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MTbAAlhqKEQ
오늘 말씀을 보면, 한 여인이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옵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사는 과부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온 이유는 그녀의 죽은 남편이 엘리사 선지자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죽은 그녀의 남편은 신학생이나 목회한지 얼마 안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를 찾아 온 여인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나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줄을 당신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합니다.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녀는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곤핍으로 인해 오는 극심한 고통으로 살길이 막막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자신에게 닥친 이 고난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죽은 남편을 소개하기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녀의 남편이 죽은 것과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길래 이 여인은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요? 여인은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롭게 살았는데, 왜 남편이 죽고, 그 남편의 죽음으로 남은 가족들이 고통을 받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들들이 종으로 팔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녀가 엘리사를 향해서 부르짖었던 말들은 하나님을 향한 부르짖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시편 115: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그녀의 도움이 안 되었고, 그 어려움에서 피할 방패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 어려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여인에게 왜 이러한 어려움을 허락하셨을까요? 절망한 그녀의 모습이 때로 우리의 모습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과 고통들의 일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왜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냐고 질문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여인을 그냥 방치하시지 않고, 그녀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십니다. 고통중에 있는 그 여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이러한 고난을 주시고, 이를 통해서 어떻게 하고자 하시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하십니다.
그 여인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빚진 것을 갚지 못해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가는 것입니다. 아들들이 종으로 팔려갈 정도의 감당하지 못할 빚이라면 이미 남편이 살아있을 때부터 진 빚 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가 선지자의 제자로서 경건한 삶을 살았지만 생계가 어려워 빚을 져야만 했던 것입니다. 이제 과부로서 남겨진 그 여인이 그 빚을 갚기 위해서 얼마나 애썼을지 상상이 됩니다. 아들들이 종으로 팔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돈벌이가 될 만한 일들을 다 했을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그녀에게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에, 기름 한병 밖에 없다는 그녀의 대답을 봐서, 빚을 갚기 위해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처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 빚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너무 가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녀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를 찾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하고자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인의 이야기를 들은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묻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라고 말합니다. 그녀가 뭘 필요로 하는지를 몰라서 엘리사가 하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빚갚을 돈이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엘리사가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자신이 주겠다고 그 질문을 한 것입니까? 아닐 것입니다.
엘리사가 그렇게 묻는 것은, 자신을 그녀응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에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움도 아시고, 우리의 필요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 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리고 이를 믿는 이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함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다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능력을 믿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여인에게 어려움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와 부르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케 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과 어려움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더욱 이끌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2. 그 여인의 형편을 들은 엘리사가 묻습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여인은 대답합니다.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그 말을 들은 엘리사는 여인에게 이웃에게 빈그릇을 빌려서 오는데, 조금 빌리지 말고 할 수 있는대로 많이 빌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왜 그릇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기름이 조금 남아있는 그 기름병으로,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 말을 들었다면, 빈그릇을 얼마나 가지고 오시겠습니까? 온 동네 방네 다니면서 빈 그릇을 잔뜩 가지고 오겠습니까? 아니면 적당하게 가지고 오겠습니까?
만약 많이 가져 오신다는 분이 있다면 그 이유는 엘리사의 말을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빈그릇을 가져오는데 크게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웃에게 빈그릇을 빌리는 것이 얼마나 눈치보이겠습니까? 적당하게 몇개 빌려서 가져갔을 것입니다.
그 여인과 아들들이 가지고 온 빈그릇의 숫자는 그들의 믿음의 분량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빈그릇을 기름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기에 그들은 이웃에게서 가능한 많은 양의 빈그릇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그릇을 기름으로 채우실 수 있는 풍성하신 분이심을 그들은 믿고 많은 그릇을 빌려 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풍성하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믿음의 분량이 작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시고자 하셔도 이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이든지 하실 수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풍성하심을 보여주시고자 하실 때에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엘리사는 그녀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 여인은 그녀가 말합니다.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여인은 자신이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촛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다릅니다. 엘리사는 그녀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기름담긴 그릇에 관심합니다. 그 기름 조금있는 병으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셨습니다. 비록 별볼일 없는 기름 병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손에 들려졌을 때에 빈그릇들을 기름으로 가득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별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학식이 별로 없고, 건강하지도 못하고, 재물도 별로, 인맥도 별로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게 되면 기적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는 것에 촛점하며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하나님게서 쓰시고자 하나님께 내 자신을 맡겨 드려야 합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오천 명의 사람을 먹이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은 음식은 어린 아이가 가지고 온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아이 혼자 먹을 만한 아주 적은 음식이지만, 그것이 예수님의 손에 쥐어졌을 때에 오천명을 먹이고도, 그 음식 부스러기가 열두광주리가 되는 풍성한 음식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보잘것없는 인생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사람들이 별로 알아주지도 않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십니까?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쓰시도록 나를 맡겨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써주신다면 그것만으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사용하실 만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빈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사가 원했던 것은 이것저것으로 채워져 있는 그릇이 아니라, 빈그릇이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름은 빈 그릇안에 부어졌습니다. 만약 그릇이 비어있지 않고 그 안에 뭔가가 있었다면,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그 기름을 담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20-21절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나를 그릇으로 쓰시고자 하실 때에 여러가지 잡다한 세상 것들로 채워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쓰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고자 하실 때에 나를 비워드려야 합니다. 내 생각, 욕심, 세상적인 가치관, 편견… 나를 채우고 있는 것들을 비워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채우시고자 하시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세상것으로 채우려고 애쓰기 보다는 비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것으로 채우셔서 쓰실 수 있는 것입니다.
3. 빚진 여인이 빈그릇을 준비할 때에 하나님은 그 빈그릇 안에 기름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빈그릇이 다 채워지자 기름병에서 기름이 그쳤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녀에게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두 아들과 생활하라고 하십니다.
그 여인은 그 사건을 통해서 생계문제만 해결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경외하는 자를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를 경험케 되었습니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알리고자 하셨던 것은, 빈그릇에 기름을 채우시는 하나님이, 그녀와 아들들을 돌보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빈그릇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빈그릇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재물, 건강, 세상적인 성공, 자녀가 잘되는 것… 세상적으로 풍요한 분들은 별로 채울 것이 없다고 여길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나옵니다. 그 교회는 세상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교회를 책망하십니다. 요한계시록 3:17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세상적인 풍요로 만족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 영적으로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영적인 빈곤에 있지 않도록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은혜의 풍성함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새롭게 하소서’ 라는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관형 작가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바울의 가시’라는 책을 쓰신 분인데,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습니다. 조현병을 가지게 되면 정신이 혼란해 져서,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구별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합니다. 조현병의 증상으로는 환시나 환청, 망상이 있습니다. 그가 조현병에 걸리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늘 폭력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따돌림과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의 마음은 그들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고, 공부를 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 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상처와 아픔으로 인해서 그에게 조현병 증세가 나타났고, 그의 마음에는 분노와 복수심, 그리고 자신은 무가치하다는 생각으로 가득찼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대학교에 가서 한 선배가 기독교 동아리를 소개합니다. 사귐성이 없는 그가 그 동아리에서 기독교 청년들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며, 서로 돌보는 믿음의 관계로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이 쓰레기와 같은 존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구원하셨음을 깨달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 기적을 경험했다고 말하며 그 기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첫번째 기적은 조현병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사망의 자녀에서 생명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기적은 그동안 용서할 수 없었던 원수를 용서하게 된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조현병 환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건강한 몸으로 자신의 뜻대로 원하는대로 살아가고, 사람들과 경쟁하고 저주하며 세상적인 가치관의 삶을 사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고, 자신들을 돌보아 주는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기적이고 축복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를 경험한 분들은, 그것이 육신과 정신의 건강이나 어떤 재물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우리의 삶이 풍족하게 가득 채워질 수 있음을 하나님은 성도들이 깨닫고 누리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궁핍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십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가 삶의 궁핍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은 그녀의 빈그릇에 기름을 채워주셨고, 그녀의 궁핍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 사건을 통해서 기름보다 더 귀한 것으로 채움을 받았습니다. 바로 자신의 빈그릇에 기름을 부으시는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빈그릇에 채워진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인 궁핍을 채워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적으로 궁핍을 주실 때에도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채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채움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의 삶을 세상적인 물질과 가치로 채우기를 힘쓰기 보다 이를 비워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빈 그릇이 되어 우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에,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가치과 은혜로 채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 궁핍함을 주실 때는 절망할 때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그 궁핍함을 채워주실 것을 믿고, 깨끗한 빈그릇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입니다.
물질적인 풍요로 인해서 도리어 영적으로는 더 궁핍해 가는 이 세대를 살아가지만, 영적인 갈급함으로 주님앞에 나옴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신령한 은혜로 가득 채움받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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