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Eb6GkHs7xE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깨닫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도 돌이켜 보면, 내가 숨을 쉬려고 산소를 만들지도 않았는데 숨을 쉬고 살았고, 태양을 뜨도록 하는데 아무 수고도 하지 않았지만 따뜻한 생명의 빛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붙여주셔서, 외롭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은혜를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잘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잘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성경책을 열심히 읽으시는 한 권사님이 계십니다. 그 권사님은 사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읽으실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각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말씀을 읽으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깨달으니 눈물이 나오고, 은혜가 더해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있는 은혜도 잃어버립니다.
마태복음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돼지가 진주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돼지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정신을 가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진주의 가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 그 가치를 깨달아, 잘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신 은혜를 잘 받으면 감사와 기쁨, 그리고 찬양이 넘치게 됩니다. 설겆이를 하면서도 찬양이 흘러나오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감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은 어떻습니까? 기쁨과 감사가 넘칩니까? 아니면 짜증과 불평의 마음이 있습니까?
그런데 은혜를 받았을 때에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은혜를 헛되게 받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라고 합니다.
은혜는 받았는데 그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고린도교회에 영적인 은사를 많이 주셨습니다. 예언과 방언, 영분별, 병고치는 은사 등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주신 것은 교회의 유익과 덕을 주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안타까운 것은 고린도교회가 영적인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헛되이”는 ‘케노스 kenos’ ‘공허한, 허무맹랑한, 성과없는, 유익이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유익하게 써야 하는데, 그들은 그 은혜를 헛되게 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또한 받은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고, 유익하게 사용할 것인가도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 은혜를 헛되이 받게 되면, 그 주신 하나님께서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줄 걸~”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고 살아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받는 것은 없는지를 살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바울은 은혜를 말하면서, 자신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사도바울이 그들에게 권하는 말이, 곧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서 권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바울이 하는 권면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경청하여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울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은혜는, 바로 바울을 비롯해서, 우리를 일꾼으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다양하십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일하실 때가 있습니 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직접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일하신 것을 봅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에 사는 제자,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셔서 바울을 찾아가 안수하고 그를 제자로 세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나니아 라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던 것이고 이것이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에 사람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9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정말 영광된 일요, 은혜입니다.
요즘 좋은 직장들을 놓고서 경쟁이 심합니다. 구글, 테슬라, 삼성, 증권사… 좋은 스펙도 있어야 하고, 경력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일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나를 환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력서를 써도 답이 오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동역자요 일꾼으로 여겨주시는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수 없어서 우리에게 일들을 함께 하자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과 일을 할 만한 능력이 있기에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기에는 죄성도 많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부족하고 연약한 자를 더 유용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것 자체를 은혜로 여기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목숨을 다해 선교를 했던 것은 , 그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하나님의 일이었음을 알기에, 사람에게 하듯 대충하지 않고 죽기까지 감당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여러 사역들이 있습니다. 선교, 봉사, 교육과 같은 일들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에게 이런 일들을 맡겨주셨음을 은혜로 생각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감당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2. 이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고린도교인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유익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은혜를 무익하고 헛되게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 중에 최고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려고 해도,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사람 스스로는 죄로 인한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받게 되면, 어떤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죄에서 씻음받아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는 거짓교사가 들어와서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과 행위를 통해서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거져주시는 은혜에 대한 기쁨은 사라지고, 다시 율법에 얽매인 멍에를 매게 된 것입니다. 그렇세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로, 행위를 내세우며 자신을 높이게 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이에 대해서 강력히 반대합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것은 율법을 통한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받은 성도의 특징 중에 하나가 아니라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자랑하게 마련입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후에 고백하기를, 고린도전서 15:10절에,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고, 하나님의 동역자로 살아가는 것이 모두 주님의 은혜라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으면 자기 의와 자랑에 빠지게 됩니다. 뭔가 잘 되면, 자신이 한 것처럼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를 열심하고,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했고, 선한 일들을 많이 해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을 주셨다고, 은근히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사를 주셨으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유익되게 사용해야 하는데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자신에게 있는 은사가 더욱 중요하다며,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고 다른 은사자들을 업신여겼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십자가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랑이 곧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날마다 여호와의 은혜를 자랑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증거하는 전도의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늘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49:8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합니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사야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이 놓임을 받고 완전히 회복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을 마친 후,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는 구원의 날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지금’이라는 말을 두번이나 사용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는 바로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이루어지는 때라는 것입니다.
모든 은혜는 과거나 미래의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아무리 많은 은혜를 경험했다고 할지라도, 지금 그 은혜를 잃어 버렸다면 과거에 받은 은혜는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에게 한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당신한테 가장 중요한 일과 가장 중요한 사람을 얘기해주세요” 그러자 톨스토이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인터뷰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고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지금 받아 누리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현재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사야 55:6절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 우리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은 곧 은혜를 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현재화 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하나님께 부르짖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는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가운데 처하던지 상관없이, 날마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며 지금 받아서 누려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를 누리며 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중에 최고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구원의 은혜입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 사람이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통해 우리 모두는 구원에 이른 줄로 믿습니다.
이런 구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이들은 자기가 행한 일을 자랑하기에 관심하지만,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이들은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혜는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은혜를 받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늘 찾고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니,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늘날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 버리고, 감사와 기쁨을 잃어 버린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예배의 자리로, 기도의 자리로, 말씀의 자리로 와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은혜를 주시는 분을 만나야,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자랑하며, 이를 증거하는 성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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