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4/2023 - 전염병같은 교회 [사도행전 24:1-5]
https://youtu.be/sx2DcEVjpIc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해서 누군가가 “넌 전염병과 같아” 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번 펜데믹 기간 동안에 아시아 사람들이 다른 인종들에게 혐오적인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중국 우한이 코비드 발생지라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 중국인과 비슷한 아시아인들을 향해서, “중국으로 돌아가라, 못된 전염자들’ 이라고 말하며, 아시아 사람들을 마치 바이러스처럼 취급을 하며, 폭언과 폭행을 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똑같이 공포와 피해를 겪고 있는데, 아시아인들을 전염병과 같은 해로운 존재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 총독 벨릭스 앞에서 심문을 받는 모습입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총독에게 바울을 고소하게 됩니다. 이 때 유대교인들은 바울을 고소하기 위해서 더둘로라는 사람을 자신들의 대변인으로 세웠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고발하기 전, 벨릭스 총독을 치켜 올립니다. 3-4절에,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합니다.”
더둘로는 먼저 총독에게 환심을 얻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울을 고발합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입니다.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입니다.”
이게 그 당시 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 대한 평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을 해롭게 하는 병으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을 전염병이요,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하는데 기분 나빠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취급했으니까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자신이 전염병, 그리고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에게 예스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것을 한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는 전염병과 같은 존재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전염병에 걸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전염병에 걸리듯이,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전염시키는 것이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전염병으로 불려진 바울을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전염병과 같은 성도요, 교회가 될 수 있을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바울이 전염병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예수님을 증거했던 이유는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이 말은 곧 모든 사람은 바울과 같이 전염병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틱톡 챌린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틱톡이라는 SNS 를 통해서 어떤 특이한 행동들을 영상으로 올리면, 사람들이 그러한 것들을 재미삼아 따라하는 것입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같이 버킷에 있는 물을 뒤집어 쓰고, 기부를 하는 좋은 챌린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장기 설거지" 와 같은 해로운 챌린지도 있고, 이것이 한창 유행중이라고 합니다. '장기 설거지' 챌린지는 보락스(붕사)를 물이나, 커피, 스무디에 타서 마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 사람들이 이 챌린지가 몸속의 염증도 고치고, 장기도 세척한다고 해서 하는 것인데, 사실 붕사는 세제나 농약에 쓰이는 해로운 물질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답니다.
세상의 유행이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하나님과 대적하게 만드는 영적으로 위험한 문화와 가치관들이 즐비합니다. 이러한 것들에 감염된 사람들은 죄가운데 빠져서, 결국 영원한 죽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의 복음은 그 반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께 감염되기 전에는 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를 사람을 죽이는 병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 길에서 환상중에 예수님을 만난 후에 비로서 예수님이 병균이 아니라 참 구원자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그는 예수님이야 말로 죽을 사람을 살리는 참 생명이고, 어둠을 밝히는 빛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해하는 병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백신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18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신 유일한 구원자이십니다.
오늘날,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더 좋은 세상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의료기술이나, AI, 휴머노이드 로봇의 발전이 사람들을 질병과 기아, 전쟁, 죽음으로 부터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발전된 문명을 가지고, 도리어 악을 행하는데 익숙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과학은 발전하는데, 하나님을 향한 영성은 점차 약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의해 전염되어 살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세주로 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보다, 세상에 것을 더 가치있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께 감염된 자여야 합니다. 바울과 같이 예수님께 감염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양성반응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예수 방이러스에 감염됩니까? 아닙니다. 전염병은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과 가까이 할 때에 감염이 됩니다. 세상을 가까이 하면 세상것에 감염됩니다. 예수님과 날마다 모시는 삶을 살아야 예수님께 감염됩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과 기도로 예수님을 가까이 하여야 합니다. 그러다가 보면 예수님께 감염되어,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전염병에 걸리면 증상이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대표적인 증상이 열이 나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전염된 사람에게도 증상이 있습니다.
1) 예수님께 감염된 사람의 증상은, 자신은 죽고 예수님이 그 삶에 살아나는 것입니다.
보통 심각한 전염병에 걸리면 한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가 파괴됩니다. 165년 경에 로마제국에 전염병이 퍼졌습니다. 이 역병은 ‘안토니우스 역병 Antonine Plague” 이라고 하는데 이 역병은 15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5년 동안 이 전염병은 로마제국 으로 퍼져나갔고 로마제국 인구의 사분의 일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할 정도입니다. 황제 아울렐리우스도 이 역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전염병은 개인을 죽이고, 가정과 사회를 죽이고 파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감염된 자들은 다릅니다. 예수님께 감염된 자들도 죽습니다. 그런데 죽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에 대해서 죽습니다. 그리고 예수로 살게 됩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함께 읽음)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십니까? 내 생각과 가치관을 주님께 맞추고 살아가고 있다면,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제대로 감염된 사람인 것입니다.
2) 그리고 예수님께 감염된 또 다른 증상은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팔레스틴, 소아시아, 유럽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예수님께 감염된 분들이 특징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킬린에 있는 뉴게이트감리교회 담임 목사님과 함께 과테말라 선교지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곳에서 사역하시는 선교사님을 보면서 커다란 감동과 도전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후원하는 강순진 선교사님을 만나 어떻게 사시는지, 그리고 선교 현황에 대해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강선교사님은 우리교회에서 첫 선교를 갔을 때 함께 하셨던 선교사님이십니다. 60세 후반, 늦으신 연세에 홀몸으로 선교를 오셔서 사역하시다가 어느덧 70대 후반이 되셨습니다. 연세가 많으신데도 복음을 전하겠다는 부르심에 순종하셔서 사역하신 선교사님께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은 같은 지역에서 선교하시는 친척이신 배 선교사님 내외분과 함께 지내면서 선교지를 방문했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하시던 비지니스를 정리하시고 4년 전에 깨찰태낭고에 오셨습니다. 깨찰태낭고에는 어린이 교회학교가 전무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사님 내외분은 어린이 교육의 사명을 받아 사역하고 계십니다. 대부분 산 깊숙이 있는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매주 찾아다니시며 아이들을 예배와 말씀으로 양육하고 계십니다. 저희가 갔을 때에 로스 페레즈 라는 동네에 갔습니다. 그 교회를 15인승 밴을 타고 가는데, 포장되지 않고 경사와 커브가 엄청난 산길을 따라 가는데, 좀처럼 몸을 가눌 수가 없었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길 끝에 마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마을에 있는 한 교회에는 아이들이 70명정도 모여있었고, 여자 선교사님께서 찬양과 율동, 말씀, 크레프트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비가 와서 돌아가는 길이 수월치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길바닥이 미끄러워서 차가 언덕을 오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나와 차를 미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기다란 밧줄을 가지고 오셔서 차에 묶으셨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함께 밧줄을 당겨서 차를 겨우 꺼냈습니다.
아내 선교사님은, 지난 주간에도 이런 고생을 하셨다며, “차가 주인 잘못만나서 고생한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랬더니 남편 선교사님은, “그게 무슨 말이냐고, 이상한데 쓰임받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으니 얼마나 귀하냐” 고 하시더라구요.
편하게 사실 수 있는 분들이 왜 이러한 일들을 하십니까? 예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기 떄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에 감염되었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이런 위험하고 힘든 일들을 자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고, 은혜 받으면 예수님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지난 주일, 성경공부 모임이 있었습니다. 기도제목을 나누는데, 한 성도님께서 우리교회에 빈자리가 채워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저도 더욱 열심히 전도해야 겠다는 감동이 왔습니다. 예수님께 전염된 성도, 교회는 예수 복음을 전합니다. 우리가 교회가 늘 예수님을 증거하는 예수님께 전염된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고, 예수님께 전염된 자들의 또 다른 특징은 세상을 요동시킨 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그 일행이 선교 중에 데살로니가에 이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수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큰 도시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도시에 도착한 후에,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그곳에 있는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으려고 소란을 피우면서 바울의 일행을 일컬어 하는 말이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렀다.”(행 17:6) 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미 사도 바울 일행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일행이 천하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공격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곧 교회와 기독교인의 속성입니다.
기독교인은 세상을 요동케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 우리의 기존에 삶과 부합하지 않는 일들로 인해 요동케 됩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곳에 복음이 들어가면 요동이 생깁니다. 가정안에 복음이 들어가게 되면 기존의 삶을 바꾸어야 하기때문에 가정이 요동합니다. 기독교인들은 때로 일터를 요동케 합니다. 기존의 불의와 거짓에 맞서기 떄문에 일터를 요동케 합니다.
바울 일행만 세상을 요동케 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우리 가정을, 교회를, 이 사회를 복음으로 요동케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가정도 복음으로 더욱 요동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도 복음을 더욱 증거하며 샌안토니오의 영적인 요동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요동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어떠한 요동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어도 삶의 요동과 변화가 없다면, 내가 예수님께 전염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은, 세상을 요동시키는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때에 우리는 세상을 요동케 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전염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세상 사람들이 죄에 감염되어 사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는 예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는 사람을 살리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예수께 감염된 성도들은 죄된 옛사람은 죽고, 예수께서 내 삶에서 살아서 역사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요동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죄와 어둠의 영역을 요동케 하는 것입니다. 진리로 거짓된 세상을 흔들어 놓고, 생명의 빛으로 사망의 어둠을 요동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 지역의 악한 영의 권세를 흔들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 많은 이들이 죄의 전염병에 감염되어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 때에 교회된 우리 모두가 예수의 복음을 전함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전염병과 같은 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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