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eIIKPSx1x0g
우리는 이천년전, 유대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아기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한 가정에 아기가 태어난 다는 것은 정말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이 태어나실 때 부모와 가족들이 얼마나 기뻐하셨을지 상상이 됩니다. 때로 누군가의 출생을 국가적으로 기뻐하며 기념하기도 합니다. 미국은 마틴 루터킹과 같은 인물이 끼친 공적을 기념하며, 그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가정이나 국가차원이 아니라, 온 인류의 변혁을 가져오신 사건입니다. 시간을 연대기로 구분할 때에 BC와 AD 로 나눕니다. 그런데 BC는 Before Christ, "예수님 전" 의 약자이고, AD는 라틴어, ‘Anno Domini’ ‘‘주님의 해’의 약자입니다. 곧 예수님의 탄생 전, 후로 인류의 연대가 구분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인류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면으로 볼 때 사람의 일생에도 BC와 AD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그 이후의 삶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지만, 우리의 인생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만남은 바로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인생의 왕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멀고 먼 여행을 한 동방박사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여행은 힘들고 위험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이러한 여행을 했을까요? 그것은 아기로 태어나신 위대하신 왕을 직접 만나 경배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는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이 경배하기 위해서 고생스러운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찾았던 왕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으면,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을 왕되게 하는 삶은 무엇인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먼저, 동방박사를 보면서 도전받는 것은, 우리는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경배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관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밤 그들은, 하늘에서 그 전에 못보던 큰 별이 나타난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 별이 위대한 왕이 태어났음을 알리는 별이라는 것을 즉각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별을 보고 그냥 있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그 위대한 왕을 찾아가 만나기로 결심을 합니다.
사실, 왕의 탄생의 별을 본다고 해서 꼭 왕을 만나러 갈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나라에 대단한 왕이 태어났나 보네." 라고 생각하며 지나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왕으로 난 아기를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아기왕에게 ‘경배’를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별 보다 더욱 확실하게 말씀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심을 말씀해 주셨고,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만왕의 왕임을 믿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소망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아는 것을 넘어, 왕된 예수님을 만나고, 왕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듣고 아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내가 믿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동방박사들을 보면, 아기 왕을 만나 경배하기 위해서 힘썼습니다. 그들은 아기 왕께 경배하기 위해, 자신의 안정된 삶을 떠납니다. 동방박사들은 그 당시에 지혜자로 여겨집니다. 별을 관찰하며 현재와 앞으로의 일어날 일들을 예측하고, 그 일들을 왕에게 알려서 왕의 국정을 돕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기 왕께 황금, 유향, 몰약을 바칠 정도록 재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왕을 만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왕을 만나러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행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여행을 할 때에 밤에 하시는 분들이 있으십니까? 밤에 운전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밤 운전을 꺼려하시는 분도 많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여행길은 별을 따라 가야하겠기에 그 여행은 밤에만 이동해야 했습니다. 어두운 길을 가는 것도 불편하고 위험한데, 도적의 위험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목적지도 명확하지 않고, 또한 언제 그 여행이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여행이 성공적으로 마쳐질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위대한 왕을 만나 경배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드리러 왔는데, 이 동방박사와 같은 마음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지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그분을 인격적으로 직접 만나기 위해서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분주한 삶을 뒤로하고, 왕이신 예수님께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것을 넘어서 왕을 직접 만나는 영적인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믿는 예수님이 진짜로 살아계시고, 나와 함께 하심을 경험하고 고백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그런데 아기 왕의 탄생을 안다고 모두 그분을 왕으로 모시고, 경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왕의 탄생 소식을 들었지만,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대의 왕인 헤롯이었습니다.
별을 따라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박사는 헤롯왕궁을 찾습니다. 그들은 큰 별이 가리키는 왕은 현재의 왕인 헤롯의 후계자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는 헤롯 왕궁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유대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냐? 내가 그를 경배하러 왔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소동했습니다. 그들은 지금의 왕과 관계가 없는, 또 다른 왕이 출현했다는 소식에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새로 태어난 왕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박사들을 떠나보내면서 그들에게 부탁합니다. “내가 경배하러 가려고 하니, 아기를 보거든 나에게 알려주십시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아기왕을 경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헤롯왕이 아기 왕 예수의 탄생소식을 기뻐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이 왕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왕앞에 자신의 왕권을 내려 놓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들의 왕이 되십니다. 이 세상에 왕과 같은 존재도 예수 그리스도의 왕되심을 믿고, 그 분앞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왕이라고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왕되심을 온전히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내 삶에 왕노릇하려하기 때문입니다.
왕으로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바로 나의 왕됨을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일생에 B.C.가 A.D. 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한 구원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나 세상의 것들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왕은 누구입니까? 내 자신이 왕이 되어 내 욕망의 지배를 받고 살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재물의 다스림을 받고 살지는 않습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지배를 받으며 살지는 않으십니까? 아니면 나의 감정과 세상 유행에 지배를 받으며 살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결국 누구의 지배를 받는지 아십니까? 바로 죄입니다.
로마서 5:21절에,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살아갈 때에, 죄가 우리의 왕노릇을 합니다. 죄가 왕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죄에게 왕노릇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바울은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날마다 죽였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왕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 이 사회가 내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우리의 통치권을 예수님께 내어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성탄의 계절에 예수님만이 이 땅의 왕이고, 또한 나의 왕이심을 고백하며,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이제 동방박사들은 드디어 아기 왕,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십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님을 뵈었을 때에, 아기께 엎드려 경배합니다. 그리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입니다. 그들이 본 아기 왕은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아기왕은 헤롯왕처럼 궁궐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님이 왕인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 나이가 많은 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에게 엎드려서 경배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값비싼 예물들을 주저함 없이 아기 예수께 예물로 드린 것입니다.
때로 예수님은 우리가 기대하는 왕의 모습을 하고 계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왕으로 오신 것은 우리의 기대를 채우시고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자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내 기대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예수님을 도구화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때로 예수님을 왕으로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상관없이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로만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왕되게 하는 삶을 살아가심으로, 우리가 영원한 세상에 들어가서도 주님을 왕으로 모시는 천국의 삶을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죄와 사망이 왕노릇하던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은 왕이 되시고 참 구원과 생명을 이 세상에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경배하는 신앙의 여정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가 그 먼길을 아기 왕께 경배하기 위해 왔던 것처럼, 늘 주님을 경배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예수님께로 날마다 나아가기 위해 여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예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다스리려고 하는 죄의 권세가 이 세상에 만연하지만, 주님께만 순종함으로, 우리는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예수님의 왕되심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며,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예수님을 왕으로 경배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Anno Domini, 예수님을 만난 삶을 살아가는 성도요, 교회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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