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6/2022 - 물 위로 오라 하소서 [마태복음 14:22-33]
https://youtu.be/RqCghE3wLCo
오늘 읽으신 말씀은 베드로가 물위를 걸은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여러분, 물 위를 걸어 보셨거나, 물위를 걷는 분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어떤 분이 자신은 물위를 걷는 법을 알고 있다며 저에게 그 방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한발이 물에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내디디면 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바실리스크 도마뱀은 한발이 물에 빠지지 전에 다른 발로 물위를 디디면서 물위를 달립니다. 그런데 그 도마뱀은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1초에 20번 이상 발자국을 옮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인 남성이 이 도마뱀과 같이 물에 빠지지 않고 달리기 위해서는 시속 112킬로미터로 달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속도만을 가지고서는 안됩니다. 물을 박차는 강력한 다리힘이 필요한데, 그 힘은 현재 보통 사람의 다리힘의 15배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누가 해냅니까? 베드로가 해 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112킬로미터의 속도를 달릴 수 있었거나, 다리 힘이 강해서 물 위를 걸었던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과연 어떤 능력으로 물 위를 걸었습니까?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물위를 걸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그리고 이 말씀을 읽는 우리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1. 먼저 우리가 깨닫는 것은, 언제든지 인생에 광풍이 불어 닥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다섯개로 오천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그 기적 이후에 예수님은 자신이 무리들을 보내고 정리할 테니까 너희들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급하게 배에 올라 바다 건너편을 향해 항해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날이 저물고, 제자들이 육지에서 꽤 떨어졌을 때에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제자들이 바람과 물결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날이 저물었는데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어둠속에서 항해할 것을 각오하고 항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둠과 더불어 제자들은 바람과 물결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종종 강한 바람이 불어와 풍랑을 일으킵니다. 북쪽에 헤르몬산이 있는데, 이 산은 백두산보다 높고, 꼭대기는 만년설이 있습니다. 그 산에서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내리고, 남쪽 아라바 광야에서 불어오는 덥고 습한 바람이 만나면 광풍이 불고, 소나기가 내리기도 합니다. 갈릴리 어부들은 이러한 광풍이 부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가라고 명령하셔서,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가는 길인데, 풍랑을 맞아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풍랑이 불어 닥칠 때가 있습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에 바다는 혼란과 무질서, 악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평탄한 바다만을 항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갈 때도 풍랑을 맞아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때를 마주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풍랑을 맞을 때도 있습니다. 육신의 질병, 경제적인 결핍, 가정안에서의 폭력이나 부도덕한 일로 인한 가정의 파탄 등을 맞아 개인과 가족들이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누구보다 잘 믿는다고 하는 가정에 이러한 풍랑들이 닥쳐 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평탄하고 잔잔한 항해만을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교회 중에서 풍랑이 없는 교회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에 나온 서신 중에 교회와 관련되어서 보내진 서신이 20개가 있는데, 그 교회들은 모두 풍랑이 이는 바다를 지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도 예기치 못한 광풍들이 불어 닥칩니다. 몇 년동안 코비드라는 풍랑이 있었습니다. 이태원에서 수 많은 학생과 젊은이들이 죽는 광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그리고 교단에도 풍랑이 불어 닥치고 이로인해 교회들도 고통스러운 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풍랑을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자 원하십니다.
2. 제자들은 바람과 풍랑으로 인해 바다 한가운데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육지에서 수리나 떨어져 있었기에, 풍랑으로 인해 배가 전복된다면 생명에도 위험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그 위험을 피해보겠다고 풍랑가운데 안간힘을 쓰는데, 설상가상으로 어둠속에서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소리치며 패닉에 빠졌습니다. 아마 그들이 보기에 그 유령은 자신들을 데리러 가려고 오는 저승사자처럼 보였을 것 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데 그 유령은 누구셨습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극심한 공포속에 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즉시 말씀하셨습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배에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익숙한 말을 듣고서 안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밌는 것은,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만약 여러분이 제자들 중에 한명이었고, 굳이 뭔가를 예수님께 간청을 한다면 그 상황에서서 무엇을 구하겠습니가? 아마 보통은 바다를 잠잠케 해 달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풍랑가운데 있음에도 물위로 오라고 해달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제안한 것은, 예수라고 말하는 존재가 정말 예수님인지 알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 존재가 예수님이 아니라면 자신은 물에 빠져 죽을 수도 있는데, 단순히 그 이유로 물위를 걷게 해 달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고자 했던 것은 왜 그렇습니까? 29절에 보면, 베드로가 물위를 걸어서 누구를 향하는지 나와 있습니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의 행동은 자신을 예수라고 한분이 예수님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요청을 할 때도,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오라 하소서” 베드로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께로 가고자 했던ㄴ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주님께로 오도록 허락해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늘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자 힘썼던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자로 부르셨을 때에,
예수님께로 가기 위해 배와 가족을 내버려 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로마병정에게 잡혀서 대제사장에 끌려갔을 때에도, 예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대제사장집의 마당까지 간 사람입니다. 비록 그곳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부인하긴 했지만 말입니다.
베드로는 요한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고기를 갈릴리 바다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찾으십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쳐도 고기를 잡지 못하는 그들을 향해,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물에 고기가 가득 잡히자 제자 요한이 그물을 던지라고 한 분이 예수님인 것을 알아 차렸습니다. 요한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이시다.”라고 했을 때에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곧 바로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서 예수님께로 갔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그 풍랑 가운데서도 예수님께로 빨리 가서 그분과 함께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라’고 대답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물위를 걷게 해 주셔서 그에게로 오게 해 주실 줄로 믿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로 가기 위해 배에서 물위로 첫발을 내 디뎠을 때에 얼마나 설레이고, 한 편으로는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첫발을 내 디뎠을 때에 발이 물에 빠지지 않았고, 베드로는 물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걸음은 계속됩니다. 그는 풍랑속에서 예수님께로 가겠다고 예수님을 보면서 처음 걸음마를 하는 아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럽게 예수님께로 나아갑니다. 다른 제자들을 경험하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그는 몸소 체험하며 예수님께로 가까이 갔던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자 풍랑을 이기고 주님께로 가는 사람이 기독교인입니다. 배안에 있으면 예수님이 오실 텐데 뭐 그렇게까지 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자세는 광풍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신앙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믿음이 성장하여서, 주님의 일을 능력있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삶에 풍랑이 일 때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주님께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 교회에 풍랑이 올 때, 그냥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시겠지? 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신앙을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풍랑을 주실 때에는 성도가 그 일로 염려로 인해 불안해 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그러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찾으며 주님께로 향해서 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과 동행하는 믿음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폭풍을 뚫고 주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에 우리는 주님께로 가야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풍랑을 헤치고 주님께로 오기를 원하세요.
3. 베드로는 주님께로 가기 위해 첫발을 내 디뎠고 물위를 걸어 주님께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끝까지 물위를 걸어 주님을 만나 기쁨으로 주님께 끝까지 가서 주님을 만나 감격스럽게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께 잘 가다가 물에 빠진 이유가 있습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간지라.”
예수님을 향했던 베드로의 시선이 바람이 와서 방해를 합니다. 베드로가 바람을 보고 의식하게 되니 두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속에서 베드로는 물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믿음생활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여러가지 일들이 만나고 보게 됩니다. 두려움의 바람도 보게 되고, 실패의 바람도 보게 됩니다. 유혹의 바람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부는 바람과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유투브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인기와 명예, 권력과 쾌락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바람에 빠져서 물에 빠지는 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가려고 할 때, 주님께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악의 계략이 있습니다. 사자성어에 ‘서동격서’ 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동쪽을 치는 듯이 하면서 실제로는 서쪽을 치는 병법의 하나입니다. 사탄은 성도가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여기저기에서 바람을 불어 대는 것입니다. 예배드리러 오는데 급한 일이 생겨서 예배를 방해합니다. 말씀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사탄은 성도가 예수님께 시선을 두지 못하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일들을 만들어 소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의 삶은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4. 그런데 베드로는 이에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두려움속에서 물에 빠졌을 때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십니까?
베드로는 물에 빠져들게 되자 본능적으로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곳에서 자신을 구해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그는 절감하며 예수님께 구원을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지체하지 않으시고 ‘즉시 손을 내미셔서 그를 붙드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진정한 마음으로 구원을 간구할 때에, 즉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사망의 물결속에서 건져내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건져 주시면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베드로에게는 바다를 걸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처럼 큰 믿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큰 믿음을 가지기 위해 극복해야 할 것이, 의심입니다. 그 의심의 과정을 통과할 때에 온전한 믿음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의심의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실패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주님께로 가가 위해 물위에 발을 내디뎌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주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고, 도전하고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하고,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예수님은 즉시 그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이후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손을 붙잡고 그를 건지셨을 때에,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물위에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을 때에 베드로도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함께 배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다의 풍랑이 잠잠케 되었습니다.
인생에 풍랑이 있을 때에 이것저것에 정신이 팔리지 마시고, 무엇보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로 가고자 힘쓰십시오. 비록 예수님께로 가는 일에 실패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또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십시오. 물에 빠지는 실패를 통해서 나를 건져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누구에게나 풍랑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에게도 풍랑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럴 때에 성도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께로 더욱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주님 저로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간구하며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베드로는 자신의 안전지대인 배를 버리고, 물위에 발을 내디뎌야 했습니다. 내가 안전하다고 여기며 붙잡고 의지했던 것을 놓을 때에, 비로서 예수님께로 향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 가기 위해서는 다른 방해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바람에 시선을 뺏기면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쾌락에 시선을 빼앗기면 주님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12: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 성도, 교회가 해야 될 일들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변에 바람이 일고, 물결이 일어서,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을 때에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가까이 가야 합니다. 주님을 향하여서 “주여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를 구원해 주십시오. 이 나라를 구원해 주십시오.” 간구하며 나아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잡아 주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우리 교회가 환난가운데 주님을 더욱 구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고, 그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간증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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