 회개는 선택이 아닙니다. 나의 죄를 끄집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회개를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정결케 되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부어진바 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우리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에스겔 33:11절에, 하나님은 죄가운데 있는 남유다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사람들은 어떤 사람에게 죄나 허물이 있을 때에 그것을 지적하며 정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정의로운 일인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에 그것을 정죄하고 벌하기 보다는, 죄인들이 회개할 때에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죄를 지었는데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러 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근심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로 일컬어지지만, 크게 한번 사고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부하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를 간음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내를 탐하여 간음한 것도 큰 죄인인데, 그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녀의 남편인 우리아 장군을 전쟁터에서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안타까운 것은 다윗이 이러한 큰 죄를 지어 놓고도 회개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그때서야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께 범죄했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회개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죄를 지었을 때에 이를 깨닫고, 빨리 하나님께 오기를 원하셨습니다. 언제든지 용서해 주시기를 준비하고 계시는데, 문제는 다윗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를 품고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죄가 자리잡게 되면, 하나님의 다스림이 아니라, 죄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왠지 아십니까? 회개는 내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겠다는 결단이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죄의 다스림을 받았는데 이를 회개하고, 이제는 죄가 아닌 하나님의 지배를 받겠다고 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진정한 회개는 삶의 변화를 동반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행했던 악한 일을 단절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에게 있는 죄의 모습을 살피고, 이를 회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은혜베푸시기를 원하는데, 내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아 그 은혜를 받지 못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 가정안에도 회개해야 할 죄의 모습들이 있지 않습니까? 가족안에서 서로 무시하는 말이 죄라고 여기지 않으셨나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성공과 부요함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았나요? 교회에서는 거룩해 보이지만 집에서는 내 맘대로 가지는 않습니까?
교회에서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고 하면서, 내가 교회의 머리가 되려고 하는 일은 없으십니까?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하면서, 말로만 그런 것은 아닙니까?
우리 주님께 우리의 죄를 가지고 용서를 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 때에 세상의 거짓된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우리를 주장해 주십니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밧세바를 간음한 사건과 관련해서 지은 시입니다. 시편 51:10절에, 밧세바 사건이후에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은 자신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해 달라고 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언제든지 죄로 더러워질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정직하고 싶지만, 죄를 짓고도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속이는 거짓된 영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음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간절히 구합니다. “주님, 나를 쫓아내지 마시고, 성령을 거두지 말아 주십시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가 크지만,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는 통회하는 자를 멸시치 않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17절에,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만찬을 할 때에, 회개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회개 후 이어지는 순서는 용서의 확증시간입니다. 저는 이 시간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십니다.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찬송가 ‘죄짐맡은 우리 구주’ 1절 뒷부분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께 고함없는 고로 복을 얻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복을 주시지 않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죄에 대해서 회개하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 애통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형벌이 변하여 복이 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살았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회개는 더 이상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려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려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에 불순종하며 살았던 것들이 있습니까? 그것을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우리의 마음을 죄로부터 정결하게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정직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머물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 세상에 죄가 관영하여서 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진 것이 사실입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죄인지도 모를 때도 많습니다. 이럴 때에 죄에 대해 민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이 머무시고 통치하시는 정결한 가정, 교회, 성도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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