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ecbL2EtUlY
믿음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 세가지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예배, 말씀, 기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성경을 읽으시고, 기도를 하십니까?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에서 개신교인 2000명과 목회자 802명, 비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신앙의식’ 조사를 실시해서 2023년 7월에 그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일주일 성경 읽기 시간은 평균, 64.4분이라고 합니다. 이를 하루 분량으로 나누면 약 9분이 조금 넘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카톨릭인은 38.9분, 불교인의 경전 읽는 시간은 32.1분으로 개신교인의 성경 읽기 시간이 카톨릭인이나 불교인보다 두 배 정도 많았습니다.
그러면 기도는 어떨까요? 개신교인들은 예배와 식사 시간에 하는 기도를 제외하고, 하루 평균 24.0분을 기도한다고 답했습니다. 카톨릭인은 25.3분이고, 불교인은 16.3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인 5명 중 1명은 기도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기도하는 성도 중에서는 ‘10분 이하’라고 응답한 인원이 29.7%로 가장 많았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것은 교양이나 명상을 위한 일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고 교통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통하시고자 성경말씀과 기도를 주셨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인물로서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다윗이 쓴 기도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만나며 교제했던 사람입니다.
시편에 나온 다윗의 시를 보게 되면, 대부분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깊은 교제가운데 있었음을 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합당한 자라고 일컬음을 받았는데, 하나님과 기도를 통한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기도는 일상이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보게 되면 그는 자신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 같이 되게 해달라” 고 기도합니다. 제사장들이 날마다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분향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날마다의 향기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나의 손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제사장들은 늘 아침과 저녁으로 제사를 드립니다. 다윗은 자신이 손을 들어 기도하는 것이, 제사장들이 매일 드리는 제사와도 같기를 기도했습니다. 다윗의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상이었습니다. 성도의 기도 또한 이벤트가 아닌 친한 사람을 늘 만나듯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부르며 속히 내게 와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떠한 위급함이 있길래 하나님을 급하게 부르는 것일까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기도의 내용을 보면, 어떤 위급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기도의 내용은 대부분 어떤 어렵고 힘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한 기도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로 다윗도 그러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위급할 때에 긴박하게 대적들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의 기도는 좀 다릅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성찰하며, 일상에서 바른 신앙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의 기도를 보면서, 우리의 기도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라고, 더욱 친밀한 주님과의 관계, 삶의 변화를 이끄는 기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먼저 축원합니다.
1. 먼저,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파수꾼은 성문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만약 적군이 나타나게 되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성문을 닫아서 성을 보호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파수꾼은 성을 공격할 수도 있는 대적자들이 그 성문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늘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입에 파수꾼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가 말을 할 때에 통과해야 할 말과, 통과시키지 말이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을 지키는 파수꾼은 외부의 적을 성 안으로 들이지 말아야 하는데, 입술의 파수꾼은 다릅니다. 입술의 파수꾼은 바로 내안에 있는 말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통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말 중, 어떤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고, 어떤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분간하지 못한다면, 결국 말을 통하여, 다른 이를 해롭게 하고, 결국은 나를 해롭게 합니다. 곧 나를 해하는 대적자가 곧 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커다란 말실수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이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는 것을 알고 급히 홀몸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 찾아 간 사람이 놉에 있는 제사장 아히멜렉입니다. 다윗을 본 제사장은 떨며 그를 영접합니다. 제사장은 다윗이 홀로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고 묻습니다. 그 때 다윗은 자신이 왕에게 쫓기는 것을 밝히지 않으려고 거짓말로 둘러 댑니다. 자신은 사울왕의 명령을 비밀리에 받았고, 왕이 이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일행은 나중에 만나기로 했다고 거짓으로 말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난처한 처지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 뒤, 아히멜렉 제사장에게서 먹을 것과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서 떠납니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되었습니다.다윗과 아히멜렉 제사장이 만난 일이 사울에게 알려지고,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의도적으로 도왔다고 여겨서, 아히멜렉을 죽입니다. 그런데 아히멜렉 제사장뿐만 아니라, 놉에 있는 제사장 팔십오명을 죽이고, 그 성읍의 남녀와 아이들, 젖먹는 자들, 그리고 짐승들, 곧 소와 나귀, 양을 칼로 쳐 죽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위기를 숨기려고 거짓된 말을 했는데, 이를 곧이 들은 아히멜렉 제사장은 이에 대해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죽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해 놓고, “이 말을 하지 말 걸…”이라고 후회되는 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쏟아진 물은 담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입에서 나간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는 법입니다.
잠언 13:3절에,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어떤 사람은 입에 파수꾼을 두어서 그 생명을 보존하는 일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입술을 지키지 못해서 멸망의 길을 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입이 죄악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에 파수꾼을 세워달라고 기도도 해야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만을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입을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말을 하기를 원하실까요?
먼저, 우리의 입은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선지자들을 부르시면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부르심은 모세가 입술이 둔해서 못한다고 했을 때에, “내가 너의 입을 짓지 않았냐?” 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말들은 통과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우리의 입을 벌려야 합니다. 사무엘하 23:1절에, 다윗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노래 잘 하는 자” 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입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높여드리며 선전하는 것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말씀의 파수꾼이 세워지길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내 감정과 내 생각이, 내 입의 파수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당신의 생명의 말씀이 전달되는 데에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 영혼을 죽이는 세상의 거짓된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삶을 격려하고, 세우는 일에 귀하게 사용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디엔가 기울어져 있습니다. 우리 마음안에는 다른 것들보다 더 관심이 가고 가까이 하게 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지는 않을까 염려하여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길 때에 주로 도망을 다녔지만, 그런데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결정적인 때도 있었습니다. 자신이 숨어 있는 동굴에 사울왕이 쉬겠다고 혼자 들어온 것입니다.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옆에 있는 부하는 다윗을 부추기며 사울왕을 죽이라고 합니다. 만약 다윗이 사울왕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대신 죽이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기름부은 자를 죽이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라며 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다윗에게 사울왕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원치 아니하시는 일에 마음을 두는 것을 악하게 여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두었습니다.
다윗은 기도하기를,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거나,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누구와 함께 먹고 마시느냐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누구와 밥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운 관계임을 말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왠만큼 친해지면 ‘시간될때 밥 한번 먹읍시다.’ 라고 인사말로 합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먹자는 말을 안합니다. 그냥 인사말로 사용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모르는 외국분들은 이것 때문에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왜 밥을 먹자고 하고서 왜 시간과 약속을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고 합니다.
다윗은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하지 말아야 할지를 위해 기도합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이라도 가까이 하고 마음을 두다가 보면 친해지게 되고, 그 생각에 동조하여 함께 악에 물들게 됩니다.
미국의 한 감옥에 죄수가 탈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탈옥을 도운 사람이 그 감옥에서 근무하는 여자 교도관이었습니다. 그 여자 교도관은 남자 죄수를 만나면서 사랑에 빠져서 그런 범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생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의 기도를 들으면, 좋은 친구나 선생님과의 만남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저도 아들이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게 됐는데 가장 관심 가는 것이, 아들과 함께 방을 쓰는 아이들이 어떠한 아이들인가가 관심이 되었습니다. 혹시나 마약을 하거나 나쁜 습관을 행하는 아이는 아닌지, 내 아이에게 나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은 아닌지 살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이 악한 것에 기울어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악한 것에 기울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진수성찬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 친밀해져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에, 예수님께서는 라오디에가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불신자가 아니라,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주님께 온전히 기울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에 마음이 기울어져 세상의 일을 도모하며, 악한 사람들과 먹고 마시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기울어져 주님과 먹고 마시는 친밀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받을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의인이 자신을 칠 때에 은혜로 여기고, 책망할지라도 이를 거절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치다’ 는 히브리어로 할람(halam)인데, 이는 “망치로 치다. 때려 눕히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떤 사람이 의인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당신의 잘못을 이렇게 치듯이 책망을 하면 마음이 상하고 충격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를 은혜로 받고, 환영하여 듣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더군다나 그 책망을 머리의 기름같이 여기고 거절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에는 귀한 손님이 오게 되면 환영의 표시로 두가지를 하게 됩니다. 먼저 발을 씻어주고, 그리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줍니다. 그러니 다윗은 의인의 바른 책망을 귀한 손님처럼 환영하며 맞게 해 달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말을 즐거워하며 받습니까? 내가 듣기에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내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로 일컬어졌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실수와 죄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책망하시려고 말씀의 사람을 보내셨을 때에, 그 치는 말과 책망의 말을 ‘아멘’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저지른 죄 중에,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고, 이 죄를 덮기 위해 그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 죄를 회개하지 않고 무감각하게 있을 때에,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는 다윗의 죄를 망치로 치듯이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때에 다윗은 그 책망을 거절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책망을 자신을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시편 23:4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되신 하나님은 지팡이로 위험에 빠진 양을 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막대기로 잘못 가고 있는 양들은 쳐서 바른 길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는 지팡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막대기 또한 기쁘게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대조되는 인물이 사울왕입니다. 사울에게도 그를 책망할 의인과 같은 존재가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도 있었고,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아들 요나단이나 다윗과 같은 충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결국 그의 삶은 하나님께 버림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의인을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우리를 치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책망을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잠 9:8에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하였습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교정시켜 주는 이들을 귀하게 여깁니다. 그 책망을 통해서 자신이 바른 길을 가고, 그 책망이 사랑으로부터 나옴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은 위로받고 싶어하고, 이해받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이 주시는 훈계와 책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변화없는 신앙인으로 남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나를 치는 아픈 책망이라도 이를 달게 받고, 믿음의 변화와 성장의 계기로 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그가 완벽한 존재라서가 아니라, 비록 그는 부족하지만, 늘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기도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양하며 주님과 교제하는 삶을 일상으로 살았습니다. 양을 치면서도 목자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했습니다. 고난 가운데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에는,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며 애타게 주님을 찾기도 했습니다.
기도는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는 우리의 말을 지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악한 일을 도모하는 관계가 되지 않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치고 책망하는 말씀을 거절하지 않고, 아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의 풍요와 성공을 위한 욕심으로 가득찬 기도가 아니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내 입술이 거룩해져가고,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기를 위한 기도여야 합니다. 나를 수정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책망을 잘 받아들여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져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로 기도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에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과 교제하는 기도의 사람들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원하기는 우리 모두가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주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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