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UyrNxcWj6QQ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사사시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기 전에, ‘사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삼으셨는데, 이 때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사사들은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힐 때에 군대를 모집해서 대적들과 싸웠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사람들을 말씀으로 재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의 특징은 사사들이 살아있을 때에는 이스라엘에 평안이 있었지만, 그들이 죽은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사사기에는 총 12명의 사사가 있는데 여러분이 기억하는 사사들은 누가 있으십니까? 그 사사들 중에서 오늘은 기드온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이 미디안 사람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세움 받은 사사입니다. 괴롭힘을 당하는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습니다. 드보라라는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사십년동안 평온했는데, 그녀가 죽자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칠년 동안 이스라엘을 미디안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사람들의 약탈은 심각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계는 상관도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모든 토지의 소산물이나 가축들을 약탈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눈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고 숨어 지내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버린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결국 이스라엘은 그들이 버린 하나님을 다시 찾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사 기드온을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을 찾아옵니다. 그 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 라고 부르면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 구원하시고자 하심을 전합니다. 그런데 사실 기드온이 큰 용사라고 불릴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미디안 사람들을 피해 숨어서 탈곡하는대 큰 용사라는 말은 적절치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부르신 것은 바로 그를 ‘큰 용사’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용사로’ 쓰시겠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 기드온이 사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보면, 미디안 사람들, 아말렉 사람들, 동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약탈하려고 메뚜끼 뗴와 같이 모여 왔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이에 대해서 반응을 합니다.
지난 7년에는 미디안 사람들이 몰려오면 그들을 피해 숨기에 바빴는데, 이제는 다릅니다. 미디안 사람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기드온은 나팔을 불며, 사람을 모집합니다. 이제 기드온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큰 용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싸움에 개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이길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중요한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은 무엇인지, 또한 승리하는 ‘큰 용사’의 모습은 무엇인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1.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기드온이 사람들을 모았을 때에 삼만이천명이 모였습니다.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미디안군대에 비해서는 턱이 없는 숫자입니다. 사사기 8:10절에 보면, 미디안 군대와 그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13만 5천명이나 됩니다. 이스라엘 군사들보다 4배 이상이 많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 상황가운데서 미디안을 이기기 위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 같으면 숫자가 모자르니 더 모집을 하자며 사람들을 찾아나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싸울 사람이 모자르다고 더 모집해서 오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아서,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왜 숫자가 많다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3만2천으로 승리하면, 자신들이 잘해서 승리한 것으로, 스스로 자랑할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신 승리를 가지고, 자신들이 한 것인양 여기며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악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삶속에 하나님을 거스리는 모습이 많습니다. “잘되면 내탓, 안되면 조상탓” 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잘한 일이 있을 때에 내가 그것을 했다고 드러내고 싶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치렀는데 4대1로 싸워서 승리하게 되면, 우리가 우리의 능력으로 이 일을 했다고 분명 스스로를 자랑할 것이라는게 하나님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2:8,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일을 통해서, 당신이 영광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존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우상이 가로채고, 사람이 가로챕니다.
바람과 비, 햇빛을 주장해서 농사를 잘 짓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은 바알에게 제사를 드리며 풍요를 간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에서 승리케 하는 신은 아세라가 아님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에게 승리를 기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당신의 하신일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하셨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일을 제대로 알고,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할 때에, 재물도 넉넉하고, 능력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니까 마치 내 물질과 능력을 가지고 일을 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가진 세상적인 풍요와 능력으로 인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가려질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온늘날, 돈이 많고, 과학문명이 발전하고, 사람이 할 수있는 능력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장하시는 주권자이심을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숫자가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숫자를 가늠하는 기준은, 전쟁의 승리를 위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를 승리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드러내기에는 숫자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절대적인 주권자이신 줄로 믿습니다. 눈에 보기에는 세상의 물질, 권력, 사람들이 이 세상을 좌지우지 하는 것 같지만, 이 땅을 다스리시는 절대적인 주권자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담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삼만이천명이 많다고 하시면서 두번에 걸쳐 백성의 숫자를 줄이십니다.
1) 먼저,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3만 2천명 중에 이만이천명이 돌아갔습니다. 3분의 2이상이 전쟁이 두렵다고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 숫자를 모으기 위해 얼마나 수고를 했습니다. 미디안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두려워 떠는자는 돌아가라고 합니다. 신명기에도 보면,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르기 전에,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미리 집으로 돌려 보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들을 돌려 보내라고 하십니까? 그들이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시는 승리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보이지 않고, 그 많은 미디안 군대가 전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 보다는, 미디안 사람들이 자신들을 좌지우지한다고 생각하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승리의 약속을 믿고서 담대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역사는 언제 나타납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주님의 일들을 하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담대히 순종하는 자들이 믿음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2) 이제 전쟁을 치르기로 작정한 담대한 사람 일만명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시기를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만명으로 미디안을 이기게 하시면, 아직도 그들은 분명히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힘으로 미디안을 이겼다고 자랑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공력을 내세우고 자랑하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큰지를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나를 내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큼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숫자를 줄일 방도를 기드온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일만명을 물가로 인도해서 거기서 사람들을 시험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어떤 사람들 데리고 싸움에 참여해야 할지를 알려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냇가에 갔을 때에 사람들이 그곳에서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물을 마시는 모습이 두 모습으로 갈리었습니다. 한 사람들은 개가 핥는 것처럼 엎드려서 물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무릎을 꿇고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먹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물을 마시는 사람과 함께 미디안과 싸우라고 하셨는데 그 사람들의 숫자가 삼백명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천칠백명은 다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지금 미디안과 싸울 300명의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전투력이 좋아서 뽑으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이 승리케 하심을 드러내기시 위해서 그 300명을 뽑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숫자상으로, 이스라엘이 미디안 군대를 이길 가능성은 없습니다. 한 사람이 450명을 상대해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군대를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약한 군대로 만드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시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약함이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때는 하나님의 강함을 드러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2: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해짐으로 하나님의 강함이 드러나는 것은 복입니다. 반대로 내가 강함으로 하나님이 감추어지는 것은 저주와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약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경험하는 복을 주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3. 이제 미디안 군대와 싸울 사람이 300명 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워낙 적은 숫자가 남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신들의 힘으로 미디안 사람들을 이겼다고 말할 수 없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도 떠나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불안한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남아 있는 300명들도 하나님이 300명까지 줄이실지 몰랐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도 진작에 무섭다고 집에 갈 걸… “ 하며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드온도 두려운 마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진영으로 내려가서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하와 함께 미디안 진영에 몰래 들어가서 미디안 사람 두 명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한 미디안 사람이 자신이 꾼 꿈 이야기를 합니다. 한 보리떡 덩어리가 굴러와서 미디안 진영을 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다른 미디안 사람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이것은 기드온의 칼이고,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다.” 고 말합니다.
지금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정작 미디안 사람들은 기드온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방법대로 미디안과 싸울 때에 그 큰 군대를 한 사람을 치듯이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처음 부르실 때에,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포도주 틀에서 밀타작을 하는 그에게 ‘큰 용사’라고 부르셨는데, 정말로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들과 함께 큰 전쟁에서 승리한 큰 용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큰 용사의 요건이 무엇입니까? 힘이 강하고 싸움을 잘하고, 통솔력이 있으면 큰 용사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싸우는 자가 큰 용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가 가진 것들을 줄이실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재물을 제거하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제거하실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이 줄어들 때도 있습니다. 교회도 어려운 때를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시고자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신뢰하며 담대히 살아가는 믿음의 큰 용사를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을 믿고, 이를 경험하며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때로 우리가 소유한 풍요와 능력들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자신들의 힘을 더 키워야 된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3만 2천으로는 13만 5천명을 이길 수 없으니 더 많은 사람들을 모집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더 강한 무기를 개발해서 상대방을 제압하고자 합니다. 하다 못해 어떤 사람들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목소리를 키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에, 자신들의 능력으로 전쟁에서 이겼다고 자신들을 높입니다.
하디만, 우리의 능력과 풍부함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깨닫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하던지 가난하던지, 강하던지 약하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믿고, 그 믿음에 근거해서 살아갈 때에 영적 승리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가진 것들을 줄여 가실 때가 있습니다. 나의 능력을 줄이시고, 사람들을 줄이시고, 뭔가를 줄이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인간적인 방법으로 그 줄어드는 것을 채우려고 애쓰다가 주님의 뜻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믿는 믿음을 보고자 원하십니다. 내가 어느 형편에 있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이 절대적인 주권자임을 믿고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말씀으로 순종하며 담대히 살아가는 큰 용사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과 같은 용사를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도 이러한 믿음의 큰 용사가 날마다 더해 져야 할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큰 믿음의 용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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