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2023 -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립보서 1:27-30]
https://youtu.be/Lcm3t875GeI
작년 2월에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의 한 주유소에서 한인여성이 주유를 하고 있는데, 한 칼을 든 남성이 이 여성을 위협해서 차 키를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빼앗은 키로 차를 훔쳐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근에서 여성이 위협당하는 소리를 듣고 한인 남성 3명이 그 주유소로 가서 강도로부터 차 키를 뺏어 여성에게 돌려주고, 도망치는 용의자를 경찰에 신고해서 범인을 체포하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부에나팍 시청에서는 그 한인 세명에게 “용감한 시민상”을 수여했다고 합니다. 종종 시에서는 시민으로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용감한 시민상', '자랑스런 시민상' 등을 줍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시민으로서 모범되게 살아갈 것을 격려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보다 바람직한 시민의 모습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이 빌립보교인들에게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위해서 먼저 우리가 어디에 속해있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하니다.
여기서 “생활하라”의 헬라어는 “폴리튜에스데”라는 단어입니다. 이는 “시민답게 살아라”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빌립보는 '리틀 로마' 라고 불리는도시였습니다. 그것은 로마가 빌립보를 점령한 후, 황제는 로마 군대를 위해서 헌신한 댓가로 그곳에 로마군인으로 퇴역한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고 그곳에서 살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빌립보 시민들은 누구보다 로마 법을 잘 지키는 시민으로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시민으로서 합당하게 살라'고 할 때에 이는 로마시민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20절에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바울 시대에 로마 시민권과 같은 것이 미국 시민권이라고 여겨집니다. 미국이 군사적, 경제적인 우위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미국 시민으로 살기를 원하고, 미국 시민이되기 위해 경비와 시간을 씁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땅에 어떤 시민권과 비교할 수 없는 시민권이 하늘의 시민권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은 누구에게든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땅의 시민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인들에게 하늘의 속한 시민권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성도의 합당한 생활은, 복음의 신앙을 위해서 마음과 뜻을 합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교회로서 부르심을 받은 것은 합력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복음의 신앙은 나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믿음을 세워주고, 성장하도록 하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한 마음과 한뜻으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드러내는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만으로도 복음의 신앙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나이도 다양합니다. 우리교회를 보면 갓 1살이 된 아이로부터 90세가 넘으신 분이 계십니다. 그러니 세대차이가 엄청납니다. 직업도 다양합니다. 성격도 다양합니다. 생각하는 것도 다양합니다.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저 사람은 싫어하고, 저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복음 안에서 우리가 하나되어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의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입니다. 복음을 드러내는 합당한 생활입니다.
그런데 교회안에 하나의 마음으로 협력을 이루는 것을 원치 아니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마귀입니다. 마귀는 교회가 협력하지 못하고, 분열하도록 만듭니다.
마귀(Devil)을 헬라어로는 '디아볼로스'(diavbolo")라고 합니다. 그런데 ‘디아'(dia)는 '~사이에'라는 뜻의 접두어이고, '볼로스'는 '던지다' 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래서 '디아블로스'의 일차적인 의미는 '사이로 던지는 자' 입니다. 마귀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짓과 의심의 돌을 던집니다. 그래서 서로 분열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교회안에서도 거짓으로 분열을 만듭니다. 교회가 복음을 위해서 여러가지 일들을 함께 합니다. 각 부서들마다 맡겨진 일들을 합니다. 예배와 전도, 봉사와 교육 등을 협력해서 함께 해 나갑니다. 그런데 사탄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서 사람들 사이를 분열시킵니다. 함께 협력하지 못하도록 그 사이를 갈라 놓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은, 더욱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협력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뜻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마귀의 분열의 궤계를 이기고, 복음의 사역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관계를 분열시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분열된 것을 하나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죄로 인해서 분열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하나가되게 하신 분이십니다.
복음의 신앙을 위한 것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보다도,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뜻으로 하나가 되어 믿음생활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한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서로 협력하며,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신앙이 들어가면 복음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갈등과 분열이 있다가도 복음이 들어가면 믿음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가 될수 있는 것은 우리로 하나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주님의 겸손한 마음을 닮아 나를 낮게 여기고, 다른 이들을 섬기며 살아갈 때에 우리가 믿음안에서 하나된 복음의 신앙을 삶을 살아가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2. 두번째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무엇입니까?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대적자들의 공격 중 하나가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두려움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보면, 손해를 보고, 박해를 받을 수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를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믿음생활을 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1:7-8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초대교회에 복음의 신앙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유대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대적하며 두려움을 줬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공권력도 교인들에게 커다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헤롯과 같은 존재는 제자 야고보를 죽이고, 교회를 핍박하는 일들을 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 같은 경우에도 빌립보서를 로마 감옥에서 쓰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일로 인해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움에 사로 잡히지 않고 담대히 대면하는 것이 성도의 생활인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가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두려움을 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복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도들에게 담대함을 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담대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 두려움을 감당할 자체적인 힘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도우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담대하게 하는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가지 두려움의 상황속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믿음으로 담대히 두려움과 대면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임을 증거하는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고 믿음의 합당한 삶은, 고난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29절에 보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했을 때에 자신에게 좋은 것을 은혜라고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서 문제가 해결되고, 원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형통하게 사는 것을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간증하며 그 은혜를 나눕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만을 은혜라고 생각하게 되면, 환난과 고난이 닥쳐 올 때에 그것이 은혜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도리어 믿음으로 살다가 고난과 문제를 맞이하게 되면 은혜를 잃어버리고, 실망하고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게 하려고 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고난을 피하거나 감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골로새서 1:24절,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도리어 그는 고난을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바울에게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성도가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담당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가 당하는 고난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다가 당하는 고난 당하는 것은 영광된 일입니다. 고난을 당하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할 때에 주님은 그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준비하고 계시니 그 또한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마땅한 생활은 고난을 피하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더욱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이 땅의 고난보다 더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고난 때에 그 은혜를 더욱 누릴 수 있도록 주님께서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도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복음의 신앙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믿음안에서 하나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각자의 생각을 고집하며, 이런저런 일로 다투고 분열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특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으로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분열과 갈등을 하나되게 만드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을 분열케 하는 마귀를 궤계를 이기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적들로 인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책임져주심을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합당한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로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생활하면서 고난을 외면하고 싶지만, 우리 교회가 온전히 서가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고난과 환난도 주십니다. 이것도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살아가는 법이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이들은 하늘의 시민권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과 뜻을 품고 살아갈 때 주안에서 하나되어 주님의 사명을 능히 감당케 될 줄로 믿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마음과 뜻으로 살아가다가 보면 우리의 모습이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섰을 때에 하늘나라 시민권자로서 ‘모범된 시민상’ ‘자랑스러운 시민상’ ‘용감한 시민상’을 하나님께 받는 성도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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