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m89qKZqMic
여러분은 누군가를 존경할 때 그 마음을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아마도, 존경하는 분들 앞에서는,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그 분께 집중하며, 그 분을 높이는 말과 행동을 할 것입니다.
지난 9월에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그녀의 장례식이 전 세계의 관심이 되었습니다. 여왕이 돌아가신 후,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방문하여 애도와 경의를 표했고, 사람들은 그녀의 살아있을 때의 업적을 칭찬하며 그녀를 높였습니다. 모든 장례 사용된 도구들은 정성스럽고 아름답게 제작되었고, 일정을 담당한 사람들도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정성껏 일들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9월 19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예배가 드려졌고, 사람들은 그녀를 하나님의 손에 보내드렸습니다. 그녀의 장례를 보면, 여왕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위대한 삶을 살게 하시고 데리고 가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정말로 높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사람들이 가장 존중하고 높여드려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그 만드신 모든 것들을 주관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온 우주에 하나님보다 크고 위대하신 분은 없으십니다.
그런데 위대하신 하나님의 존귀하심을 드러내는 것이 제사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세우게 하시고, 그곳에 임재하셔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제사를 통해서 죄인 된 사람의 죄가 사함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행하신 존귀한 일들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구약에 제사가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예배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이 존귀하신 분임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히 여기며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존귀함을 드러내야 할 제사 자리에서, 도리어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 엘리의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로 인해 일어났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들은 아버지를 이어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민수기 18:7절에,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과 그 자손들에게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하나님을 존중하며 행해야 할 제사를 함부로 대했던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앞에 심히 크다고 했습니다. 그 죄가 적당히 큰 것도 아니리고 심히 크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지 않고 행해지는 제사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가 되고 심히 큰 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아들의 죄를 보시고,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서 하시는 말씀이 2: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예배의 자리는 나의 하나님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며 예배하는 자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아들은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존중히 여김을 받을 수 있는 제사인데, 그들은 제사를 멸시함으로 하나님의 경멸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의 교회들보다 더 많은 예배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제사장의 직분을 주셨는데, 모든 예배들이 하나님을 존중히 여김으로 드려지고, 하나님의 존중히 여김을 받는 예배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어떤 예배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시는 예배자가 될 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을 존중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12절에 엘리의 아들들을 말할 때에이렇게 소개합니다.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제사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라는 말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들어 본 적도 없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해서 소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라고 하나님을 잘 알아서 제사장이 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 보니 자신의 아버지가 제사장이어서 그들도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그들이 좀 지혜로웠다면, 그들을 제사장으로 세우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더 알고자 했을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하나님을 소홀하게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별로 상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제사를 드리면서 관심했던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제사를 드린 다음에 자기에게 올 몫인 고기였습니다.
한국 속담에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꼭 그러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대부분의 제사는 제물을 제단에 올려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런데 화목제는 좀 달랐습니다. 화목제물인 짐승을 하나님께 드리고, 고기의 일정 부분을 제사장과 제물을 바친 사람과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제사장의 사환이 냄비나 솥에 삶아지고 있는 고기를 갈고리로 꺼내게 되고, 그 삶은 고기를 제사장과 제물을 가지고 온 사람과 함께 먹게 됩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방법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은 사환을 시켜서 자신이 취할 몫을 미리 가져오도록 시켰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두 아들들이 원하는 고기는,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상태인 생고기였습니다. 그것도 기름을 제거하지 않은 고기를 가져오도록 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드리는 자가 기름이 있는 생고기를 주려하지 않아도 이를 강제로 빼앗아 오도록 시켰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제정하신 제사법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제사를 드릴 때에 꼭 태워서 하나님께 드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기름입니다. 그런데 두 아들들은 기름있는 생고기를 먹겠다고 하나님께 드려야 할 부분을 자신들이 취한 것입니다.
그런데 홉니와 비느하스는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심각한 죄인지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어떻게 반응하시는 분인지를 전혀 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배자는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이 젯밥에 더욱 관심했듯이, 예배드리면서 하나님께는 별로 신경쓰지도 않고, 다른 엉뚱한 것에 신경쓰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오늘 점심은 무엇일까?” “빨리 예배드리고 집에서 못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리고 여러가지 세상적인 생각에 빠져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존중을 보여드리는 예배자의 모습은 아닌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에는 늘 하나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찬양을 할 때에도 내가 하나님을 인식하며 찬양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기도를 할 때도 내가 하나님을 인식하며 기도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봉사를 할 때에도, 이 봉사가 하나님을 향한 것임을 늘 상기하며 정성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엉뚱한 곳에 가 있어도 이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임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소홀하게 예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자꾸 소홀하게 생각할 때에,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을 자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앎으로, 하나님께서 존귀케 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을 존중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평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은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사법을 무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두 아들들의 평소의 삶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22절에,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제사장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음란한 일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제사장이라는 명목으로 그러한 악한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차라리 그들이 제사장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악한 일을 범할 수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사하는 존귀한 직분으로, 악을 행하는데 사용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위를 아는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그들에게 심각하게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며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존귀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음행하고 불의를 행한 더러운 상태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고, 하나님의 눈 밖에 나면 그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 4:5절에는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의의 제사는, 성막이나 예배당에서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통해서 드려지는 의로운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제사가 드려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나옵니다. 둘이 동시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양을 바친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곡식을 바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고 안받고는 제물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느냐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기 전에 이미 그의 의로운 삶을 보시고 그를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기 전에 이미 가인의 불의한 삶을 보시고, 그가 드리는 제사도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사에서 제물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내 삶이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나의 예배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그들이 어떤 예배를 드려야 할지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하나님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위해서 사용되는 산 제물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주간 동안 여러분은 하나님을 존귀케 해드리기 위해서 어떠한 삶을 사셨습니까?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존중히 하는 삶을 사셨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를 존중히 여기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소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원치아니하시는 삶을 살았다면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이 경멸하시는 예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특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우리의 마음이 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존귀하게 여겨주십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예배의 전부입니다 하나님만이 존귀하게 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과 같이,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유익하게 할 생고기에 관심하며, 하나님을 무시하는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경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예배함으로, 우리도 하나님께 존중히 여김받는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 이미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예배를 마치고 세상에 나가셔서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며 생활하시기를 바라며, 하나님께 존중히 여김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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