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VNV8J3XiaA
여러분은 주로 어떤 종류의 말을 하십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와 다른 사람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으심을 아십니까?
어느 사람이 말의 힘을 느껴 보고자 자신의 가족과 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 사람은 두개의 귤을 가져다가 한 쪽 귤에는 “사랑해” 쓰고 가족들과 함께 그 귤을 볼 때마다 “사랑해” 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귤에는 “욕”을 써 놓고 볼 때마다 욕과 비난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둘의 모습이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날마다 욕을 들은 귤은 점점 까맣게 썩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랑해” 라는 말을 들은 귤은 썩지 않고, 연한 귤색깔을 유지하며 그 모양대로 말랐습니다.
이런 것이 우연일까요? 아닙니다. 사람의 말에는 힘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하는 말들을 보면, 그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이나 사람들에게 “사랑해” 라고 말할 때에 그 사람은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욕하고 미워한다면 그 사람이 썩도록 말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말 자체에 그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은 사람들의 말을 듣는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그의 주권으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말을 들으시고, 귤을 썩게도 하시고, 멀쩡하게도 만드시는 것입니다. 창조하는 말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계시고, 또한 그분의 주권을 가지시고 그 말에 반응하여 행동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 주고 계십니다. 우리의 말에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 사람의 됨됨이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들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때로 말의 종류에 따라서 창조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고, 때로는 파괴적인 힘을 발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입을 주셨을 때에 어떠한 말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 좋은 말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말을 잘못해서 정말 비극적인 삶을 맞이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불평의 말씀을 쏟아 놓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내귀에 들린 대로 행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불평의 말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말한 대로,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특별히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할 때에 그 대화의 상대는 사람만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보다 하나님께서 듣기에 기뻐하시는 말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어떤 말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사람을 살리는 말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은 믿음의 말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탐한 사건 이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네스 바네아라는 지역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가나안 땅과 아주 근접한 곳입니다. 신명기 1장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그 곳에서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그 땅에 정탐꾼을 보내어 그 지역을 확인하자고 합니다. 그래서 각 지파의 대표를 뽑아 정탐꾼 12명이 가나안 땅을 들어갑니다. 40일간 땅을 정탐했습니다. 그리고 올 때에 그곳에 있는 포도송이를 나무가지에 꿰어 어깨로 메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 땅은 분명,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젖과 꿀이 흐르는 아주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의 보고입니다. 가나안 땅은 비어있는 곳이 아닙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이미 살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마을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거인과 같이 크고 강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정탐꾼들이 자신들을 그들과 비교할 때에, 이스라엘은 메뚜기와 같아 보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둘로 나뉩니다. 10명은 말합니다. 14:2-3,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지만 여호수아와 갈렙, 두명의 정탐꾼은 다르게 말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12명이 같은 보았지만 그들의 보고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0명의 사람들은 상황에 근거한 것,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근거해서 말을 합니다. 그 말은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다른 사람들의 호응을 받는 말이지만,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10명의 말과 달랐는데 그것은 상황에만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말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도록 하실 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말씀을 믿고, 믿음에 근거해서 말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비록 가나안의 성들이 높고 견고하고, 그곳 사람들이 거인이라서 강해도, 하나님께서 우리로 그곳을 들어가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강조합니다.
믿음은 무지에서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그 수준에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근거해서 말하고 판단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 믿음의 말, 믿음의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어떤 분은 설득력있게 말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는 말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기쁘게는 하지만, 하나님을 기쁘게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합니다. 내가 좋아하거나, 나에게 유익을 줄 만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 기뻐하시는 믿음의 말을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의 말에 응답하셔서, 믿음의 역사를 이루시는 줄로 믿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은 감사의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정탐꾼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자손의 반응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으실 때에 얼마나 괴씸하셨겠습니까? 몇 백년을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광야생활 동안 날마다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는데 그것을 잊고 차라리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을 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은 하나님을 노엽게 할 만한 말입니다. 그들이 애굽 땅으로 돌아간다고 할 때에,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애굽에 있는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의 땅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들의 원망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귀에 들린 대로 너희에게 행하리라”
그리고 정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대로 행하십니다. 광야에서 죽는게 낫겠다고 말한 사람들은 광야 40년 동안 다 죽고,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그들의 말은 자신을 죽이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말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지금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불평하는 말을 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아니하십니다. 도리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광야는 세상적인 풍요를 누리는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큰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보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는 곳입니다. 날마다 내려주시는 만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광야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은혜를 잊어 버린 사람들은 원망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은혜를 깨닫는 이들은 원망의 환경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을 기초로 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체로 인해서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 때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심으로 인해서 감사하며 고백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으시기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은 말합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과 함께 하심을 믿고, 이를 기뻐하고 담대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은혜요,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이 사람은 불평과 남을 탓하는 것이 체질화 되어, 한 순간도 진정한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오랜 수형 생활을 마치고 출옥하게 되었을 때, 수도원으로 찾아가 수도원장에게 '나를 받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수도원장은 이 사람에게 "좋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침묵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단, 5년 후에 한마디 말만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조건으로 그를 허락했습니다. 5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5년만에 한 첫마디는 "잠자리가 너무 불편해요” 다시 5년이 흘렀습니다. 두 번째 말은 "음식이 입에 안 맞아요"는 것이었습니다. 또 5년이 흘렀는데, 그 때는 "더 못살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수도원장은 그 사람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그대가 여기 있는 동안 불평뿐이었으니, 나가 주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베푸신 은혜가 한이 없건만, 그 은혜를 모르니 감사가 아닌 불평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광야의 때, 고난과 어려움의 때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고 그분을 만날 때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할 때에 은혜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감사의 말이 되어, 찬양으로, 기도로, 믿음의 고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이 불평을 시작하면 그 불평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하지만 감사하게 되면 감사가 풍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에, 하나님이 이를 기쁘게 들으십니다. 그리고 감사할 일이 더욱 많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그리고, 성도는 내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감사로 이끄는 말을 듣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말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주장합니다. 오늘 10명의 정탐꾼의 말은 그들만의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로 사람들은 절망에 빠지게 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광야에서 멸망당합니다.
그들이 10명의 믿음없는 말이 아니라, 2명의 믿음의 말을 들었으면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좀 더 귀를 기울이는, 오래 기억하는 말은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말이라고 합니다. 불안한 상황가운데서는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말에 신경쓰는게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울여야 할 말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말입니다. 하나님께 관심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비신앙적이고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해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멸망시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생명의 말씀임을 믿고 경청하며, 그의 은혜에 감사로 고백하며 사는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라” “가나안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다.” 라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말을 듣고, 말하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게 말씀으로 살아갑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문제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세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말, 은혜의 감사하는 말을 듣기에 기뻐하시는 것처럼, 성도된 우리들도 믿음의 말, 감사의 말을 듣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날마다 우리는 말을 하며 삽니다. 입술로, 얼굴로, 행동으로 말을 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그 말들 중에는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기뻐하시는 말과 그렇지 못한 말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말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말을 기뻐하십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국 허황되고 무익한 말입니다. 세상에 좋은 말들이 많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의 말을 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불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이 많아진다면, 나에게 은혜가 떨어졌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은혜는 그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르키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말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에 없애야 할 말이 있습니다. 믿음을 약화시키는 말, 세상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제게해야 합니다. 대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말을 즐겨해야 합니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나님의 이 말씀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위협적인 말씀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들으시기에 기뻐하시는 말, 믿음의 말, 그리고 감사의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고, 은혜와 감사에 감사가 넘치는 은혜의 말씀인 것입니다.
간절히 원하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을 주고 받으심으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고 은혜와 감사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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