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SpaKvfxWdk
지난 주일에 이어, 오늘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언급하신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가장 시급한 것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죄의 통치를 받으며, 멸망길로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육신적인 삶의 풍요를 보장하고, 잘 살게 해 주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누구든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지 않으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잘 알기에,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이 새상에서 잘 먹고 살기를 원하며 구하는 것들이 부차적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나라는 육신적인 풍요와 안전, 만족을 공급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런 나라를 복지국가라고 부르며, 그러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에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더해 주시는데, 그 부차적인 것들을 구하면서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살 때에, 우리의 필요를 주님께서 아시고, 이를 더하여 주시고 계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로마교인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그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적인 것을 소유함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재물이 풍부하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잠언 17: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아무리 세상적으로 풍요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관계가 어긋나게 되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훼손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 있을 때에,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나라들도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온전히 이루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의와 평강과 희락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성령안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나라가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놨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이러한 법을 어기고서라도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죄의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좋은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어도 사람들이 이를 지키지 않으니, 그 율법은 무용지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성령안에 있을 때에 사람이 거듭나게 됩니다.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기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 있는 의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의'라고 하는 것은 '옳음'을 말합니다. 사람들마다 옳음의 기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옳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그리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죄인된 우리가 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도 의를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마다 의의 기준이 자기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옮음의 기준은 나에게 있습니다. 사람들의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가 힘든 이유는, 나의 의를 내세우며, 나는 옳고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도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배경이 있습니다. 로마교인들은 대부분 이방사람이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안에 논쟁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은 부정하니 먹지 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니,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졌다고 해서 그것이 부정하여 못먹을 음식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그 음식을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로마 교회는 이러한 먹고 마시는 문제로 인해서 서로 의견이 다른 두 진영간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의견이 옳다고 여기며,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정죄했습니다. 결국 서로 자신의 옳다고 의로움을 드러내다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 버리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먼저 구해야 할 일도 아니고, 본질적인 일도 아닙니다. 본질적인 것은 왕이신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서 살아가느냐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정결한 모습으로 잘 섬기기 위해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부정하게 여겨 먹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상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기고, 모든 음식이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감사함으로 먹겠다고 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 마음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 감사의 행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 모두를 용납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면 논쟁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의는 드러내지 않고, 나의 의로 인해서 결국 천국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하나님의 옳음이 무엇인지를 구하면서 살아야지, 나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왜곡하면서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며 살게 됩니다.
잠언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묵시는 하나님의 드러남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환상이나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드러남이 없을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방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니까 자신의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범죄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는 자신의 의,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말씀을 하시던지, 하나님의 말씀이 옳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의로운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불의가 관영한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나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며 살 때에, 우리는 의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 있는 평강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징은 평강입니다. 평강은 서로의 관계가 화목할 때에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11장에는 메시야가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 손을 넣고 장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미워하고 대적해던 관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화목하여 평강을 이루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 그리고 사람들 사이를 이간해서 서로를 미워하고 불화하게 만듭니다.
에덴동산에 하나님과 평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나타나 하나님과 하와 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의 관계를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피해 수풀로 들어가 자신들을 숨기게 됩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에게 종노릇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죄가 왕노릇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과의 평강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나게 되니 사람과의 관계도 어긋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안에서는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아래에서는 싸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으로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평강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이 저지른 하나님과 사람과의 불화의 관계를 평강의 관계로 만들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과의 평강을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안에 있을 때에 우리는 사람들과도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한 수도원이 있었습니다. 그 수도원의 수도원장은 수도원에 들어온 수도생들을 교육하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날 수도원장은 수도생들에게 금욕하는 훈련을 시키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장은 수도생들을 기도실로 모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실 안에 자그마한 밥상을 놓고 그 위에 죽 한 그릇과 숟가락을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수도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3일간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을 누르고, 금욕적인 삶을 살도록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수도원에 먹을 것이라곤 죽 한그릇밖에 없었습니다. 수도생들은 아무것도 먹지않고 기도와 노동과 같은 일들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기가 올라왔습니다. 마지막 삼일째 되는 날은 허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 눈에 기도실에 있는 죽 한긋이 아른거렸습니다. 그런데 한 수도사가 기도하러 기도실에 들어 갔다가, 누군가가 죽을 먹었는지 죽의 양이 줄어든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본 수도생은 화가 나서 수도원장과 같은 동료들에게 알렸습니다. 수도원장은 수도생들을 모두 기도실로 모이게 했습니다. 한 방에 모인 수도생들은 모두 화가 나 있었습니다. 서로를 보면서 죽을 먹지 않았냐며 의심했습니다. 한 수도생이 “아까 네가 그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을 봤는데 네가 죽을 먹은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바람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보던 수도원장이 갑자기 밥상에 있는 죽그릇을 가지고 오더니, 그것을 한 숟가락 떠서 먹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수도생들이 당황을 하고 있는데, 수도원장은 그 죽그릇을 옆에 있는 수도생에게 먹으라고 건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죽을 안 먹고 서로 의심하며 싸우는 것보다, 차라리 죽을 먹고 화평한 것이 낫다"
하나님의 나라는 평강의 나라입니다. 다툼과 분열이 있을 때에 평강을 이루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위해 십자가의 희생도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서로의 관계속에서 평강을 잃어 버리고 지옥을 살아가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불화하도록 만드는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평강을 이루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성령안에서 평강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의 평강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안에서 희락입니다.
천국의 또 다른 특징은 희락입니다. 갈라디아서 5:22절에 희락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 두번째 나오는 열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속에 있을 때에 또한 희락,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도 희락,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그런데 세상적인 즐거움은 내 육신의 만족을 위한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이루어지는 즐거움은 사탄적인 것입니다. 오늘날 마약은 커다란 사회 문제가 되었습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했던 마약이 이제는 몸과 혼을 죽입니다. 성적에 즐거움에 빠져서 음행한 일을 하게 됩니다. 재물로 즐거움을 삼으려고 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 욕심을 채우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희락은 참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환경을 뛰어 넘습니다.
하박국 3:17-18절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세상 사람들은 무화가 나무가 무성하고, 외양간에 송아지가 많아야지 즐거워합니다. 만약 무화가 나무가 없고, 외양간이 비었고, 밭에 먹을 것이 없다면 기쁨은 사라지고 애통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은 다른 것들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시면 하나님은 어떠시겠습니까? 하나님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지금 우리를 기쁘게 하는 존재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돈이나 자녀, 사람들, 명예 등으로 기쁨의 근거로 살아가고 있다면, 아직 누리지 못한 진정한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이 최고의 기쁨이 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이 무엇을 우리에게 해 주셨기 보다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자체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나의 왕되시고, 아버지가 되신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는 나라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소유에 있지 않고 관계 가운데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많은 것을 가졌어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운데 있지 않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관계가 이루어질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이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실 때에 우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는 나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의를 고집하면서 살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만이 의로우신 분임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의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구할 때 우리는 평강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의 사랑의 법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있을 때에 용서하지 못한 죄가 없고, 화해하지 못할 다툼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를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참 평강을 누리고,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는 희락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희락을 추구하지만, 그들의 즐거움은 영원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을 해하고, 후회와 절망을 가지고 옵니다. 하나남으로 인해서 기뻐하는 것이 참 희락인 것입니다.
이 땅에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없는 지옥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 나라는 의를 추구하지만 불의가 만연하고, 평강을 말하지만 다툼과 분열속에 있고, 희락을 말하지만 슬픔가운데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저와 여러분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 세상에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의 삶으로 우리 가족과 이웃들, 그리고 세상에 드러내고, 증거하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을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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