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814Nn33qlso
작년 겨울에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있었습니다. 저는 한국 전 축구 경기 중계를 보면서 선수들의 실력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공격하는 선수들이 자기 진영에서 여유있게 볼을 돌립니다. 그러다가 상대방 진영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되면 길게 공을 찔러주고, 같은 편의 선수가 쏜살같이 달려들어가서 골을 잡아서 넣어 버립니다. 또 어떤 선수는 수비수들 사이에 있는 좁은 틈을 파고 들어가서 볼을 넣는데 참 예술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축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과 겨룰 때에 선수들은 상대방의 헛점을 이용해서 공격해 들어갑니다. 유도같은 경우를 보면, 어떤 경기는 서로 공격은 하지 않고 상대를 툭툭치면서 빙빙돌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상대방의 헛점이 보이면 삽시간에 공격해서 들어가서 한판 승부를 만들기도 합니다. 노련한 선수일수록 자신의 헛점을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헛점을 잘 파악해서 공격을 합니다.
그런데 노련한 운동선수보다 사람의 헛점을 잘 알고 이를 공략하는 존재가 있는데 마귀입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공격해서 죄를 짓게 만들고 영적으로 쓰러뜨릴까를 생각하며 그 틈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이를 잘 알기 때문에 에베소 교인들에게 경고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마라” 영어로는 틈을 Foothold 발판이라고 합니다. 마귀의 특징은 어느 곳이든 틈만 있으면 그것을 발판삼아 비집고 들어가서 자신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가정안에, 교회 공동체 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성도와 공동체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틈이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고 별로 영향력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작은 것 하나를 내어 줌으로 전체를 빼앗기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가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 우리를 지배하도록 만드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틈을 주지 말라고 말하기 전에, 사람이 분내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마귀가 들어오도록 틈이 되는 것, 발판이 되는 것중에 하나가 ‘분을 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이 상황과 환경을 접할 때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이 감정이 아니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감정은 크게 네가지로 분류합니다. 희노애락이라고 했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기뻐합니다. 노여움이 있을 때에 소리를 버럭지르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슬픈 일이 있을 때에 마음이 우울해 지고 눈물을 주르르 흘립니다. 즐거운 일이 있을 때에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흐릅니다.
이러한 감정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분의 감정도 하나님께서 주셨지만, 분노의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자칫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 마귀의 다스림을 받을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1.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경고하기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 일이 많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감정대로 사람을 상대하기 때문에 죄를 짓기도 합니다.
여러분, 창세기 4장에 보면, 인류의 첫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가인이 왜 동생 아벨을 죽여야만 했을까요? 동생 아벨이 죽어야 할 정도로 형 가인에게 못된 짓을 했습니까? 하다못해 아벨이 형을 욕하거나 해려고 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인의 분노는 사실 하나님을 향한 분노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시는 하나님에게 가인은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은 아벨의 잘못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잘못이었습니다. 결국 자신에게 분노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의 분노는 동생 아벨에게 향했던 것입니다. 자신보다 힘도 없고 선한 아벨에게 자신의 분노를 쏟아 놓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상태를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아벨을 살인하기 전에 이러한 처방을 주십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마귀는 가인의 분냄을 통해서 들어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냄으로 죄를 짓지 말고, 죄를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가인은 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죄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동생 아벨을 쳐서 죽이는 끔찍한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분노가 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은, 분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감정 중에서 가장 오래가는 것은 어떤 감정입니다. 기쁜 감정이 오래갑니까? 아니면 슬픔이나 분냄의 감정이 오래갑니까? 기쁨의 감정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라져갑니다. 그런데 분냄의 감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를 화내게 했던 그 말과 상황들이 곱씹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야 하는데, 하루종일 분을 묵상하다가 마음에 분을 품고서 지냅니다. 그래서 분노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더 커져 버려서,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 정도가 됩니다.
지난 1월 22일, 설날에 LA, 중국 커뮤니티에 있는 한 댄스교습소에서 총기사건이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이민 온 72세의 한 남자가 댄스 교습소에 들어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총을 난사한 것입니다. 그 남자는 그 댄스 교습소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이혼 한 전 아내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곳에 들어가 설날 행사때에 선보일 춤을 연습하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쏜 것입니다. 그를 아는 지인은 그 사람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그는 평상시에 댄스교습소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며 적대적으로 말하였고, 그리고 그는 화를 잘냈고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국 그 남자는 자신 안에 있는 분노를 그대로 품고 키우다가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분을 해가지도록 품지 말라고 합니다. 나에게 분노, 화가 날 때에 이를 빨리 버려야 합니다. 분을 품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품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내 행동과 삶이 달라집니다.
닭이 알을 품지 않습니까? 닭이 알을 품는 것은 생명을 품는 것입니다. 알을 품고 21일이 되면 예쁜 생명, 병아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것을 품을 때에 좋은 열매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품게 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분을 품게 되면 악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편 37: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뿐이라”라고 했습니다. 분을 품는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죽이는 독약을 품는 것과 같습니다. 분을 품는 마음은 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악하게 행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분이 날 때에 일단 인내하고 참기만 해도 성공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그 분을 품지 않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그 분노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그렇다면 우리가 분을 품지 않고, 그로 인해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그 비결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은 진노가 없으신 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로마서 1:18절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죄를 범하는 이들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참 진노가 많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그들을 벌주셨습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을 붙잡아 두려는 애굽 바로왕에게 10개의 재앙, 진노를 쏟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평할 때에 불뱀을 풀어서 사람들을 뱀에 물려 죽게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도 분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다가,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분을 내시며, 채찍을 만들어 그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셨습니다.
하나님도 때로 분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진노와 다릅니다. 그분의 진노는 의롭고 거룩하신 진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분노로만 사람들을 대하셨다면 인류는 다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분을 품지 않으시고, 도리어 사랑으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녀삼으셨습니다.
에베소서 4:31-32절에 말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은 분을 품고서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진노케 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용서하셨고, 사랑의 관계로 만들어가셨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노함과 분이 날 때에 악의를 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라고 합니다. 여러분 화가 나 있는데 상대방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이 쉽습니까?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이 불쌍히 여겨질 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품으셨던 마음은 긍휼의 마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죄에 지배받는 연약한 모습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품어주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이 드셧던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용서함으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분이 날 때에 악의를 버리고, 도리어 용서하라고 합니다.
서로 분을 내며 싸을 때보면, 서로가 옳다고 주장할 때입니다. 서로 옳다라고 여기면 상대방이 나에게 잘못했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잘잘못과 상관없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따져 분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용서함으로 내가 품은 분, 죄짓게 되는 분을 내려 놓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신 방법이기도 하셨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이제 우리는 분이 날 때에, 이 때는 나를 분내게 하는 그 상대방을 품으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야 합니다.
마귀는 사람들이 분을 낼 때에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더 큰 분열과 상처를 가지고 오도록 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럴 때에 그 틈을 메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틈을 메우기 위해서 나를 분노하게 하는 상대방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1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바울은 로마교인들이 서로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보통 화가 나면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밖으로 밀쳐냅니다. 그래서 그 관계는 더욱 멀어지고 나중에는 단절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죄인된 사람들을 불쌍히 보시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받아들이셨고, 우리의 죄됨을 이해하셨습니다. 정죄하기 보다는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심지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몸인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거룩하고 의로워서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몸으로 삼으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가 많고 어리석지만, 주님의 받아주심과 사랑하심으로 예수님의 거룩한 몸인 교회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마귀가 노리고 공격할 만한 틈이 없으셨습니다. 분을 품고 죄를 지어야 할 시점에서, 도리어 예수님은 분의 원인인 죄인을 받으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에 나를 분노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받으십시오. 우리 교회에, 이웃에 그러한 분이 있으십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받으셨던 것과 같이, 분을 품지 말고, 그 사람을 사랑으로 받으십시오.
우리는 분이 날때에 분을 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품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왜 그러한 반응을 보였는지, 상대방에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를 받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용서하고 받을 때에 우리는 분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우리로 죄짓게 할 틈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분을 낼 일들이 있을 때에 도리어 상대방을 받음으로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고, 도리어 예수님과 같이 서로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점들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누구보다 우리의 약점, 틈을 숨길 수 없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그리고 마귀는 우리의 분노가 얼마나 큰 틈인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안에 분노가 있게 되면 마귀는 그 틈으로 들어와 가족들을 지배합니다. 서로 적대시하며 관계가 멀어지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서로에게 악한 말을 하고, 행동을 하게 되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가운데 있을 때에 그 동안에 아름다왔던 관계들은 무너져내립니다. 이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분노를 품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분노를 가지고 때로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향해서 분노를 쏟아붓기도 합니다. 마귀는 이러한 분노의 틈을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들고, 사회를 병들게 만들고 죄로 물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기해야 합니다. 분노가 일어날 때에 예수님을 기억하며 서로를 받을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미워하고 용서하지 말라고 하지만, 예수님처럼 상대방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 친절하게 대함으로 마귀가 틈타려고 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분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분을 풀지 못함으로 마귀에게 틈을 주고, 죄를 짓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혹시나 지금 분을 품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 해지기 전에, 아니 지금 당장 그 분을 풀어내시기 바랍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예수님과 같이 분을 내게 하는 사람을 품고, 용서하시고, 받으심으로 주의 선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피차 경험하는 복된 시간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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