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plfYED7gaRg
오늘 말씀은 12사도를 비롯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과 병행을 이룹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설교를 하실 때에 가장 먼저 가르치신 말씀은, 어떤 사람에게 복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 화가 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복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환경이 좋거나, 하는 일이 잘되면 복받았다고 합니다. 좋은 가정에 태어난 사람에게는 부모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재물을 잘 버는 사람에게는 재물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에는 사람복이 있다고 합니다. 몸이 건강하면 건강의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러한 것들이 없으면 복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복의 기준은 대부분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으면 복이 있고, 그렇지 않으면 복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떤 복을 가졌으면 하십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복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이 복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복이라고 하고, 복이 없다고 하는 것을 가지고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네가지 복에 해서 먼저 말씀하시고, 그 뒤에 네가지 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복있는 사람을 열거할 때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고, 주린자는 복이 있고, 우는 자는 복이 있고, 미움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화가 있는 사람은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고, 모든 이들에게 칭찬받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누가 들어도 이상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복을 받기 위해서는 부요하지 말고 가난해야 하고, 배부르지 말고 주려야 하고, 웃지 말고 울어야 하고, 칭찬받지 말고 미움을 받아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복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있기를 원하셨던 복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복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소유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소유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복이 있고 없음을 말합니다. 그런면으로 보았을 때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스스로를 복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서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가난하게 되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림의 떡입니다.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가질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집이 있어도 그 집을 가질 수 없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가지를 못합니다. 많은 것들을 가난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도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너희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난하다고해서 못들어 오도록 금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서 소외받고 가진 것이 없어도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허락되었습니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도 천국이 주어졌습니다. 이 말씀은 가난해져야지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그들도 천국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기 위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취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그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곧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한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취할 수 없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한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를 취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만물의 왕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복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와는 반대로 부요한 자에 대해서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기 때문” 이라고 했습니다. 부요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것들을 통해 이미 위로를 받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받아야 할 위로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위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 환난가운데서도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진 세상의 것들을 위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면, 부요하든 가난하던 그것이 화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보면 새하늘과 새 땅, 곧 우리가 맞이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1: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함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복이라고 여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과 관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최고의 복인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복을 아는 사람이 아굴이라는 사람입니다. 잠언 30장에 보면, 아굴이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30:8-9절에 보면,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아굴은 자신이 가난하던 부하던지간에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굴은 가난하면 도둑질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으니 가난한 것도 원치 않았고, 그렇다고 부하면 가진 재물을 의지함으로 하나님을 모른다고 외면할까봐 그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그가 구하는 것은 날마다 주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저 날마다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복은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관계를 맺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있을 때에 우리는 구원도 받고, 위로도 받는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은, ‘지금’의 상황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때로 지금의 현실은 그렇게 비쳐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있을 때에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지금의 현실이 하나님의 나라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주린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지금’은 현실적으로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서 주릴 수도 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살아가기에 힘들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복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돌보시고 먹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가난하여 고통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전히 돌보고 계시고, 그들을 배부르고, 웃게 만들어주실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는 반대로 ‘지금’ 배부른 자는 주릴 것이고, ‘지금’ 웃는 자는 애통하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요한 사람들은 배부르고 웃을 일이 많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산다면, 그들의 배부름은 배고픔으로 바뀌고, 그들의 웃음은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주릴 수도 있고 배부를 수도 있습니다. 웃을 수도 있고 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금 배부르고, 웃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외면하며, 말씀에 불순종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외면한 부요함과 배부름, 웃음은 진정한 복이 아닌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 고통스럽고 주리고 울 일이 생긴다라고 할지라도, 이를 외면하지 않는 것이 복있는 자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지금은 영원하지 않고 잠깐인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지금’보다는 ‘그 날’ 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사람들이 당하는 일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신 후, 25절에 ‘그 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이 땅에서 풍성하게 살아가는 것을 복이라고 여기지만, 예수님은 장차 하나님을 뵙는 ‘그 날’ 에 하나님께 상을 받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지금 현재의 상황들은 복과 화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증거들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지금’ 가난하고, 주리고, 울어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뵙는 ‘그 날’ 하나님의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복받은 자인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로 인해서 사람들이 너희들을 미워할 때에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며 화가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칭찬을 받는 것이 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받은 사람도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고, 화있는 사람도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미움과 따돌림을 받는 일은 참 저주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예수님으로 인해 당하는 일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 한국에서 회사에 취직하는 원서를 낼 때에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으면 불이익을 봤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때로 회사에서 주말에 필요한 근무를 요구할 때에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가야한다며 거부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동료나 고객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술도 좀 마시고 해야 하는데 이도 거부하니, 기독교인을 고용하는 것을 별로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회다닌다고 눈치 보이고, 따돌림당하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데, 사람들이 너를 미워하면 그것은 복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복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칭찬한다고 할지라도, 단 한 분, 하나님의 칭찬이 없다면 복이 아닌 것입니다. 반대로 모든 사람이 미워해도 하나님 한분께서 칭찬하시면 그것이 복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보면서 살았던 제자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다가 공회원들로부터 어려움을 당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감옥에 가두고, 공회에서 재판을 하기도 하고, 채찍으로 때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제자들이 채찍에 맞고 풀려나는데, 그 때에 사도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했습니다. (사도행전 5:41) 그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당하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당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억울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당하는 고난은 화가 아니라 복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만날 ‘그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상급을 받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당하는 고난을 얼마나 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나 그 고난을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땅에서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흘리는 눈물을 주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뵙는 ‘그 날’에 하나님의 칭찬과 상급이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복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하고 성취하는 사람을 보고 복있는 사람이라고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참된 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가 처해진 환경들이 절대적인 복과 화를 규정하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관계맺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가 복이 있고, 없고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의 복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복으로 여기는 사람은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복이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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