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F2iqp3em5WQ
우리는 지금 대림절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성탄절 전 4주간 동안, 과거 이천년전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기념하고, 또한 앞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대림절기의 특징은 '기다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설레이는 일입니다. 아마 연애하실 때에 사귀는 사람과 만남을 기쁨으로 기다리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목사님 부부 모임에서 한 목사님께서 사모님과 만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 만남이 특이해서 흥미있게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총각일 때 한 선배 목사님이 좋은 자매가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냐고 묻기에 만나보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선배 목사님은 소개시켜주는 자매에 대해서 아무것도 안 알려주더랍니다. 그 자매가 어떻게 생겼는지, 성격은 어떤지, 심지어 이름도 가르쳐주지 않고, 단지 언제 어디에 가면 만날 수 있는지만 말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은 선배 목사님이 알려준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오는 여자들이 선배 목사님이 소개시켜준 여자는 아닐까하여 조심스럽게 바라보았겠지요. 그리고 드디어 선배목사님이 소개시켜 준 자매를 만났는데, 그 자매 역시 자신이 만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하고 왔다고 합니다. 그러니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일지를 상상하며 기다리는 마음이 참 설레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간절히 기다리며 살았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시므온이라는 할아버지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예수님의 부모도 율법에 따른 예식을 치르고자 예루살렘 성전에 왔습니다. 모세의 율법대로 유대의 모든 산모는 자녀를 낳은 후 정한 기한이 지나면 제사장에게로 가서 예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출산 중에 흘린 피가 산모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산모는 부정한 몸으로 제사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자 아이를 출산하면 40일 이후, 여자 아이를 출산하면 80일 이후에 산모는 정결예식을 드려 부정함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때 산모는 일년된 어린양을 취해 번제를 드리고,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제사장에게 가져가 속죄제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양을 번제로 드릴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둘을 가져가 번제물과 속죄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정결예식을 치를 때에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한 쌍으로 정결예식을 치렀습니다. 아마 예수님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모는 정결예식을 치르기 위해 아기 예수님을 안고 성전을 찾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아기 예수님과 그의 부모를 반갑게 맞은 사람이 시므온입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고 성전에 들어가서 예수님과 그 부모를 만난 것입니다. 시므온은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하며,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므온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어떠한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이 땅에 오셨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경은 시므온을 소개하기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이 위로를 받아야 할 상태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황제들 중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에 시므온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므온 위에 성령님이 계셨습니다. 시므온은 성령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위로가 어디로 부터 오는지를 알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통해 이스라엘의 위로가 올 것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에도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한 때가 아닙니까? 이 세상에도 죄로 인한 여러가지 슬픔과 아픔들이 존재합니다. 이 세상에 여러가지 범죄와 폭력, 불의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인종과 계층 간의 차별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상하고 아픔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개인과 가정은 어떻습니까?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저는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플로리다 탬파감리교회에서 열린 2023 비젼 컨퍼런스에 다녀왔습니다. 동성애 잇슈로 인해서 연합감리교회에서 탈퇴하거나 탈퇴과정중에 있는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서, 앞으로 세워질 글로벌 감리교회 한미연회를 준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런데 탈퇴과정에서 참 힘들고 마음 아픈일들이 많이 일어났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그 모여있는 분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으로 인해서 위로를 받으며, 감사와 기쁨가운데 그 모든 일들을 진행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 모인 130여명은 하나님이 우리의 위로와 소망이 되심을 확실히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므온도 이스라엘의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옴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성령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는데 성령님은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곧 주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시므온이 기다리는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심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애통함이 있을 때에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기다립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적인 것으로부터의 위로를 기다립니다. 사람들을 통하여 위로를 받거나, 재물을 통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정부나 조직, 제도가 자신들을 위로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재물이나 사람, 세상의 조직과 제도는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재물, 제도가 때로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들로 인해 도리어 아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주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위로요, 저와 여러분의 위로가 되심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불안과 염려가운데 있을 때에 무엇을 통해서 위로를 받으려고하십니까? 이 세상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위로해 줄 것이 많은 것 같지만 그러한 것들은 영원하지도 않고,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도 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이 세상에 위로가 될 만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라고 말하지만, 성령님은 주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진정한 위로가 되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이유는, 우리 개인과 가정, 이 사회의 진정한 위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우리의 삶의 진정한 위로는 이 세상의 사람이나 물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
2.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셨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통해서 받게되는 위로는 무엇입니까?
아기 예수님이 부모님의 품에 안겨 성전에 오셨을 때에 성령님께서 시므온을 감동시키셔서 성전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그토록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위로를 만나게 됩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종을 평안히 놓아주셨습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니 그에게 위로와 평안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는데,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예비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그리스도는 이방을 비춘다고 했습니다.
시므온 당시에 유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을 위로해 주시리라 기대했습니다. 과거 다윗왕과 같은 왕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주변에 있는 이방 나라를 제압하고, 그들만의 샬롬을 만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기 원하는 위로였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시므온의 찬양을 통해서 드러내신 위로는 이스라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만민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위로와 구원이 되시는 분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이사야 42:6절에 이방인이 받을 위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만민과 이방인들을 향한 위로와 구원이 예수님을 통해 임할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이 위로받고 구원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위로와 구원을 박탈하기도 합니다. 내가 위로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슬픈 지경으로 빠뜨리고, 내가 구원에 이르기 위해 다른 이들을 억압하는 일들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고 위로받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슬프게 만들고 억압함으로 얻어지는 위로와 구원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3.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만민을 위로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은 만민들, 이방사람들을 구원할 메시야가 그들을 통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또한 그들에게 주어진 영광은 그들이 이제 다른 이들을 위로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의 빛이 되는 것이 그들이 경험할 영광인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로 큰 민족, 이스라엘을 이루도록 하신 것은 바로 그들이 만민의 복이 되게 하시고자 하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창세기 12:3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처음부르셔서 하신 약속이 있습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을 통해서 이루어질 큰 민족은 땅의 모든 족속을 복되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백성들이 누리는 영광입니다.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헨델은 유명한 음악가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대충 믿으며, 술로 인생을 달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밤도 술에 취에 집에 들어오니 친구에게서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편의 시를 보내 주며 작곡을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그 시를 읽으면서 헨델의 마음이 변화가 생겼습니다.
'위로하라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오 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주의 영광은 드러나고야 말리. 그 육체가 그 영광을 보리라' 이는 이사야 40:1절의 말씀을 인용한 시였던 것입니다. 헨델은 이 시를 읽으면서 자기의 신앙생활을 돌이키고, 나와 같은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곁에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헨델은 자신의 심정을 오선지에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작곡을 시작한 날로부터 22일간, 헨델은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곡을 만드는데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완성된 곡이 '헨델의 메시아'인 것입니다. 헨델은 자신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하는 하나님으로 인해 큰 감격속에서 '메시야'를 완성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부터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위로는 나만의 위로만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만민의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가 나를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만의 위로를 위해서 이 땅에 오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자신들은 자유케 되고, 주변의 나라들을 억압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를 받았다면, 이젠 우리도 다른 이들의 위로가 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위로와 구원이 나를 통해서 흘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 만을 복되게 하고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만민이 구원받고 위로받는 통로로 사용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광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위로와 복음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시므온처럼 이 땅의 위로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위로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위로가 되심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속에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영생의 소망임을 증거하는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염려와 걱정에 있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그들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재물에 얽매여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세상의 한시적인 것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갈 것을 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만민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전하는 일을 영광스럽게 여기며 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령님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위로요 구원이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위로를 기다리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과 환경으로인해 상처받고 절망가운데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성공과 재물, 사람들로부터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만, 그것은 곧 사라질 안개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절망과 아픔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의 진정한 위로는 예수님임을 믿고, 그분만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날, 여러가지 힘들고 암담한 일들이 많습니다. 상처받은 심령, 평안을 잃어 버린 가정, 영적인 어둠가운데 있는 이 사회가 하나님의 위로를 필요로 합니다.
이 떄에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로 다른 이들을 위로하라고 하십니다. 상처와 절망 가운데 있는 이들을 위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함으로, 영광된 성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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