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qtRe0pY0Xs
1933년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Golden Gate Bridge)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공사 도중에 노동자들이 발을 헛디뎌 떨어져 죽는 사고가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낙상사고를 막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 밑에 그물을 설치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물을 설치한 이후로는 떨어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노동자들이 떨어진 원인은, 그들이 다리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떨어져도 그물이 있어서 안전하다고 안심을 하며 작업을 하니, 발을 헛딛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요즘과 같은 경우에는 경제적인 불안, 자연재해, 그리고 언제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두려움이 나를 사로 잡아서, 평안을 빼앗고, 정상적인 판단,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발을 헛디뎌 떨어져도 나를 받아줄 그물과 같은 존재가 있다면 우리는 두려움속에서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그러한 위험속에서도 평안을 누리겠지요.
그런데 시편 27편을 쓴 다윗은 자신을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그는 누구보다 두려운 환경가운데 있었던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어릴 때에는 양을 치면서 맹수들을 대면해야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년이 되었을 때에는 사울왕에게 쫓기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공격을 당해도 두려운데 한 나라의 왕이 몇 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쫓아오니 다윗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그가 생명이 위태한 상황가운데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두려움속에 있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 두려움속에 휩싸이지 않고, 이를 이겨나갈 수 있을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1. 여러분,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면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게 됩니다.
다윗은 누구보다 생명의 위협을 당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원수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왔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원수들은 그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맹수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사울의 군대를 피해서 도망다녀야 했고, 많은 나라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이럴 때에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위축된 삶을 살아가기 쉽습니다.
다윗이 실제로 두려움으로 인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사울왕과 그의 군대로부터 쫓길 때에 두렵다고 사울이 쫓아 올 수 없는 곳을 찾다가 적국인 블레셋으로 도망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다윗을 보고, “저 사람은 골리앗 장군을 죽인 다윗 아니야?” 라고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를 듣고 다윗은 이곳에서 잡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살려고 미친척을 합니다.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립니다. 그리고 이를 본 블레셋 왕이 “우리 중에 미친 사람이 없어 다윗을 데리고 왔냐” 며, 다윗을 쫓아 보냅니다.
다윗에게도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은 말합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고,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라” 다윗은 두려움이 엄습할 때에 믿음으로 작정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나는 두렵지 않고, 나는 태연하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태연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암시의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고백이요, 선포입니다. 그가 위태롭고 두려운 가운데서도 태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 다윗은 하나님이 빛이심을 알기에 어둠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빛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윗이 빛이 없는 어둠의 때를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빠지게 되면 앞이 캄캄 합니다. 어둠에 사로잡히게 되면 어디로 가야할지를 분간할 수가 없어 어둠속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때에 하나님이 빛이심을 경험합니다. 그가 진퇴양난의 상황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빛이 되셔서 그를 어둠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떠한 인생의 캄캄한 어둠도 물리쳐 주시는 강력한 빛이십니다. 빛되신 하나님께로 나올 때에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한 빛가운데 살길을 가게 됩니다. 인생의 어둠의 때를 맞이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빛되신 주님께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그 때에 어둠이 물러가고, 광명한 빛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이 구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신을 구원할 대상을 찾습니다. 돈이, 권력이, 사람이 자신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들을 보면, 스스로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있다가도 없어지는 유한한 것들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의지하다가, 도리어 그것으로 인해서 위험과 멸망에 처하게도 됩니다.
다윗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가 세상 것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달려 갔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환난날에 나를 그의 초막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숨겨주시고, 높은 바위에 두시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환난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며 하나님의 초막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구하시고 살펴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으십니다. 이를 믿을 때에 우리는 환난 중에 주님을 찾게 되고, 주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은 내 생명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명의 능력에서 ‘능력’은 히브리어 “마오즈” 를 쓰는데, 요새,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내 생명을 단단히 붙잡고 계시는 반석과 같은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강한 원수와 대적이 내 생명을 쥐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을, 그리고 원수의 생명까지도 주관하시는 유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확실히 알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기에 그는 대적 앞에서 평안할 수 있었습지다.
그런데 다윗이 언제 이러한 하나님을 경험했는지 아십니까? 바로 두려울 때에, 환난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환난의 때를 부정적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어둠가운데 있을 그 때에 빛되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멸망당하는 것 같을 때에 구원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을 것 같을 때에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움이 올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을 경험하여 더 알아갈 것을 기대하시고, 주눅들지 마시고 담대하게 그 두려움을 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2.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어떤 분들은 환난의 때에, 하나님을 만나눈 분도 계시지만, 어떤 분은 사탄의 계략에 빠지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주는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어서 사람들을 다스리고자 합니다.
1946년대에 남아프리카 지역에 점이 한창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어느 여름 유명한 점쟁이가 점괘를 내놓습니다. ❝올해는 대기근이 들 것이다!❞ 그의 말은 입소문을 타고 남아프리카 전역으로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자연재해의 징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지만, 소문이 자자했던 탓에 사람들은 분명 기근이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급기야 여름이 끝나기 전에 2만 명 넘는 농부들이 재난을 피해 짐을 챙겨서 도시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런데 그해 기근이 될 만한 가뭄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는 비도 충분히 내렸고 기후도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땅에 기근이 왔습니다. 남아프리카에 닥친 기근은 가뭄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농작물을 돌보지 않고 떠났기 때문입니다.
내가 두려움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올무에 빠져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두려움으로 나를 지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을 정탐하고 왔습니다. 12명이 정탐을 하고 왔는데 10명은 겁에 질렸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이 보고하기를,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거인과 같이 강하고 큰 사람들이고, 그들이 사는 성들은 높고 튼튼해서 점령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두려움속에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죽이려고 이곳까지 오게 하셨다면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성도를 두려움을 주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둠에 빠져들게 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절망하게 만듭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의 영인 사탄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 때에 우리는 다윗과 같이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의 능력입니다. 우리교회의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이십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주님 안에서 태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는 것입니다.
3. 그런데 다윗이 하나님으로 인해 태연하다고 하면서, 느닷업이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일을 간구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떤 일을 간구하고 싶으십니까? 그런데 우리가 구할 것이 사실 한가지 일만 구하겠습니까? 구할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여러가지를 구합니다. “주여, 주시옵소서.” 하면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이것저것 여러가지를 구하게 마련입니다.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건강, 어떤 분은 돈을 구하기도 합니다. 좋은 직장이나 높은 사회적인 지위를 원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자녀, 가정도 중요한 기도제목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한가지 일을 구합니다.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를 확실히 알고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면, 자신을 두렵게 하는 어떠한 문제도 아무것도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부자 할아버지가 손자를 불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그 손자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신의 집에 있는 것들 중에 원하는 것은 다 줄테니까 그 중에서 한 가지만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정말 할아버지 집에는 신기하고 좋은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이는 할아버지에게 묻습니다. “할아버지, 정말로 내가 달라는 것은 다 줄거예요?” “그럼, 네가 돈을 달라하면 돈도 주고, 장난감을 달라하면 장난감도 주고, 이 집도 달라고 하면 집도 줄거야” 뭐든 한가지만 말만 하렴…” 그런데 그 아이가 이것저것을 보면서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이 가지고 갈 것을 정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뭐냐고 묻는 할아버지에게 이 아이가 무엇이라 말했는지 아십니까? “할아버지요” 라고 말하더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필요한 것들이 많이 있고, 이를 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빛이요, 구원자요, 생명이라고 여기는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구할 것은 단한가지였습니다. 하나님과 한 집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부수적인 것을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구한 것입니다.다윗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을, 그의 삶에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참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빛이요, 구원이요, 생명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어둠이요, 멸망이요,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빛, 구원, 생명 가운데 있다고 자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밝은 빛이 있어도 그 빛에서 멀어지게 되면 어둠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생명으로부터도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며 기대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죄로 부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베풀어주신 십자가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에게 천국을 마련해 놓으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원수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면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관심하시고 위로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요 노래가 될 것입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릴 것이고, 여호와를 노래하며 찬송하겠다.” 고 말합니다.
사무엘하 23:1 에서 다윗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시를 지어 드리고,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노래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과 늘 가까이하면서,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리하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이들은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시간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예배, 찬양,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두려움의 상황들, 통제할 수 없는 어둠의 시간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우리는 두 존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 사탄입니다. 사탄은 두려움을 통해서 우리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두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이 시험에 빠지도록 만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냐며 불만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어둠과 절망에 빠져서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윗은 그가 두려운 상황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삶의 두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멀리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과 한집에서 살기를 구했습니다. 그럴 때에 다윗은 하나님의 빛되심, 구원자되심, 생명되심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무엇을 구하면서 사시겠습니까? 세상 사람들과 같이 이것저것 구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삶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담대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삶을 살아가심으로, 우리 삶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늘 예배와 찬양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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